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직장은 옛말… AI에 밀려난 경리직
사무직 중심 女 노동자 직격탄
‘경제적 보상 없는 퇴장’ 씁쓸
대기업 계열사에서 10여년 경리로 근무한 30대 여성 A씨는 지난해 사실상 떠밀리듯 회사를 그만뒀다. 판매대금과 상품 재고, 직원 휴무 관리까지 엑셀로 처리하던 업무들이 인공지능(AI) 기반 프로그램으로 간편화되자 회사 측이 하루아침에 경리직을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회사는 A씨를 포함한 사내 모든 경리에게 ‘판매직 전환’을 요구하며 일방적인 교육 일정을 통보했다. 평소 내향적인 성격인 A씨에게 현장 판매직은 사실상 퇴사하라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A씨는 “입사 때부터 경리로 일했고 10년 넘게 이 업무만 했는데, 하루아침에 판매직을 하라는 건 명백한 ‘갑질’”이라며 “AI가 내가 몸 바친 10년을 지워버렸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2025∼2035 정성적 일자리 전망’에서도 회계나 경리, 은행 사무원 등 단순사무원은 향후 10년간 일자리가 줄어들 직군 중 하나로 분류했다. 반복·규칙적 업무의 경우 AI·자동화에 의해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디자인·콘텐츠 분야도 생성형 AI 영향권이라는 분석이다. 보고서는 이미지·배경·패턴·더빙·음성 재현 자동화가 확대되면서 단순 디자인·편집 보조 직무의 축소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이러한 충격은 여성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국가데이터처가 지난해 발표한 ‘2025년 상반기 지역별고용조사’에 따르면 여성의 상위 10대 취업 직군에는 ‘회계·경리 및 통계 사무직’(74만명)과 ‘일반 지원 사무직’(53만6000명)이 포함된다. 특히 경리·회계 직군은 여성 비중이 80~90%에 달한다. 남성의 경우 대부분 블루칼라 직종 및 기술직종에 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AI 전환의 과도기에 성별 임금 격차가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의 배경이다.

기업은 AI 도입으로 막대한 비용 절감과 효율성을 얻지만, A씨처럼 밀려나는 노동자에 대한 예우는 처참하다. 이들은 기술적 실직이라는 유례없는 변화 앞에 서 있지만, 재교육이나 경제적 보상 등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에서도 소외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AI로 인한 ‘기술적 실직’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겨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와 기업이 AI로 직무를 잃은 노동자들을 방치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맞는 재교육을 제공해야 한다”며 “최근 반도체 슈퍼사이클을 통해 막대한 초과 세수가 걷힐 예정인데 이를 AI 재교육 예산으로 부과하는 등 인적자원 투자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채명준 기자 MIJustic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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