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가, 빨리" 마마의 고함 직후 호박만 한 돌이 내 옆을 스쳐갔다 [겨울 히말라야 트레킹]

조진수 네팔·히말라야 전문 사진가 2026. 5. 19.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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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리초 탈로 올라가는 스태프들 뒤쪽에 틸리초 피크가 보인다.

12월 8일

나르마을(4,200m)을 향해 출발한다. 길은 잘 닦여 있으나 상당한 급경사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두 시간을 어렵게 올라갔더니 야크 카르카가 나온다. 이 카르카에서 한 고비를 더 넘어가면 경사는 급격히 약해진다.

높고 거대한 초르덴이 압도적이다. 넓적한 막돌을 정교하게 쌓아 올린 탑 형태로 7층은 넘어 보인다. 수없이 많은 돌이 서로 맞물려 있다. 삐뚤빼뚤하면서도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혀 있어 아름답다.

그 앞에는 아홉 개의 3층 초르덴이 길게 늘어서 있다. 역시 돌을 쌓아 만들었다. 오랜 세월의 모진 풍상에도 전혀 변형이 없다는 건 석공의 놀라운 솜씨를 말해 준다. 이 탑들은 주변 산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곳에서 약간 올라가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나르마을이 나온다. 약 100가구나 되는 큰 마을이다. 집들은 촘촘하게 붙어 있고, 성채처럼 돌벽을 높이 쌓아 올렸다. 바람이 강한 탓일 것이다. 돌을 다루는 솜씨가 거의 전문가 수준이다.

마을 앞과 계곡 건너편에는 넓은 밭이 있다. 주로 보리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초르덴과 마니스톤은 새로 만들어 산뜻하지만 옛 모습은 없다. 지금은 마을 사람들이 추위를 피해 대부분 따뜻한 지역으로 가서 일부 주민들만 남아 있다.

마을 뒷산에 있는 대형 구루 린포체 불상은 새로 만들었다. 시멘트로 만들었다는데 상당히 정교하다. 문헌에 의하면 네팔의 불교 미술 기능인들은 당나라 시대부터 솜씨를 인정받아 티베트, 중앙아시아, 중국까지 진출했다.

나르마을을 뒤로 하고, 캉라 베이스캠프(4,620m)로 향한다. 올라가면서 바라보는 캉라 고개는 온통 눈에 덮여 있어 걱정스럽다. 지난 10월에 내렸던 폭설이 아직 녹지 않았다. 그러나 며칠 전 사람들이 야크 무리를 몰고 넘어갔다고 한다.

야크는 추위에 강하고, 힘이 세며, 발굽은 튼튼하다. 야크 무리가 넘어갔다면 발굽으로 눈을 헤쳐 놓았을 것이고, 적어도 발자국은 남아 있을 것이다. 러셀로 눈길을 뚫어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걱정이 반쯤은 줄어든다.

그런데 올라가면서 구름이 빠르게 몰려와 지나간다. 고산의 날씨는 변화가 무쌍하다. 눈이 내리면 야크가 개척해 놓은 길은 흔적없이 사라진다. 어쩌겠는가. 모든 걸 하늘에 맡기고 올라간다.

오후 3시경 캉라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돌과 흙으로 지은 대피소가 두 개 있다. 작은 돌집은 안에서 취사가 가능하다. 나뭇가지를 주워와 모닥불을 피워 몸을 녹이고, 땀에 젖은 옷을 말렸다.

이곳에는 화장실이 있지만 지저분해서 사용은 곤란하다. 여담이지만 트레킹을 하다 보면 변비에 걸리기 쉽다. 체력 소모가 심하고, 땀을 많이 흘려서다. 물을 자주 마시고, 특히 유산균을 가져가면 큰 도움이 된다.

돌이켜보면 히말라야를 카메라에 담은 세월이 30년을 넘는다. 발걸음은 때때로 삐뚤빼뚤한 막돌처럼 거칠고, 빈틈이 많았다. 그 막돌이 서로 맞물려 조화로운 탑을 이룰 수 있을까. 확신할 수는 없다. 그저 열과 성을 다할 뿐이다.

