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과컴퓨터는 없다'…'한컴'으로 사명 변경→'AI 기업' 선언

한광범 2026. 5. 1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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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명도 '한컴'으로…'소버린 에이전틱 OS' 기업 도약
매출로 증명한 AI 대전환, 글로벌 시장으로 영토 확장
김연수 한컴 대표가 19일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호텔에서 열린 'HANCOM : THE SHIFT'에서 '소버린 에이전틱 OS' 기업으로의 도약을 선언했다. (사진=한광범 기자)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한때 대한민국 소프트웨어를 대표했던 ‘한글과컴퓨터’라는 이름이 3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오래전부터 대중에게 친숙한 약칭으로 사용되던 ‘한컴’이 이제는 공식 법인명이 된다. 이는 단순히 부르기 쉬운 이름으로의 교체를 넘어, 과거의 유산이었던 ‘국내용 PC 패키지 워드프로세서 기업’이라는 틀을 완전히 깨고 글로벌 인공지능(AI) 기업으로 완벽하게 재탄생하겠다는 의지다.

한컴은 19일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호텔에서 전략 발표회 ‘HANCOM : THE SHIFT’를 개최하고, ‘소버린 에이전틱(Sovereign Agentic) OS’ 기업으로의 대전환을 선언하며 사명 변경을 발표했다. 이와 함께 ‘한컴오피스 2024’를 마지막으로 지난 수십 년간 이어온 연식제 패키지 발매를 전격 종료하기로 했다. 향후 한컴오피스는 AI 기능 고도화가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클라우드 기반 플랫폼 형태로 진화한다.

숫자로 입증된 AI 성장세와 ‘소버린 에이전틱 OS’ 비전

한컴의 이 같은 체질 개선은 최근 숫자로 증명된 압도적인 AI 사업 성과가 뒷받침하고 있다. 한컴은 창사 이래 처음으로 구체적인 AI 실적을 시장에 공개했다.

지난해 한컴의 별도 기준 매출은 전년 대비 10.2% 증가한 1753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특히 전체 매출 증가분(162억원) 중 AI 솔루션의 기여도가 54.6%에 달했다. AI 매출의 실적 견인 효과는 올해 들어 더욱 폭발적이다. 올해 1분기 별도 매출은 465억원을 기록했으며, 이 중 AI 매출(52억원) 비중은 지난해 같은 기간 0.04%에서 11.21%로 급증했다.

대다수 테크 기업이 AI 전환 과정에서 대규모 투자 비용으로 수익성 악화를 겪는 것과 달리, 한컴은 신규 고객 확보 비용 없이 기존 20만 고객 기반을 활용해 지난해 별도 영업이익 509억원, 영업이익률 29%를 유지하며 실리까지 챙겼다. 올해 1분기 기준 B2B 고객 중 AI 패키지를 실제 도입한 비율은 4.2%로, 출시 1년이 채 되지 않아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AI 제품 전환율(약 5%)과 대등한 수준을 나타냈다고 한컴 측은 설명했다.

한컴이 미래 먹거리로 정조준한 ‘소버린 에이전틱 OS’는 조직 내부 데이터와 외부 AI 모델을 안전하게 연결·통제하는 플랫폼이다. 데이터 주권 규제가 강력한 유럽 시장을 첫 타깃으로 삼았으며, 이미 유럽 현지 유력 파트너 3곳과 양해각서(MOU) 체결 및 협력 가시화에 나서며 2030년 최대 14조 원 규모로 추산되는 글로벌 유효시장(SAM) 선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번 AI 기업으로의 전면 선언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급작스러운 변화나 방향 선회가 아니다. 한컴은 오래전부터 ‘단일 워드프로세서(HWP) 기업’이라는 단조로운 정체성에서 벗어나 종합 소프트웨어 및 AI 기술 기업으로 진화하기 위해 치열한 확장을 시도해 왔다.

