“CCTV 있는데 성폭행 못해”…원장실 들어간 판사가 본 것

2025년 2월 10일 밤, 인천 강화군 중증장애인 거주 시설 ‘색동원’ 2층 식당 복도.
화장실에 가던 A 씨 앞을 시설장 김 모 씨가 막아섰습니다.
김 씨는 A 씨의 입을 틀어막고, 손발을 눌렀습니다. 저항하자 김 씨는 식당에 있던 유리컵을 집어 머리에 던졌습니다. 유리잔에 맞은 A 씨의 머리에는 약 2주간 치료가 필요한 상처가 남았습니다. 모두 검찰이 공소장에 적은 내용입니다.
지난 15일 오후 2시 10분. 재판부가 그 장소에 직접 섰습니다.

■ 색동원, 그곳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색동원은 강화군 길상면에 있는 중증장애인 거주 시설입니다. 시설장 김 씨는 2008년부터 이 시설에 몸담아 왔습니다.
검찰은 이곳에서 피해자 네 명이 나왔다고 보고 있습니다.

KBS가 입수한 공소장에 따르면, 김 씨의 첫 번째 혐의는 2025년 2월 초순 피해자 방과 식당 복도 등에서 A 씨를 바닥에 눕혀 강간한 혐의입니다.
두 번째는 2012년부터 2023년 사이, 여름철 새벽 화장실 변기에 앉아 있던 B 씨에게 다가가 강간한 혐의입니다.
세 번째는 2024년 2월부터 2025년 7월까지, 저녁 시간대에 2층 또는 3층 생활실에서 C 씨를 강간한 혐의입니다.
네 번째는 2021년 12월, 1층 사무실에서 D 씨가 쓰레기에 집착한다는 이유로 드럼 스틱으로 양 손바닥을 총 34차례 폭행한 혐의입니다.
모두 중증 지적장애를 갖고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 강화도까지 간 재판부…왜?
재판부가 사건 현장에 직접 가 현장 검증을 진행하는 건 이례적입니다. 성폭력 피해자 국선변호를 십수 년간 맡아온 피해자 변호인 신진희 변호사는 “처음 겪어본다”고 했습니다.
재판부는 왜 직접 강화도까지 찾아갔을까요?
계기는 김 씨 측 요청이었습니다. 지난 4월 열린 첫 공판에서 김 씨는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현장검증을 신청했습니다. 피해자 진술 내용이 실제 현장에서 물리적으로 가능한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는 취지였습니다.
특히 중증장애인 시설 특성상 상시 감시 체계가 갖춰져 있어 김 씨가 피해자들과 접촉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주장도 폈습니다. 피해자 진술 신빙성도 정면으로 문제 삼았습니다.
■ “유리컵 맞았다는데”…사라진 유리잔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현장검증이 시작됐습니다. 재판을 진행하는 엄기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 부장판사와 이웅희 서울중앙지검 공판2부 검사, 김 씨 측 변호인 2명, 피해자 측 변호인 2명, 사건 수사 경찰관 등이 참석했습니다.
검증은 시설 1층 입구부터 진행됐습니다. 시작과 동시에 김 씨 측은 A4용지에 인쇄해 온 현장검증 시나리오를 꺼내 재판부에 건넸습니다. 1층부터 3층까지 층별로 돌며 범행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입증하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집중적으로 확인이 이뤄진 곳은 2층 식당 공간이었습니다. 2층은 여성 장애인 생활 공간과 식당·카페 등이 함께 있는 구조입니다. 김 씨는 평소 본관 옆 기숙사 건물 2층을 혼자 사용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김 씨 측이 “깨진 와인잔이 있었냐”, “유리컵이 아니라 와인잔이 보관돼 있었던 거냐”고 묻자, 직원은 “유리컵은 없었다”고 답했습니다. 재판장이 “목이 있는 와인잔만 있었고 일반 유리잔은 없었다는 뜻이냐”고 묻자, 직원은 “목 있는 와인잔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검사는 “향후 증인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는 사람 진술을 현장에서 듣는 건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며 “유리잔 관련 내용은 이미 수사 기록에 제출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 “CCTV 있는데 범행 가능했겠나” VS "CCTV 관리자가 '시설장'"