나르마을 입구에 있는 문.
틸리초 베이스캠프(4,150m) 가는 길가의 야크들. 뒤쪽에 틸리초 피크가 보인다.
틸리초 베이스캠프 가는 길가의 계곡 풍경.

12월 9일

밤새 뒤척이며 잠을 설쳤다. 스태프들도 마찬가지다. 캉라(5,320m)는 온통 눈에 덮여 있고, 쿠춤로 패스보다 해발 420m가 더 높다. 어찌 걱정되지 않겠는가. 새벽에 나가보니 별이 총총해서 다행히 날씨는 맑을 것 같다.

랜턴이 부실해 어둠이 걷히면서 캉라를 향해 출발한다. 길은 완만한 오르막이고 부분적으로 눈이 얼어 있어 조심스럽게 진행한다. 오전 8시경 하이캠프에 도착했다. 아래쪽에 계곡물이 있어 텐트를 칠 수 있는 평지다.

여기서부터는 대지가 온통 눈이다. 아이젠을 신고 올라가야 한다. 나르마을에서 얻어 온 철사로 망가진 아이젠은 다 손질해 두었다. 고개를 몇 개 넘어 상태가 모두 시원찮다. 비상용 간단한 공구를 늘 가지고 다닌다.

고글도 필수다. 멋하고는 상관없다. 자외선이 하얀 눈에 반사되어 자칫하면 설맹에 걸릴 수 있다. 비상용으로 하나 더 준비하면 좋다. 다행히 야크와 사람들이 올라간 자국이 선명하다. 경사가 있고 바닥은 울퉁불퉁하지만 이것도 고마울 뿐이다.

오전 9시 30분경 캉라 정상에 올랐다. 커다란 돌탑에 매달린 울긋불긋한 룽다가 바람에 요란하게 휘날린다. 고개 건너편 안나푸르나산군이 파노라마로 조망된다. 날카로운 능선과 우툴두툴한 절벽, 험하게 패인 골짜기까지 또렷하게 보인다. 그러나 공간이 좁고, 양옆은 경사가 심해서 편하게 머물 장소는 아니다. 급히 사진을 몇 장 찍고, 마낭 방면으로 내려간다. 길은 급경사를 이루고, 파석이 수북이 쌓여 있는 데다 눈까지 덮여 있다.

본래 산행은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가 더 힘들다. 파석은 주르륵 밀리고, 눈이 미끄러워서 발 디딜 곳조차 마땅치 않다. 경사면 전체가 그런 상태다. 굴러 떨어지면 큰 사고가 날 것은 자명하다. 무릎에 무리가 갈 정도로 한참 내려간다.

빈 몸도 그러한데 짐을 진 포터들은 더하다. 서로 도움을 주기는 어렵다. 얽히면 더 위험하다. 각자 알아서 내려가는 게 오히려 낫다. 모두 한발 한발 온 신경을 집중한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등에서 진땀이 흐른다.

다리는 점점 힘이 빠지면서 후들거린다. 그러나 경사면은 끝날 기미가 없다. 이를 악물고 견딜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지옥 길이 따로 없다. 무려 두 시간의 사투 끝에 겨우 파석 지대에서 벗어났다.

눈길은 한참을 이어진다. 물탱크가 있어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다. 모처럼 휴대폰이 터져서 카톡이 연신 울린다. 여기서 차가 닿는 나왈마을(3,660m)은 그다지 멀지 않다. 곧바로 캉사르(3,734m)로 가려고 알아보니 오늘은 지프가 없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나왈마을에서 묵기로 했다. 이 마을은 100가구에 달한다. 주민들은 피한을 가거나 돈 벌러 가서 현재는 35가구쯤 실거주한다. 야크와 양을 키우고, 감자와 보리농사를 짓는다. 소출이 적어 식량의 70%는 외부에서 들여온단다.