과거 ‘아래아한글’에만 의존하던 구조를 깨기 위해 표 계산 프로그램(셀), 발표 프로그램(쇼) 등을 포함한 통합 ‘한컴오피스’ 체제를 구축하며 마이크로소프트(MS)의 독점에 맞섰고, 모바일 스마트폰 시대 초창기에는 ‘싱크프리(Thinkfree)’ 등을 통해 모바일 및 웹 오피스 시장에 선제적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AI 분야에 대한 진출 역시 꾸준히 누적된 결과물이다. 한컴은 일찍이 음성인식 통번역 서비스인 ‘지니톡’을 선보이고 오피스 내에 AI 기반의 문서 요약 및 서식 추천 기능을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등, 문서에 축적된 ‘비정형 데이터’를 활용하기 위한 인공지능 원천 기술을 수년간 갈고닦아 왔다. 이번 사명 변경과 에이전틱 OS 선언은 그동안 지속해 온 소프트웨어 다각화와 AI 기술 축적 노력이 마침내 완성형 플랫폼 비즈니스로 결실을 본 것이다.

‘토종 SW 사수’의 빛과 그림자…안방 갈라파고스 틀 깨고 세계로

그러나 이러한 확장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컴이 짊어져 온 역사적 한계는 뚜렷했다. 한컴은 1990년 11월, 이찬진을 비롯한 대한민국 1세대 IT 천재들이 개발한 ‘아래아한글’의 첫 버전이 나온 후 설립됐다. 1990년대 후반 윈도우(Windows) 보급과 함께 MS 워드가 전 세계 시장을 집어삼킬 당시, 한국은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토종 워드가 시장을 방어한 나라였다.

특히 1998년 외환위기 당시 경영악화로 MS에 아래아한글 소스코드를 매각하려 하자, 전 국민적인 ‘한글지키기운동본부’의 반대와 후원으로 계약을 파기한 일화는 유명하다. 강력한 토종 경쟁자 덕분에 MS 역시 한국 시장을 위해 한글 맞춤법과 옛한글 지원 기술을 서둘러 개발해야 했다.

(한컴 제공)
하지만 이 찬란한 ‘토종 SW 사수’의 역사는 역설적으로 한컴을 국내 시장에만 갇히게 만드는 족쇄가 되었다. 특히 정부와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아래아한글 단일 포맷 체제’가 공고하게 고착화되면서, 전 세계 표준 생태계와의 호환성 문제가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결국 외산 OS나 글로벌 클라우드 환경과 단절된 ‘안방 갈라파고스’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 역시 한컴 등 국내 소프트웨어 생태계가 국내 시장에만 안주한 탓에, 글로벌 표준 및 AI 혁신의 흐름과 동떨어져 왔던 점을 강하게 지적하며 근본적인 체질 개선과 세계 시장 진출을 촉구하기도 했다.

한컴의 경영 역사 역시 순탄치 않았다. 창립 멤버들이 떠난 이후 2000년대 들어 대주주가 수없이 바뀌는 어수선한 시기를 겪었다. 2010년에는 경영진의 횡령·배임 혐의로 코스닥 시장에서 상장폐지 위기까지 몰렸으나, 소액주주 보호와 중견 토종 SW 업체의 대마불사 차원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회사가 안정을 찾은 것은 2010년 보안 기업인 소프트포럼에 인수되면서부터다. 이후 한컴은 한컴오피스 2010을 출시하며 ‘오피스 선택의 시대’를 열었고, 저렴한 홈에디션 보급 및 파격적인 할인 이벤트, 외장하드 패키지 결합 상품 등을 선보이며 안정적인 정품 사용자를 확보해 나갔다. 현 경영진 체제 아래서 마침내 본업인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기술’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AI 기업으로의 완전한 회귀를 선언하게 된 것이다.

한컴은 자체 거대언어모델(LLM) 개발에 직접 나서는 대신, 미국 빅테크 기업 팔란티어(Palantir)와 유사하게 데이터 통합 플랫폼과 에이전트 환경을 제공하고 LLM은 고객이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하는 ‘비종속 아키텍처’ 전략을 글로벌 시장 공략의 핵심 차별점으로 제시했다.

김연수 한컴 대표는 “한글과컴퓨터라는 이름은 한국어 문서 처리의 표준을 만든 위대한 출발점이었지만, 이제 한컴이 다루는 영역은 문서를 넘어 데이터로, 컴퓨터를 넘어 AI 에이전트로, 한국을 넘어 글로벌로 확장됐다”며 “데이터 주권과 AI 실행 환경을 완벽하게 통합 제공하는 소버린 에이전틱 OS 기업으로서 한컴의 새로운 36년을 힘차게 열어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광범 (totor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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