김 씨 측은 식당 인근 CCTV도 강조했습니다. CCTV가 있는 공간에서는 범행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취지였습니다. 실제 현장검증 내내 CCTV 관련 공방은 반복됐습니다.
“이 시설은 CCTV를 통해 이용자들 동선이 대부분 확인될 수 있도록 시스템이 갖춰져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CCTV가 설치된 공간에서 범행이 가능했겠습니까.”
-시설장 김 씨 측 변호인(박용우 변호사)
검찰은 곧바로 반박했습니다. CCTV가 있었다고 해서 범행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취지였습니다.
“CCTV가 있었다는 주장 자체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현재 CCTV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고, CCTV가 있었다고 해서 범행이 없었다는 뜻도 아닙니다. 무엇보다 CCTV 관리 책임자 역시 피고인입니다.”
-이웅희 서울중앙지검 공판2부 검사
피해자 측도 “해당 CCTV가 언제 설치됐는지도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덧붙였습니다.
■ 피해 장소에서 난 소리, 들렸나?
김 씨 측이 또 하나 강조한 건 시설 구조였습니다.
색동원은 2층 중앙정원이 카페 겸 식당과 이어져 있고, 이 공간이 3층 천장까지 뚫려 있는 개방형 구조입니다. 김 씨 측은 “범행 과정에서 소리가 났다면 야간 당직자가 들었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현장에서는 직접 실험도 이뤄졌습니다. 재판장이 3층 창문 앞에 서 있는 가운데, 김 씨 측 변호인 중 한 명이 피해 사실이 이뤄졌다고 특정된 장소에 내려가 큰 소리로 “아, 아!”라고 외쳤습니다. 소리가 위층까지 울려 퍼졌습니다.
피해자 측은 곧바로 "범행 당시인 겨울에는 창문을 닫고 생활했고, 야간 당직자도 복도가 아니라 거실에서 근무해 소리가 나도 듣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반박했습니다.
김 씨 측은 “당시 시간대는 야간이었고 주변 소음도 적었다”고 재차 주장했습니다. 이에 검찰은 “여기 복도에서는 들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 당직 근무 위치에서도 들렸는지가 중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후 창문을 닫은 상태에서 다시 실험이 진행됐고, 재판장이 직접 소리를 들었습니다. 재판장은 “귀 기울이면 들을 수 있는 정도”라고 판단했습니다.
이 밖에도 김 씨 측은 2층과 3층 거실 중앙에 야간 당직자가 앉는 의자가 있다는 점을 들며, 해당 구조상 범행이 불가능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재판장은 직접 그 의자에 앉아 시야를 확인했습니다.
■ CCTV 덮개도 발견…“관리 주체는 피고인”
재판장은 마지막으로 1층에 위치한 원장실에 들어가 CCTV 관리 상황도 확인했습니다.

이 공간은 김 씨가 사용하던 업무 공간으로, 이곳에는 시설 전체를 비추는 CCTV 모니터가 놓여 있었습니다. CCTV 사각지대가 있었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한 취지였습니다.
이 검사는 “피고인은 언제 어디가 촬영되는지 알고 있었고, CCTV 역시 직접 관리하거나 삭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CCTV 화면 일부를 가리는 덮개도 발견됐습니다. CCTV 화면 두 개 중 위쪽 화면이 덮개로 가려져 있었던 겁니다. 덮개는 화면 위에 클립으로 고정돼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시설 측 임시 원장은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체적인 현황을 잘 알지 못한다”고 밝혔고, 현장에서 명확한 결론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약 1시간 10분 동안 이어진 현장검증이 끝난 뒤, 재판장은 “양측 의견을 충분히 들었다”며 “피해자 진술 내용이 법정에서 어떻게 반영될 수 있을지 방안을 모색하면서 재판을 진행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시설 밖에서 기다리던 색동원 공동대책위원회는 우려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공동대책위원회 측은 “직원들에게 당시 상황을 묻더라도 제대로 말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피고인은 시설의 인사권과 운영권을 모두 쥔 절대적 권력자”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어진 공판, 피해자 진술 둘러싼 공방
현장검증 이후 이뤄진 18일 재판에서는 피해자 진술 신빙성과 관련해 서울경찰청 소속 진술분석 전문가 증인신문이 진행됐습니다.
법정에 나온 진술분석 전문가는 “일부 진술에서 일관성이나 구체성이 다소 떨어지는 부분은 있었지만, 실제 경험에 기반한 내용을 진술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진술의 완결성이 떨어지는 건 지적장애인의 인지적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지, 과학적 분석 기반으로 판단했을 때 피해자들의 진술이 허위일 가능성은 낮다는 취지입니다.
앞선 공판준비기일에서 김 씨 측이 “피해자들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주장한 것과는 상반되는 증언입니다.
피해자 진술은 이번 사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피해 장면이 담긴 CCTV 영상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데다, 피해자들이 피해 상황을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설명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재판부가 직접 시설 공간을 살피고, 창문을 닫은 채 소리를 듣고, CCTV 화면까지 확인한 이유도 결국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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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빈 기자 (mugyeon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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