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 출구 잃은 美시장, 말 한마디마다 ‘널뛰기’ [트럼프 스톡커]

뉴욕=윤경환 특파원 2026. 5. 19.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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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환 특파원의 트럼프 스톡커(Stocker) <220>
뉴욕 증시, 이란 새 종전안 제시에 올랐지만
트럼프 거부에 급락, 공격 보류에 낙폭 축소
“미합의 땐 전면전”...미중 ‘노딜’ 뒤 더 예민
원유 몇 주 치뿐...美채권·주담대 금리 급등
반도체주 차익실현...코스피도 변동성 확대
지난해 5월 14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국왕. 2013년 서른세 살의 나이에 재위에 오른 알사니 국왕은 프랑스의 축구팀 파리 생제르맹 FC의 구단주로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18일 트럼프 대통령에 따르면 알사니 국왕은 모하메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모하메드 빈 자예드 알 나흐얀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과 함께 미국에 대(對)이란 군사 작전 보류를 요청했다. 이란과 핵무기 개발 금지를 포함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AFP연합뉴스

미국과 이란 간 전쟁에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자 글로벌 금융시장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우려에 변동성을 점점 키우고 있다. 특히 지난 13~15일(현지 시간) 미중 정상회담까지 소득 없이 끝나자 월가에서도 뚜렷한 종전 시나리오를 떠올리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제는 시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이란 측 발언 하나하나에 하루 종일 실시간으로 영향을 받는 수준까지 달해 투자 불안정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는 분석이다. 미국 증시가 떠안은 불확실성은 나비 효과처럼 다른 글로벌 증시에도 번져 코스피시장 등도 일희일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란 새 종전안 제시에 상승 출발한 뉴욕 증시, 트럼프의 거부 반응에 급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이란 반관영 타스남통신은 18일 대미 협상단과 가까운 소식통을 인용해 “이전 종전안에 대해 미국이 최근 답변을 보냈기에 이란이 일부 수정한 14개 조항을 중재국인 파키스탄을 통해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이번 제안에는 종전 협상 재개와 신뢰 구축 조치에 대한 문제가 집중됐다”며 “미국이 협상 기간 대(對)이란 원유 수출 제재를 해제하거나 임시로 면제하는 조건에 동의했다”고 덧붙였다. 타스남통신에 따르면 이란은 종전안에 점진적인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요구하며 해상 항로 의제와 핵 문제를 분리하길 원한다고 제안했다. 종전안에는 이란이 다층적인 국제적 보장을 받길 바란다는 내용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서는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도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14개 조항의 제안서를 전달했고 미국 측도 자신들의 주안점을 우리에게 제시했다”며 “지난 며칠 동안 미국의 제안들을 검토했고 이에 대한 우리의 의견을 다시 전달했다”며 “파키스탄 중재자를 통한 협상 과정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이날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X(옛 트위터)를 통해 유가 안정을 위해 특정 국가들이 해상에 발이 묶인 러시아산 원유를 거래할 수 있도록 30일간의 일반 면허를 발급한다고 밝혔다. 앞서 미국 재무부는 3월 12일 러시아산 원유 제재 면제를 30일간 승인한 뒤 지난달 18일 이 조치를 한 달 더 연장한 바 있다. 해당 조치가 이달 16일로 마감하자 사실상 이를 한 번 더 유예한 셈이다.

종전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고 러시아산 원유 공급도 지속된다는 소식에 국제 유가는 이날 장 초반부터 하락한 채 출발했다. 덩달아 뉴욕 증시도 일제히 상승장으로 시작했다.

문제는 그 다음 이어진 미국의 반응이었다. 미국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는 장중 자국 정부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백악관이 이란의 제안에 불만을 품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17일 밤 파키스탄을 통해 이란의 종전 제안을 받았지만, 여기에는 ‘형식적인 진전’만 담겼다고 평가했다. 핵무기 개발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언급이 더 많이 포함돼 있지만, 우라늄 농축 중단이나 기존 고농축 우라늄 비축량 인도에 대한 구체적인 약속은 빠졌다고 지적했다. 이란에 대한 일부 석유 수출 통제 유예 조치도 무작정 도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19일 백악관 상황실에서 최고위 안보팀 회의를 갖고 이란에 대한 공격 재개 여부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카타르·사우디·UAE가 만류해 19일 군사작전 보류...합의 안 되면 전면 공격”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AFP연합뉴스
악시오스 보도에 뉴욕 증시는 다시 혼조 양상에 빠졌다. 불 난 집에 기름을 부은 이는 이번에도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뉴욕포스트 전화 인터뷰에서 “이란에 대한 어떠한 양보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이란은 곧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좌절감을 느끼지는 않는다”면서도 “이란은 그 어느 때보다 합의를 원하고 있고 미국이 더 강한 타격을 가할 능력이 있음을 충분히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15일 중국에서 미국으로 돌아오는 전용기 안에서 취재진에게 “이란 핵 프로그램의 20년 중단이면 괜찮다”고 언급한 부분에 대해서도 “현재로선 어떤 것도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고 거리를 뒀다. 이 보도 이후 국제 유가는 장중 급등하고 뉴욕 증시는 빠르게 하락으로 돌아섰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 외에도 중동의 분쟁 양상이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 같다는 징후는 여전히 많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는 이날 SNS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해저 인터넷 광케이블에 대해 허가제를 도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슬람혁명수비대는 “이란 당국은 1982년 UN 해양법협약(UNCLOS)에 근거해 이 해역을 통과하는 모든 해저 광케이블을 대상으로 면허 취득 강제, 운영 감독, 주권 수수료 부과 등과 같은 사법적 조처를 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레바논 보건부는 같은 날 이스라엘과 친(親)이란 무장 정파 헤즈볼라 간 무력 충돌로 자국에서만 3020명이 넘게 죽었다고 발표했다. 사망자 가운데는 여성 292명과 어린이 211명도 포함됐다. 헤즈볼라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에 이란의 전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하자 3월 2일 곧바로 참전을 선언했다. 선제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은 이에 레바논 남부를 침공하고 수도 베이루트를 비롯한 이 나라 전역에 폭격을 퍼부었다. 지난달 17일부터는 미국의 중재로 휴전에 돌입했으나, 지금도 무력 충돌은 끊이지 않고 있다. 중재국인 파키스탄도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사우디아라비아에 전투기 비행대대와 방공 미사일 시스템, 8000명 규모의 병력을 이날 전격 배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아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리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전쟁부) 장관과 댄 케인 합동참모의장에게 19일 하려고 했던 대이란 공격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썼다. 지난달 7일부터 이어진 휴전 조치가 19일 끝날 것이라는 사실조차 시장에서 아무도 모를 때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격 중단 지시의 이유로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국왕과 모하메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모하메드 빈 자예드 알 나흐얀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의 군사 작전 보류 요청을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은 심각한 협상이 현재 진행되고 있고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며 “이번 합의에는 이란의 핵무기 보유 금지가 포함될 것이고 미국과 중동, 그 외 다른 모든 국가가 수용할 만한 조건이라고도 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수용 가능한 합의가 도출되지 않을 경우 즉시 전면적인 대규모 공격을 할 준비를 갖추라고 헤그세스 장관과 케인 의장, 미군에 추가 지시했다”고 부연했다.

