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인정한 연습벌레, PGA 챔피언 됐다…에런 라이의 특별한 성장기

김세훈 기자 2026. 5. 19.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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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런 라이(왼쪽)가 17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뉴타운 스퀘어의 아로니밍크 골프클럽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챔피언십 우승 뒤 아내 고리카 비슈노이와 함께 워너메이커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

애런 라이(31)의 메이저 우승은 단순한 이변이나 돌풍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랜 시간 투어에서 함께 경쟁해온 선수들은 미국프로골프(PGA) 챔피언십 우승 직후 한목소리로 “그보다 더 우승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드물다”고 말했다.

영국 가디언은 18일 “투어에서 가장 성실하고 가장 예의 바른 선수 가운데 한 명인 에런 라이가 마침내 메이저 정상에 올랐다”며 “골프계 전체가 그의 우승을 반겼다”고 전했다.

최종 라운드가 끝나기도 전부터 동료 선수들 사이에서는 라이의 우승을 축하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먼저 경기를 마친 로리 매킬로이는 방송 인터뷰 도중 TV 화면 속 라이를 바라보며 “그가 우승할 것 같다. 모두가 기뻐할 일”이라고 말했다. 존 람은 “라이보다 더 좋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했고, 잰더 쇼플리는 “정말 훌륭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라이의 우승은 실력뿐 아니라 그가 걸어온 과정 때문에 더욱 특별하게 받아들여진다. 영국 울버햄프턴 출신인 라이는 인도계 영국인 아버지와 인도계 케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세 가지 문화적 배경 모두를 대표한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말해왔다.

가족의 희생도 컸다. 아버지는 아들의 골프를 위해 직장을 그만뒀고, 어머니는 가족 생계를 위해 두 개의 일을 병행했다. 여동생 역시 14세 때부터 일을 시작했다. 라이는 “가족의 희생과 사랑 없이는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성장 환경은 라이의 성격과 태도에도 큰 영향을 남겼다. 그는 지금도 아이언 헤드커버를 사용하는 선수로 유명하다. 어린 시절 장비가 너무 비싸 소중하게 관리해야 했던 습관이 프로가 된 뒤에도 이어졌기 때문이다. 존 람은 “장비 하나도 존중하는 태도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준다”고 말했다.

라이는 화려한 스타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다. 에이전트도 없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도 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코치들과 후원자, 그리고 프로 골퍼 출신 아내 고리카 비슈노이가 그의 핵심 팀이다. 비슈노이는 한때 인도 여자골프 랭킹 1위에 올랐던 선수다.

투어 안에서는 누구보다 훈련량이 많은 선수로도 알려져 있다. 쇼플리는 “밤 9시에 퍼팅 연습을 마친 뒤 곧바로 체육관으로 향하는 선수”라며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얼마나 노력하느냐가 메이저 챔피언을 만든다”고 말했다.

라이 역시 “아버지는 항상 노력과 헌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며 “골프는 아무것도 당연하게 주어지지 않는 스포츠라는 사실을 계속 깨닫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어린 시절 라이의 골프 인생은 일반적인 엘리트 코스와도 달랐다. 그는 14세가 될 때까지 정규 성인 티가 아닌 맞춤형 거리 코스에서 플레이했다. 또래 선수들이 클럽 대회에 출전할 때 그는 10피트 퍼트 207개 연속 성공으로 기네스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이후 그는 유럽과 중동, 아시아를 오가며 꾸준히 우승 경력을 쌓았다. 케냐 오픈, 홍콩 오픈, 스코틀랜드 오픈, 아부다비 챔피언십 우승에 이어 이번 PGA 챔피언십 정상까지 오르며 커리어 최고의 순간을 만들었다. 가디언은 “에런 라이는 결국 가장 착한 사람이 가장 높은 곳에 오른 이야기”라고 평가했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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