캉라는 높고 험해서 넘으려는 사람이 드물지만 안나푸르나산군을 조망하는 곳이라 그런 대로 이곳 마을을 오는 사람들도 있어 로지가 운영된다고 한다. 그래도 힘든 캉라를 넘어와 쉴 수 있는 로지가 있어 고마울 뿐이다.

시리 카르카 로지 전경.

12월 10일

아침 일찍 예약한 볼레로 지프가 도착했다. 캉사르까지 차로 이동하기로 했다. 도보로 가려면 하루 이상이 걸린다. 어려운 산행을 했으므로 좀 쉬어가고, 시간을 절약할 필요가 있다.

지프 운전사는 신이 나서 달린다. 이들은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에 익숙해서 운전 습관이 얌전하지 않다. 거칠고 뚝심이 있다. 포장도로는 싱거운지 과도하게 속력을 낸다. 속도를 좀 줄여 달라고 부탁했다.

이 도로는 폭이 좁다. 원활한 교행이 어렵고, 추락을 막아 주는 가드레일도 없다. 도로 옆은 위험한 절벽이다. 게다가 구불구불 커브가 많다. 20년은 넘은 오래된 차고 타이어도 안 좋아 펑크가 날까 조마조마하다.

브라카(3,439m)를 지난다. 브라카 곰파(절)는 크게 새로 지어서 깨끗하지만 주변 지형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옛 모습이 더 좋았다. 마낭 올라가는 길 양편에는 생뚱맞게 깃발을 쭉 꽂아놓았다.

마낭(3,540m)을 지나 캉사르에 도착했다. 1시간 반쯤 걸렸다. 찬바람이 매섭다. 스태프들은 간단하게 라면으로 아침을 때우고, 틸리초 피크를 향해 출발한다. 타레 곰파를 거쳐 시리 카르카를 지난다.

길은 완만한데 먼지가 푸석푸석 일어나 호흡하기가 힘들다. 히말라야는 바다에서 융기한 땅이라 미세한 모래와 개흙이 섞여 있다. 거기에 짐승의 배설물까지 뒤섞여 있어 숨쉬기가 불쾌하다.

낙석지대를 통과한다. 낙석이 심한 곳은 돌로 담을 쌓아 막아놓았다. 잔뜩 긴장하고 지나는데 거의 빠져나올 무렵 마마가 빨리 앞으로 가라고 소리친다. 무심결에 그 말에 따랐는데 호박 크기의 돌이 10여 m 뒤에 우당탕 굴러 떨어진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가속도가 붙은 돌에 맞으면 사망 아니면 중상이다. 그 돌이 언제 떨어지는가는 하늘만이 안다. 일행들은 안테나를 바짝 세우고, 돌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지 경계한다. 낙석은 그후에도 한 번 더 일어났다.

오후 1시 반경 틸리초 베이스캠프(4,150m)에 도착했다. 새로 지은 열두 채의 대형 로지가 있다. 단층도 있고, 이층도 있다. 방이 매우 많은데도 시즌에는 방이 모자란다고 한다. 지금은 비수기라 손님이 많지 않다.

이곳은 가까이서 강가 푸르나(7,454m)와 틸리초 피크(7,134m)를 조망할 수 있는 명소다. 대개는 틸리초 탈(호수)을 구경하고, 타레 곰파 옆길을 지나 야크 카르카를 거쳐 토롱나 패스(5,416m), 무티나트(3,760m)로 빠져나간다. 우리는 틸리초 콜라 베이스캠프(4,920m)를 거쳐 이스턴 패스(5,340m)를 지나 좀솜(2,720m)으로 갈 예정이다. 평소에는 갈 만한데 지금은 눈이 덮여서 어려운 코스다. 로지 주인들은 폭설이 내린 이후 한 팀도 지나간 적이 없다며 걱정한다.