상업용 원유 몇 주 치만 남고 美주담대 금리는 급등...코스피도 당분간 변동성 커질 듯

지난 18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전광판에 코스피 종가가 표시된 모습. 연합뉴스
국제 유가와 뉴욕 증시는 그나마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 보류 소식에 각각 상승폭과 낙폭을 줄였다. 우량주 중심의 다우지수는 0.32% 상승하고, S&P500과 나스닥지수는 각각 0.07%와 0.51% 하락으로 마쳤다. 온종일 요동치다가 증시가 결국 방향성을 잃은 셈이다. 영국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7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은 2.60% 오른 배럴당 112.10달러로 장을 마쳤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6월 인도분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도 3.07% 오른 배럴당 108.66달러를 기록했다. 브렌트유와 WTI 모두 3거래일 연속 상승 곡선을 그리며 이달 4일과 지난달 7일 이후 각각 최고가로 올라섰다. 이날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상업용 원유 재고가 급격히 고갈되고 있으며 현재 몇 주 치만 남았다고 우려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8일(현지 시간) 금리정보 업체 뱅크레이트를 인용해 이날 기준 미국의 30년 만기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가 일주일 전 6.45%에서 6.49%로 0.04%포인트 올랐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9월 초(6.50%) 이후 8개월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미국 주담대 금리는 중동 전쟁 직전인 2월 26일까지만 해도 5.98%까지 내려가 2022년 9월 이후 처음으로 5%대까지 떨어졌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지난해 9~12월 3연속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대규모 주택저당증권(MBS) 매입 방침을 시사한 여파였다. 주택저당증권이란 주담대를 기초자산으로 해 발행하는 증권의 일종이다. 이 금리는 미국 일반 주택 구매자들의 주담대 금리를 산정하는 기초금리가 된다.

그러다 같은 달 28일 이란 전쟁이 발발하자 주담대 금리는 빠르게 반등했다. 5주 연속 상승하던 미국 주담대 금리는 지난달 7일 미국과 이란이 휴전에 합의하자 안정을 찾았지만, 종전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또다시 반등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이후에도 중동 정세의 해결 실마리가 보이지 않자 주담대 금리의 준거가 되는 미국 국채 30년물 금리는 지난 15일 5.12%까지 치솟았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7월 이후 19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의 거취가 불분명해진 영향으로 지난주 글로벌 주요 선진국에서 장기 국채 투매 현상이 나타난 점도 미국 주담대 금리를 밀어올린 요인이 됐다. 일본도 물가 상승률이 예상보다 높게 나오면서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1997년 이후 29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상승했다.

미국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는 한국의 코스피 등에도 막대한 영향을 줄 전망이다. 당분간 중동 정세 변화에 따라 큰 폭의 주가 등락 가능성을 감안하고 투자에 나서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 15일 사상 처음 8000선을 돌파했던 코스피는 18일에도 미중 정상회담에서 엔비디아의 중국 수출 활로를 마련하지 못했다는 실망감에 장 초반 7100까지 밀렸다. 장중 한때에는 매도 사이드카(프로그램 호가 효력 정지)까지 발동됐다. 코스피는 이후 7500대를 간신히 사수했으나, 여전히 불안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뉴욕 증시에서는 18일에도 그간 상승폭이 컸던 반도체주 중심으로 차익실현 매물이 쏟아졌다. 코스피 대장주인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 등 메모리반도체 기업들과 주가 연동 성향이 강한 미국의 마이크론, 샌디스크는 무려 5.95%, 5.30%나 급락했다.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도 2.47% 하락했다.

※ ‘트럼프 스톡커(Stocker)’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대에 투자에 도움이 될 만한 미국의 시장·기업·정책·정치·외교 관련 현장 이야기와 현안 분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구독하시면 유익한 미국 소식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뉴욕=윤경환 특파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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