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시각] ‘힘 있는 전관’에게 더 관대한 법원

손덕호 기자 2026. 5. 19.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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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찰청 차장검사 출신 A 변호사는 백현동 개발 비리 사건 피의자 측과 10억원짜리 수임 계약을 맺었다. 착수금 1억원, 성공보수 9억원이었다. 착수금이 입금된 다음 날 그는 대검찰청을 찾아가 부장검사를 15분간 만났다. “건강이 나쁘니 불구속 수사를 해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도 냈다. 변호사 선임계는 제출하지 않았다. 돈은 법무법인이 아니라 개인 계좌로 받았고, 회계 처리도 하지 않다가 검찰 압수수색 뒤에야 현금영수증을 발행했다.

검찰은 A 변호사가 “검찰 인맥을 이용해 구속을 막아주겠다”며 거액을 요구한 것으로 봤다. 1심도 유죄로 판단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무죄를 선고했고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2심은 착수금 1억원과 불구속 조건 성공보수 9억원 약정이 “형사 사건에서 빈번히 체결되는 수임 계약의 형식”이라고 했다. 또 A 변호사가 상당한 요직을 거친 전관이고, 사건이 사회적으로 주목받았으며, 구속영장 청구가 임박했다는 점을 들어 수임료가 지나치게 고액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법원 판단을 법리로만 보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국민 눈높이에서는 다르게 읽힌다. 검찰 2인자 출신 전관이 선임계도 내지 않고 대검을 찾아가 수사 라인 관계자를 만났는데, 법원이 이를 형사 사건의 통상적 수임 형태로 설명한다면 법조계의 관행 자체가 불신의 대상이 된다. 법정 안에서는 익숙한 계약 형식일지 몰라도, 법정 밖에서는 특권의 언어로 들릴 수밖에 없다.

전관예우의 핵심은 돈의 액수만이 아니다. 그 돈이 무엇의 대가였느냐다. 변호사의 법률 지식과 변론 능력에 대한 보수였는지, 아니면 과거 직위와 인맥을 통해 수사기관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기대의 대가였는지가 문제다. 그런데 “상당한 요직을 거친 전관”이라는 점이 고액 수임료를 정당화하는 요소처럼 쓰이면 국민은 묻게 된다. 전관의 몸값은 어디까지가 합법이고, 어디부터가 청탁인가.

이 판결은 한 전관 변호사의 무죄 사건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검찰개혁’ 이후 수사 권한은 경찰과 특별사법경찰 기관으로 분산되고 있다. 경찰대 출신 변호사들은 이미 형사 사건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앞으로 검찰의 보완수사권이 없어지면 특별사법경찰 출신 인사들도 대형 로펌에 고액 연봉으로 영입돼 기관 대응 업무를 맡을 가능성이 크다. 전관예우가 검찰과 법원을 넘어 경찰, 행정기관, 각종 수사기관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뜻이다.

작년 10월에는 판사 출신 변호사 2명이 담당 판사와의 친분을 내세워 보석 청탁 명목으로 2억2000만원을 받았다가 실형이 확정됐다. 당시 재판부는 일부 전관 변호사의 행태가 국민에게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좌절감과 상실감을 안기고 사법 신뢰를 훼손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기준이 모든 전관에게 똑같이 적용되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또 다른 불신을 낳는다.

전관예우가 문제라면 전관의 등급에 따라 판단이 달라져서는 안 된다. 힘 있는 전관의 고액 수임은 정상이고, 덜 힘 있는 전관의 청탁성 수임만 처벌 대상이 되는 식이라면 국민은 사법 시스템을 신뢰하기 어렵다. ‘상당한 경력의 전관’은 무죄이고, ‘그냥 전관’은 유죄라는 인상을 주는 판결은 전관예우 못지않게 사법 신뢰를 무너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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