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같이 죽는 '족쇄' 아니라 모두를 구하는 '생명줄' [등산사전 안자일렌]

"혼자 떨어지면 될 걸, 왜 줄을 묶어서 여러 명을 위험에 빠뜨리나요?"
영화 <버티컬 리미트> 등 재난 영화 속에는 로프 한 줄에 여러 명이 매달려 줄줄이 벼랑 끝으로 사라지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이 자극적인 비주얼은 '줄로 묶이면 다 같이 죽는다'는 강력한 오해를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등반에서 서로의 몸을 묶는 것은 가장 표준적인 안전 시스템이며, 수많은 사람을 살린 현명한 방식이다.
안자일렌anseilen은 추락의 위험이 있는 바위나 설산에서 대원들이 서로의 몸을 로프로 묶고 이동하는 등반 기술이다. 이 방식은 수직 암벽에 비해 비교적 지형이 완만해 등반 시스템을 갖추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주로 쓰인다. 산을 오르는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대비해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효율적인 선택이다.
안자일렌의 진짜 가치는 '상호 구조'에 있다. 혼자 등반하다가 발을 헛디뎌 추락하면 아무도 도와줄 수 없고 결과는 치명적이다. 하지만 줄로 묶여 있으면 이야기가 다르다. 누군가 미끄러지는 순간, 로프로 연결된 다른 대원이 피켈을 눈 속에 깊이 박아 제동 자세를 취함으로써 추락하는 동료의 생명을 붙잡아 줄 수 있다.
이 기술은 1820년 몽블랑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고를 계기로 탄생했다. 당시 의사 하멜이 이끌던 등반대는 정상으로 향하던 중 눈사태를 만났다. 대원들이 한 줄로 바짝 붙어 가고 있었기에 전원이 한꺼번에 눈 속에 파묻혀버렸다. 이 때문에 서로 도움을 주는 것이 불가능했고 대원 3명이 사망했다. 이 사고 이후 대원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로프로 묶어, 서로의 안전을 확인하는 안자일렌 방식이 등반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로프의 긴장도는 지형에 맞춰 조절해야 한다. 빙하가 갈라진 틈인 '크레바스'처럼 수직으로 낙하할 위험이 있는 곳에서는 로프를 팽팽하게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추락 거리를 줄이고 충격을 최소화해 사고를 막을 수 있다. 반대로 경사가 급한 설사면에서는 로프를 손에 몇 차례 감아쥐어 '여유 줄'을 두는 것이 좋다. 동료가 추락할 때 피켈을 눈에 박아 자세 잡을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 등반에서는 하네스의 앞 고리에 로프를 연결하는 것이 기본이다. 양 끝 대원은 '8자 매듭'을, 중간 대원은 '나비 매듭'을 이용한다. 하네스가 없는 비상 상황에서는 '보울라인 매듭'을 이용해 허리에 로프를 직접 묶기도 한다. 대원 간의 거리는 지형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0~15m를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월간산 5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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