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한 당신] 암 유전자의 기원과 정체를 규명한 분자생물학자

“암은 유전 질환”이란 흔히 쓰이는 표현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암이 근본적으로 유전자 질병(genetic disease)이라는 의미라면 옳지만, 유전적으로 물려받는(hereditary) 병으로 이해하는 건 부분적으로만 옳다. 생식세포 유전 등 가족력과 관련된 암은 전체의 10% 안팎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암은 후천적(획득성) 유전자 손상으로 발병한다.
암(발병)을 교통사고에 비유하는 것도, 암을 불가항력적 우연의 결과로 돌려 환자의 과도한 자책이나 심리적 위축감을 덜어주는 효과는 있지만, 의학적-생물학적으로 완벽한 인유는 아니다. 암은 교통사고처럼 순간적 단발성 사건이 아니라 대부분 서서히 무너지는 제방처럼 오랜 기간 누적된 원인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의학계는 외적 요인, 즉 환경 및 생활 습관 개선과 조기 진단 등으로 전체 암 발생의 40~50% 정도는 통제가 가능하다고 평가한다.
즉 암은 인체 세포 성장과 분열을 조절하는 주요 유전자가 손상된 결과라는 점에서 유전자 질환이며, 원인은 노화 등 시간과 여러 환경적 요인, 그리고 수억 수조 회 반복된 DNA 복제 과정에서 비롯된 무작위적 오류(우연), 유전적 요인 등 다양하다. 흔히 노화를 암의 최대 위험요인이라고 하는 까닭도 세포 분열 횟수가 늘어날수록 복제 오류의 가능성이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고, 그 오류(유전자 고장)를 바로잡는 암 억제 유전자의 성능 또한 약해지기 때문이다.
암에 대한 저 모든 현대의학적 지식은 1970년대 이후 50년 남짓의 성과다. 또 그건 언제든 발아할 수 있는 암의 씨앗이 모든 건강한 동물(인체)의 몸에 내재한다는 단순하고도 무서운 진실, 즉 언제든 암 유전자(oncogene)로 바뀔 수 있는 '원(源)암 유전자(proto-oncogene)’의 발견에서 비롯됐다.
"암에 대한 개념적 틀"을 바꾼 그 발견 덕에 의과학계는 원암 유전자란 무엇이고 또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것들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암유전자로 변질(고장)돼 암을 유발하는지 등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어떤 원암유전자가 고장 났고 어떻게 수리할지를 연구함으로써 근년의 암 정밀 예방-진단과 표적 치료 시대를 열 수 있었다.
동료 과학자 해럴드 바머스(Harold E. Varmus, 1939~)와 함께 1976년 레트로바이러스 암유전자(c-src)의 세포 기원을 밝혀냄으로써 실질적 종양유전학의 시대를 연 공로로 198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한 마이클 비숍(J.Michael Bishop)이 별세했다. 향년 90세.
암의 기원과 정체에 대한 인류의 이해는 20세기 초까지 고대 그리스의 ‘검은 담즙(black bile)’설과 미생물 감염설, 유전-체질론, 막연한 세포 이상설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 무지의 베일을 처음 유의미하게 찢은 건 1910년 미국 록펠러연구소 병리학자 페이턴 라우스(Peyton Rous)였다. 그는 가슴에 종양(육종)이 생긴 닭에서 바이러스를 추출해 건강한 닭에 주입한 뒤 같은 종양이 생기는 걸 확인, 암이 비세포성 물질인 바이러스에 의해 발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밝혀냈다. 라우스 이후 암은, 가족간 ‘전염(유전)’ 등 경험적 사실과 완벽히 일치하진 않지만 인체 외부, 즉 유해한 환경이나 바이러스 감염에 의해 비롯된다는 게 정설처럼 자리 잡았다. 라우스육종바이러스(RSV, Rous Sarcoma Virus)라 명명된 그 레트로바이러스를 발견한 공로로 그는 1966년 노벨상을 탔다.

1970년 UC버클리의 박사후연구원 스티브 마틴(G. Steve Martin)이 RSV 게놈에서 암을 유발하는 바이러스 유전자, 즉 ‘v-src’라는 암유전자(oncogene)를 찾아냈다(src는 sarcoma의 약자).
UC샌프란시스코의 3년 차 교수였던 비숍의 연구실에 박사(MD) 5년 차였던 바머스가 박사후연구원으로 합류한 게 그해였고, 마틴이 발견한 암유전자가 어떻게 생겨나 어떻게 건강한 세포를 악성 종양으로 변화시키는지 연구하기 시작한 게 그 무렵부터였다.