마마는 눈이 거의 없던 지난 9월에 가봤다고 한다. 그러나 눈에 덮여 있으면 길을 분간할 수 없다. 일부 코스는 대단히 위험하다고 걱정한다. 전인미답의 눈길이다. 이번 트레킹의 마지막 고비다. 그러나 모험 없는 승리는 없다.

메소칸토패스(5,245m) 못미처 경사면을 지나는 스테프들.

12월 11일

아침식사로 호박죽을 끓였다. 마나슬루부터 무거운 호박을 지고 온 이유가 있다. 마지막 스퍼트를 내려면 잘 먹어야 한다. 호박을 끓여 짬빠 가루와 지우락을 넣었다. 맛이 훌륭하다. 지우락은 쪄서 납작하게 눌러놓은 쌀이다.

밤사이 동행이 두 명 늘었다. 쿰부에 사는 셰르파들이다. 이 지역에서 유럽팀을 안내할 예정이라 미리 답사를 나왔다. 침낭을 가져오지 않은 걸 보면 가볍게 둘러보려고 온 듯하다. 로지에서 만났는데 벰바가 함께 가자고 설득해서 합류했다.

틸리초 탈(4,920m)을 향해 올라간다. 길은 좋은 편이다. 그러나 고도가 높아지면서 호흡은 점점 거칠어졌다. 산사태가 난 지점을 통과한다. 쏟아져 내린 돌과 흙을 철망과 돌담으로 막아 놨다. 그럼에도 간간이 낙석이 발생한다.

길은 지그재그로 나 있어 경사는 심하지 않다. 다만 눈이 곳곳에 있어 조심스럽다. 8부 능선부터는 완전히 설국이다. 찬바람이 매서워 아이젠을 차고, 두꺼운 옷으로 갈아 있었다. 히말에서도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설경이다. 넓은 너덜지대는 흰 눈에 완전히 덮여 정적에 휩싸여 있다. 오전 11시경 틸리초 호수에 도착했다. 세 시간쯤 걸렸다. 물이 얼어붙은 틸리초 탈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호수는 상당히 규모가 크다. 보통 산 위에 이런 호수가 있으면 힌두교의 성지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곳에는 부처님과 힌두상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신자들이 바친 가타와 룽다에 묻히다시피 했다.

작은 티하우스 두 채는 비수기라 닫혀 있다. 그 옆에 커다란 건물이 하나 있는데 사방이 이중유리로 되어 있다. 전망대 겸 대피소라고 판단된다. 문은 대충 로프로 묶어 놓았는데 풀고서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낡은 담요 몇 장과 압축 매트가 있다. 누군가 잠을 잔 흔적이 있었다. 눈밭에 텐트를 칠 것이 아니라 이 안에서 자기로 했다. 나는 점심으로 떡라면을 먹고, 스태프들은 국수에 짬빠 가루와 지우락을 넣어 먹었다. 한 끼 식사로 훌륭하다.

벰바 셰르파는 걱정이 되어 점심도 거르고, 마마와 새로 사귄 쿰부 셰르파를 데리고 루트를 개척하러 갔다. 그들은 3시간쯤 지나서야 돌아왔다. 눈은 얼지 않았고, 무릎 혹은 허벅지까지 빠진다고 전한다.

벰바는 로지 주인에게 지나간 사람이 없다는 소식을 들은 후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얼마 전 프랑스팀 12명이 패스를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그가 쿰부 셰르파들을 설득해서 합류시킨 것도 알고 보면 성공 확률을 높이려는 조치다.

사실 눈이 그 정도로 쌓였다면 심각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벰바 셰르파는 포기하자는 소리를 안 한다. 20여 년을 함께했으나 안 된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책임감이 투철하고, 침착하며, 추진력까지 두루 갖춘 사람이다.

빈속에 럭시를 한 컵씩 돌렸다. 술을 나누면서 한 팀이라는 걸 확인하는 시간이다. 뱃속이 후끈하고 따뜻해진다. 돌파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이럴 땐 말은 필요 없다. 이심전심으로 묵묵히 결의를 다지면 족하다.

