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같은 향·식감의 버섯… 세월이 빚어낸 된장… 욕망 비우는 음식이 ‘세련된 미식 언어’로 변신[정주영이 만난 ‘세상의 식탁’]

방콕의 새벽, 주황색 가사를 입은 스님들이 맨발로 거리를 지나갔다. 길가에 무릎을 꿇은 사람들이 밥과 반찬, 과일 등을 발우에 담아 건넸다. 그 안에는 닭고기 꼬치와 돼지고기 요리도 섞여 있다. 바치는 이의 정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포용이자 수행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동남아 불교권의 사원 밥상은 현지 일반식과 거의 다르지 않다. 한국과 달리 향신료가 풍부하고, 육식도 가리지 않는다.
불교 음식이 ‘채식’이라는 등식은 사실 한 문화권의 경험일 뿐이다. 부탄과 몽골처럼 채소 재배가 어려운 환경에서는 생존을 위한 육식을 전통적으로 허용해 왔다. 이들에게 수행의 핵심은 음식의 종류보다 탐욕을 줄이는 데 있다.
중국 불교 음식은 금욕보다 ‘재현’의 방식을 택했다. 고기를 즐기는 문화 속에서 사찰은 콩이나 밀단백질, 버섯 등으로 고기의 식감과 모양을 구현하는 기술이 일찍부터 발달했다. 그래서 현지 채식당에서 두부와 곤약으로 만든 ‘동파육’이나 ‘닭튀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 실리콘밸리가 수억 달러를 투자하는 대체육 실험을 중국 사찰은 이미 천년 전부터 이어오고 있었던 셈이다.
한국의 사찰음식은 또 다른 풍경에서 형성됐다. 뚜렷한 사계절과 산이 많은 지형에서 사찰은 제철 산나물과 저장식품 중심으로 식문화를 빚었다. 된장과 간장, 묵나물과 장아찌, 들깨와 버섯은 긴 겨울을 견디는 저장의 기술이다. 마늘·파·부추 같은 오신채는 향이 강해 수행자의 마음을 흔든다고 여겨 쓰지 않는다. 세속에서는 맛을 살리는 재료지만, 절집에서는 오히려 번뇌를 깨우는 재료가 된다. 같은 식재료도 어디에 놓이느냐에 따라 역할이 달라진다. 같은 부처를 모시더라도 밥상은 그 땅의 기후와 지형, 그리고 시간이 빚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사찰음식은 오랫동안 수행의 영역에 가까운 음식이었다.
최근 세계 미식계는 오히려 그 절제된 맛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버섯은 고기 못지않은 향과 식감을 내고, 된장은 오랜 기간 발효가 쌓아 올린 깊은 풍미를 품고 있다. 고기와 강한 자극 대신 시간의 맛으로 완성한 음식이다. 경험으로 전해지던 발효의 원리는 이제 미생물학의 언어로 해석된다. 욕망을 비우기 위해 만든 음식이 가장 세련된 미식의 언어가 됐다.

사찰음식의 재발견 뒤에는 미식의 변화와 기후위기, 그리고 콘텐츠의 힘이 있다. 축산업이 온실가스 배출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무엇을 더 먹을까’보다 ‘무엇을 덜 소비할까’가 중요한 질문이 됐다. 지역 제철 식재료를 쓰고, 가공을 최소화하며, 발효로 자연스럽게 저장하는 방식. 수백 년 전부터 동물성 재료 없이도 깊은 풍미를 구현해 온 음식 체계가 21세기 환경 위기의 해답으로 다시 호출됐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통해 한국 사찰음식이 철학과 수행의 문화로 세계에 알려진 것도 우연이 아니다. 자극적인 매운맛과 화려한 외양으로 소비되던 K푸드의 흐름 속에서, 사찰음식은 한국적 미학을 담은 또 하나의 음식 문화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태국의 새벽 탁발, 중국의 대체육, 한국의 장맛. 다른 풍토와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 음식들은 이제 세계의 파인다이닝 메뉴에서 다시 만나고 있다.
한양대 관광학과 겸임교수
미국 문화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음식문화의 수수께끼’에서 종교적 음식 금기를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환경 적응의 결과로 해석했다.
힌두교가 소를 신성시한 것은 농경사회에서 소가 노동력과 우유를 제공하는 핵심 자산이었기 때문이고, 이슬람권의 돼지고기 금기도 고온 건조한 지역에서 사육 효율이 낮고 질병 위험이 컸던 조건과 맞닿아 있다.
인간은 흔히 신념에 따라 음식을 선택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때로는 기후와 생존 방식이 먼저 식탁을 만들고 종교가 나중에 그 이유를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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