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문답’의 부활...말로 증명하는 AI 시대

실리콘밸리/강다은 특파원 2026. 5. 19.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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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미나이 생성 이미지/제미나이

미 뉴욕주 코넬대 생의공학 수업에서는 지난 학기부터 학생들에게 과제 제출 후 강사와 직접 대화하는 20분짜리 ‘구술 시험’을 추가로 치르도록 한다. 강사가 학생의 과제에 대해 질문을 하고 학생이 답하는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으로 이뤄진다. 말로 조리 있게 설명하고, 순발력 있게 질문에 답하는 능력을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AP통신에 따르면 이런 방식을 도입한 크리스 셰퍼 교수는 “구술 시험은 인공지능(AI)으로 빠져나갈 수 없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말’이 곳곳에서 중요해지고 있다. 코드 작성, 글쓰기 등을 AI가 모두 쉽게, 사람보다 빠르게 하다 보니, AI가 대체하지 못하는 ‘말하기’가 성과에 대한 주요 평가 요소가 된 것이다. 대학에서는 구술 시험이 부활하고, 기업이나 스타트업 투자 평가 때에는 원격 심사 대신 대면 면접이 선호되는 것이다. 오프라인 모임들의 가치도 커지며 ‘AI 기술 발원지’인 실리콘밸리에는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고 있다.

◇구술 면접의 부활

대학에선 구술 면접이 돌아왔다. 미 펜실베이니아대 중동언어문화학과 에밀리 해머 교수는 지난해 봄 수업부터 세미나 수업에서 서면 과제와 구술 평가를 결합하고 있다. 학교 교수학습센터 관계자는 이를 “대면 평가, 서면·구술 모두를 포함한 큰 전환”이라고 했다. 뉴욕대 스턴경영대 한 교수 역시 기말고사에서 학생들이 AI와 구술 시험을 보도록 했다. 학생이 자신의 최종 프로젝트에 대해 음성 AI와 대화하고, AI가 학생 답변을 파고들어 계속 추가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다. AI 도구를 수업에 적극 도입하면서도 학생들의 성취 능력을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한 새 방식이다. AP통신에 따르면 지난 학기 ‘ML 제품 관리’ 수업에선 학생 36명이 9일간 구술 시험을 봤다. 워싱턴포스트는 “AI 사용이 늘면서 대학 교수들이 구술 시험을 실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면 평가도 강화되고 있다. 예일대, 브라운대 등 미 주요 명문 대학은 2026~2027학년도부터 ‘시험 선택화’ 제도를 폐지하고 ‘미국의 수능’인 SAT 등의 시험을 의무화했다. 미 주요 영국 교사 양성·채용 기관 ‘티치 퍼스트’도 대면 평가를 도입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이 기관은 지원자들의 AI 활용이 늘자, 기존의 서면 과제 중심 평가를 줄이고, 대면 평가와 실제 지원자들에게 수업을 시연해보도록 하는 과제형 평가를 늘리고 있다.

구술과 대면 시험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AI 시대 ‘글’의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AI가 코드 작성뿐 아니라 이메일·과제·회의록 등 대부분의 글을 사람보다 더 잘 작성할 수 있게 됐다. 그러다 보니 ‘A 성적 인플레이션’도 심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챗GPT 이후 A 성적이 갑자기 어디에나 넘쳐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심지어 AI 시대 사실상 무료로 끊임없이 새 창작물이 생산되는 중이다.

이 때문에 역설적으로 가치가 올라간 것은 ‘말’이다. 자신이 쓴 글의 논리를 설명하고, 질문에 즉석으로 답하고, 개념을 쉬운 언어로 풀어낼 수 있는지가 중요한 능력이 된 것이다. 과거 유학자들의 강론, 서양 철학자들의 문답법이 대학에서 부활한 셈이다.

◇오프라인 모임 가치 커져

같은 맥락에서 오프라인 모임이 강화되고 있다. 대학이 구술시험으로 학생의 실제 이해도를 확인하려 하듯, 스타트업·기업·투자자들도 사람을 직접 만나 그 사람이 정말 알고 있는지, 판단력이 있는지, 협업 가능한지를 판단하고 싶은 것이다.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Y컴비네이터는 한동안 원격으로도 진행하던 여러 프로그램을 대면으로 전환했다. 시카고대, 카네기멜런 등 미국 중서부 명문 8개 대학은 미 샌프란시스코에 공동 캠퍼스를 짓는다. 창업 생태계가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한 실리콘밸리에 집중된 가운데 자금 조달 등 물리적 거리가 멀어 대면 활동이 제한적인 애로를 해결해 보겠다는 취지다.

실리콘밸리에는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집값이 빠르게 상승하고, 코로나 팬데믹 이후 치솟았던 사무 공간 공실이 줄어들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관광청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올해 이 도시의 관광 매출 규모는 99억달러(약 14조3000억원)에 달해 2019년(96억달러)을 넘어서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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