나르마을 입구의 초르덴 군락지.

12월 12일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짐을 꾸린다. 오늘 산행은 평소와 좀 다르다. 길이 눈에 완전히 덮여 있어 새로 길을 내면서 가야 한다. 도중에 어떤 상황이 닥칠지는 알 수 없다. 시간적인 여유를 두는 게 바람직하다.

새벽 4시에 출발했다. 길은 완만한 내리막이다. 그러나 아이젠을 착용한 발은 눈에 푹푹 빠진다. 스태프들은 등산화에 눈이 들어가 젖은 양말을 새 것으로 갈아 신으며 운행한다. 일반적인 산길보다 몇 배는 더 힘들다. 벰바 셰르파가 어제 미리 길을 냈는데도 만만치 않다.

그가 개척한 길을 그럭저럭 통과하자 여명이 밝아온다. 앞에 우뚝 선 돌산이 햇살에 벌겋게 물들어 간다. 햇살이 비추니 추위는 금방 사라졌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몸풀기에 불과할 뿐이다. 셰르파 3명이 오르막길에서 피켓을 이용해서 러셀을 시작했다. 피켓의 넓적한 곳을 이용해 눈을 헤치며 발 디딜 자리를 만들면서 가는 것이다.

셰르파들이 교대로 루트를 만들면 그 뒤를 스태프들이 따라간다. 나는 후미에 섰다. 사람이 다녔던 길은 단단히 다져 있지만 새로 내는 길은 불안정하다. 게다가 이 지역의 경사지에는 파석이 많다.

내리막에서는 발을 디딜 때마다 눈과 파석이 쭉쭉 미끄러져 여간 고역이 아니다. 빈 몸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무거운 짐을 진 포터들은 균형을 잡기가 까다롭다. 물론 선두는 신중하게 지형을 선택한다. 장대나 돌을 쌓아 놓은 건 길이 있다는 표식이기 때문에 그쪽으로 운행한다. 다음으로는 눈이 얕아 보이거나 경사가 적은 지형을 고른다. 그러나 만만한 곳은 하나도 없다. 어느 정도 각오는 했으나 이 정도로 힘들 줄은 미처 몰랐다.

산소가 희박한 5,000m 이상에서는 평지를 걸어도 힘들다.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는 산길은 솔직히 죽을 맛이다. 숨은 턱까지 차고, 한 걸음 한 걸음은 천근만근이다. 게다가 길은 끝날 기미가 없어 심적인 피로는 극에 달한다.

눈사태가 났던 경사지의 허리를 지난다. 삐끗하면 바로 굴러 떨어지니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신중하게 한 걸음씩 전진한다. 이때 산등성이에서 바위가 떨어지면 피할 여유는 없다. 그야말로 운명을 하늘에 맡기고 간다.

8시간을 걸어 메소칸토패스(5,245m)에 올랐다. 앞에는 다울라기리산군이 보이고, 옆에는 웅장한 틸리초 피크(7,134m)가 서 있다. 뒤쪽의 틸리초 탈은 작게 보인다. 차가 기다리는 야크 카르카로 향했다. 아직 갈 길은 멀다.

급경사의 눈 덮인 절벽 길이 앞을 막아선다. 눈과 파석이 함께 밀리고, 다리는 후들거린다. 그러나 팀의 의지는 굳건하다. 선두는 지그재그로 길을 내고, 후미는 한발 한발 따라갔다. 눈길을 뚫고 또 뚫는 사투는 5시간이나 이어졌다.

야크 카르카에서 대기하고 있던 지프를 만나면서 마침내 산행은 끝났다. 쉽지 않은 코스를 돌파했다. 신의 도움으로 어려운 눈길을 뚫고 나왔다. 그러나 막상 한국에 돌아오니 또 가고 싶어진다. 히말라야는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

메소칸토패스 정상에서 촬영한 스테프들.

월간산 5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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