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 출구 잃은 美시장, 말 한마디마다 ‘널뛰기’ [트럼프 스톡커]
뉴욕 증시, 이란 새 종전안 제시에 올랐지만
트럼프 거부에 급락, 공격 보류에 낙폭 축소
“미합의 땐 전면전”...미중 ‘노딜’ 뒤 더 예민
원유 몇 주 치뿐...美채권·주담대 금리 급등
반도체주 차익실현...코스피도 변동성 확대

미국과 이란 간 전쟁에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자 글로벌 금융시장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우려에 변동성을 점점 키우고 있다. 특히 지난 13~15일(현지 시간) 미중 정상회담까지 소득 없이 끝나자 월가에서도 뚜렷한 종전 시나리오를 떠올리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제는 시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이란 측 발언 하나하나에 하루 종일 실시간으로 영향을 받는 수준까지 달해 투자 불안정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는 분석이다. 미국 증시가 떠안은 불확실성은 나비 효과처럼 다른 글로벌 증시에도 번져 코스피시장 등도 일희일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에 더해 이날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X(옛 트위터)를 통해 유가 안정을 위해 특정 국가들이 해상에 발이 묶인 러시아산 원유를 거래할 수 있도록 30일간의 일반 면허를 발급한다고 밝혔다. 앞서 미국 재무부는 3월 12일 러시아산 원유 제재 면제를 30일간 승인한 뒤 지난달 18일 이 조치를 한 달 더 연장한 바 있다. 해당 조치가 이달 16일로 마감하자 사실상 이를 한 번 더 유예한 셈이다.
종전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고 러시아산 원유 공급도 지속된다는 소식에 국제 유가는 이날 장 초반부터 하락한 채 출발했다. 덩달아 뉴욕 증시도 일제히 상승장으로 시작했다.
문제는 그 다음 이어진 미국의 반응이었다. 미국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는 장중 자국 정부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백악관이 이란의 제안에 불만을 품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17일 밤 파키스탄을 통해 이란의 종전 제안을 받았지만, 여기에는 ‘형식적인 진전’만 담겼다고 평가했다. 핵무기 개발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언급이 더 많이 포함돼 있지만, 우라늄 농축 중단이나 기존 고농축 우라늄 비축량 인도에 대한 구체적인 약속은 빠졌다고 지적했다. 이란에 대한 일부 석유 수출 통제 유예 조치도 무작정 도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19일 백악관 상황실에서 최고위 안보팀 회의를 갖고 이란에 대한 공격 재개 여부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 외에도 중동의 분쟁 양상이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 같다는 징후는 여전히 많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는 이날 SNS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해저 인터넷 광케이블에 대해 허가제를 도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슬람혁명수비대는 “이란 당국은 1982년 UN 해양법협약(UNCLOS)에 근거해 이 해역을 통과하는 모든 해저 광케이블을 대상으로 면허 취득 강제, 운영 감독, 주권 수수료 부과 등과 같은 사법적 조처를 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레바논 보건부는 같은 날 이스라엘과 친(親)이란 무장 정파 헤즈볼라 간 무력 충돌로 자국에서만 3020명이 넘게 죽었다고 발표했다. 사망자 가운데는 여성 292명과 어린이 211명도 포함됐다. 헤즈볼라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에 이란의 전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하자 3월 2일 곧바로 참전을 선언했다. 선제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은 이에 레바논 남부를 침공하고 수도 베이루트를 비롯한 이 나라 전역에 폭격을 퍼부었다. 지난달 17일부터는 미국의 중재로 휴전에 돌입했으나, 지금도 무력 충돌은 끊이지 않고 있다. 중재국인 파키스탄도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사우디아라비아에 전투기 비행대대와 방공 미사일 시스템, 8000명 규모의 병력을 이날 전격 배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아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리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전쟁부) 장관과 댄 케인 합동참모의장에게 19일 하려고 했던 대이란 공격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썼다. 지난달 7일부터 이어진 휴전 조치가 19일 끝날 것이라는 사실조차 시장에서 아무도 모를 때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격 중단 지시의 이유로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국왕과 모하메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모하메드 빈 자예드 알 나흐얀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의 군사 작전 보류 요청을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은 심각한 협상이 현재 진행되고 있고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며 “이번 합의에는 이란의 핵무기 보유 금지가 포함될 것이고 미국과 중동, 그 외 다른 모든 국가가 수용할 만한 조건이라고도 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수용 가능한 합의가 도출되지 않을 경우 즉시 전면적인 대규모 공격을 할 준비를 갖추라고 헤그세스 장관과 케인 의장, 미군에 추가 지시했다”고 부연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8일(현지 시간) 금리정보 업체 뱅크레이트를 인용해 이날 기준 미국의 30년 만기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가 일주일 전 6.45%에서 6.49%로 0.04%포인트 올랐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9월 초(6.50%) 이후 8개월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미국 주담대 금리는 중동 전쟁 직전인 2월 26일까지만 해도 5.98%까지 내려가 2022년 9월 이후 처음으로 5%대까지 떨어졌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지난해 9~12월 3연속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대규모 주택저당증권(MBS) 매입 방침을 시사한 여파였다. 주택저당증권이란 주담대를 기초자산으로 해 발행하는 증권의 일종이다. 이 금리는 미국 일반 주택 구매자들의 주담대 금리를 산정하는 기초금리가 된다.
그러다 같은 달 28일 이란 전쟁이 발발하자 주담대 금리는 빠르게 반등했다. 5주 연속 상승하던 미국 주담대 금리는 지난달 7일 미국과 이란이 휴전에 합의하자 안정을 찾았지만, 종전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또다시 반등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이후에도 중동 정세의 해결 실마리가 보이지 않자 주담대 금리의 준거가 되는 미국 국채 30년물 금리는 지난 15일 5.12%까지 치솟았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7월 이후 19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의 거취가 불분명해진 영향으로 지난주 글로벌 주요 선진국에서 장기 국채 투매 현상이 나타난 점도 미국 주담대 금리를 밀어올린 요인이 됐다. 일본도 물가 상승률이 예상보다 높게 나오면서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1997년 이후 29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상승했다.
미국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는 한국의 코스피 등에도 막대한 영향을 줄 전망이다. 당분간 중동 정세 변화에 따라 큰 폭의 주가 등락 가능성을 감안하고 투자에 나서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 15일 사상 처음 8000선을 돌파했던 코스피는 18일에도 미중 정상회담에서 엔비디아의 중국 수출 활로를 마련하지 못했다는 실망감에 장 초반 7100까지 밀렸다. 장중 한때에는 매도 사이드카(프로그램 호가 효력 정지)까지 발동됐다. 코스피는 이후 7500대를 간신히 사수했으나, 여전히 불안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뉴욕 증시에서는 18일에도 그간 상승폭이 컸던 반도체주 중심으로 차익실현 매물이 쏟아졌다. 코스피 대장주인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 등 메모리반도체 기업들과 주가 연동 성향이 강한 미국의 마이크론, 샌디스크는 무려 5.95%, 5.30%나 급락했다.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도 2.47% 하락했다.

뉴욕=윤경환 특파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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