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엔 ‘마늘’?…드라큘라에 먹혔던 퇴치법, 모기에도 통했다
마늘 특정 성분이 후각 아닌 미각 자극
흡혈 유도하는 교미 행위를 원천 차단

피를 빨아먹는 괴물을 쫓기 위해 마늘을 사용한다는 발상은 1897년 발표된 아일랜드 작가 브램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를 계기로 공포 문학이나 드라마가 즐겨쓰는 공식이 됐다. 소설에서 흡혈귀 전문가인 반 헬싱 교수는 드라큘라의 접근을 막는 방법으로 방 안 가득 마늘을 걸어둔다. 민간에서 전해 내려오던 전설 등에서 유래한 마늘 퇴치법은 이 소설이 큰 인기를 누린 이후 공포물에서 ‘약방의 감초’ 같은 존재가 됐다.
130년 전 작가의 흥미로운 발상에 과학적 근거를 부여하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예일대 연구진은 마늘에 함유된 특정 성분이 모기와 초파리 등의 감각 기관과 유전자 발현을 조절해 교미와 산란을 차단한다는 사실을 밝혀내 국제학술지 셀에 발표했다. 마늘이 단순히 해충을 쫓아버리는 것을 넘어 해충의 번식을 차단하는 근본적인 퇴치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모델 생물로 많이 쓰이는 초파리의 행동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됐다. 초파리는 보통 먹이 위에서 짝짓기를 한다.
초파리 미각과 후각 연구로 유명한 예일대 존칼슨연구실의 시마 에브라힘 박사는 초파리의 짝짓기 행동이 먹이에 있는 특정 화합물의 영향을 받는 건 아닌지 궁금했다. 만약 짝짓기에 영향을 미치는 화합물을 알아낼 수만 있다면 새로운 해충 퇴치제를 개발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시중에서 사 온 바나나, 복숭아, 수박, 오렌지, 파인애플, 토마토 등 43종의 채소와 과일로 퓨레를 만들어 초파리에게 먹이로 주고 초파리의 행동을 살펴봤다.

포만감 느끼게 하는 유전자에도 작용
그렇다면 드라큘라 소설대로 마늘 냄새가 이런 효과를 내는 것일까?
예상을 깨는 실험 결과가 나왔다. 연구진은 먼저 마늘의 냄새와 맛을 분리해, 초파리가 마늘 냄새만 맡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러자 초파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짝짓기를 했다. 다음엔 마늘 맛도 볼 수 있도록 했다. 이번엔 초파리들이 짝짓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이는 마늘의 짝짓기 차단 효과가 냄새(후각)가 아닌 맛(미각)에 있다는 걸 뜻한다.
마늘의 어떤 성분이 초파리의 짝짓기를 막아서는 걸까? 연구진은 마늘에서 수십가지 화합물을 분리해 각각 그 효과를 시험했다. 그 결과 ‘디알릴 디설파이드’(Diallyl disulfide)라는 화합물이 짝짓기를 억제한다는 걸 알아냈다. 흑마늘 추출물 등의 건강보조식품에 들어 있는 디알릴 디설파이드는 혈액순환 개선, 항산화·면역 증진, 만성 염증 완화를 위한 기능성 성분이다.
이어 이 성분이 초파리의 미각 뉴런에 있는 수용체 중 어떤 것에 반응하는지 실험한 결과, 쓴맛을 감지하는 TrpA1이란 수용체를 활성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디알릴 디설파이드가 매우 불쾌하거나 해롭다고 여기는 미각을 자극해 짝짓기를 거부하도록 만든 셈이다.
마늘의 효과는 감각 기관에만 머물지 않고 유전자 발현에도 영향을 미쳤다. 마늘 성분에 노출된 초파리의 머리에서는 fit(female-specific independent of transformer) 유전자의 발현이 급증했다.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을 만드는 유전자다. 이 유전자가 발현되면 초파리는 실제로는 배가 고픈 상태인데도 먹이 섭취는 물론 짝짓기까지 회피한다. 마늘이 곤충의 뇌에 ‘지금은 번식하기에 적절한 영양 상태가 아니다’라는 가짜 신호를 보내는 셈이다. 이런 현상은 암컷한테서 유별나게 나타났다.

저렴하고 안전한 '친환경 방제제' 길 열어
연구진은 뎅기열과 지카 바이러스 같은 질병을 퍼뜨리는 이집트숲모기와 흰줄숲모기, 아프리카수면병이나 가축질병(나가나병)을 전파하는 체체파리(Glossina morsitans )의 짝짓기도 억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모기 중에서 흡혈 행위를 하는 것은 짝짓기를 마친 암컷 모기다. 알을 낳기 위해선 평소보다 더 영양가 높은 식품이 필요한데, 동물의 혈액은 단백질과 지방, 철분이 풍부하게 농축된 최고의 '종합 영양제'다. 마늘의 짝짓기 억제는 흡혈 자체가 아닌 흡혈의 원인을 없애주는 근본적인 처방인 셈이다.
반면 기생말벌과 같은 유익한 곤충한테서는 마늘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 곤충에게는 수용체 TrpA1이 없는 것이 차이를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마늘이 표적 곤충에게만 선택적으로 작용하는 퇴치제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뜻한다.
연구를 이끈 존 칼슨 교수는 마늘이 농가에서 저렴하고 안전하게 구할 수 있는 친환경 방제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가축에 직접 마늘 추출물을 뿌려 체체파리 번식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논문 정보
A phytoscreen identifies a garlic compound as a deterrent of mating and egg laying in Drosophila and mosquitoes.
DOI: 10.1016/j.cell.2026.03.037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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