유전자 시퀀싱 기술도, DNA 재조합 기술도 상용화되기 전인 70년대 초중반, 그들은 연구원들과 함께 암유전자에 방사성 표지(probe)를 달아 건강한 닭의 DNA와 일일이 결합(hybridization)시키는 수공업적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 암유전자와 염기서열이 거의 같은 정상세포 내 유전자를 발견했다. 즉 v-src와 결합(하이브리드화)할 수 있는 유전자가 RSV에 감염되지 않은 건강한 (닭의) 세포 내에 이미 존재한다는 사실을 1976년 3월 과학저널 ‘네이처’에 발표했다. 암유전자는 바이러스의 작품이 아니라 우리 몸 속 정상 유전자가 변형된 결과라는 사실이 그렇게 밝혀졌다. 바이러스 육종 유전자(v-src)와 구분해 세포 육종 유전자란 의미로 지어진 ‘c-src’는 이후 물고기와 쥐, 소, 사람 등 거의 모든 척추동물에게서 발견됐다. 종양학계는 대장암과 유방암, 비소세포성폐암, 전립선암 등 거의 모든 고형암이 c-src 고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판단한다.
비숍은 펜실베이니아주 요크시에서 태어나 주민 수 400명 남짓의 작은 시골 마을인 골즈보로(Goldsboro)에서 성장했다. 8년간 교실이 달랑 두 개뿐인 초등학교를 다녔고, 80여 명 동기 중 대학을 졸업한 학생이 거의 없던 시골 고교를 졸업했다. 루터교회 목사인 아버지 영향으로 성가 보컬과 피아노, 오르간을 배워 고교 시절 약 4년간 교회 반주를 맡으며 직업 음악가가 되고자 했던 비숍은 하지만 일류가 될 자질이 없다는 걸 깨닫곤 막연히 의과학으로 진로를 수정했다. 유년 시절 가족 주치의의 영향이었다고 한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과학이라곤 들꽃을 꺾어 압화하는 수준 이상은 배우지 못했고, "고교 시절 진로 테스트 결과지에는 미래의 내가 저널리즘이나 임학, 혹은 음악 교사가 유망하다고 적혀 있었다”고 노벨상 자서에 썼다.
게티스버그대 학부(화학) 때도 새로운 교양과목을 들을 때마다 마치 ‘유혹의 노래(siren song)’에 최면 걸리듯 역사학자나 철학자, 소설가의 미래를 꿈꾸곤 했다고 한다. 54년 게티스버그대(화학)를 우등 졸업한 그는 아이비리그 의대 두 곳(하버드와 펜실베이니아대)에 나란히 합격, 먼저 면접을 본 펜실베이니아대 부총장의 권유에 따라 하버드 의대에 진학했다. 그는 임상의보다는 연구자가 되고 싶어 했고, 펜실베이니아대 의대는 상대적으로 전통 임상 교육 위주였다.
하버드 의대 2년 차 때 신경생물학 연구실 여름 아르바이트에 지원했다가 경험 부족으로 거절당한 적이 있었고, 4학년 땐 학장에게 청해 정규 커리큘럼 대신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특별 허가를 받기도 했다. 62년 의학박사(MD) 학위를 받은 그는 메사추세츠 종합병원(레지던트)에서 병리학을, 베트남전 징병 면제 조건의 미국립보건원(NIH) 박사후연구원(1964~68)으로 동물 바이러스학을 익힌 뒤 68년 UCSF 교수가 됐다.
그는 70년 박사후과정에 지원한 바머스(의 다듬지 않은 수염)를 보곤 “단숨에 짝을 만났다는 걸 깨달았다”고, 훗날 래스커 재단 웹사이트 칼럼에 썼다. 바머스는 하버드 대학원에서 영문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하버드 의대에 2차례나 지원했다가 거절당한 뒤 컬럼비아대 의대에서 MD를 받고, 비숍이 떠난 해인 68년 NIH 박사후연구원으로 들어가 세균 유전자를 연구한 이례적 이력의 학자였다. 바머스는 71년 곧장 교수가 됐고, 비숍은 72년 정교수가 됐다. 둘은 예술과 인문학에 대한 폭넓은 관심과 지식, 특히 “언어와 문학에 대한 애착”으로 공명하며 과학 논문의 " 끔찍한 문체(dreadful prose)"를 혐오해 데이터 분석 못지않게 논문의 표현과 어휘 선택을 두고 골몰했다고 한다. 훗날 자서전 ‘How to Win the Nobel Prize’에 비숍은 “우리는 둘 다 탐욕적인 독서가였고, 글쓰기를 무척 즐겼다”고 썼다.
미국 과학계의 가장 막강하고 모범적인 듀오로 통하는 둘은 70년대 이후의 연구 성과로 미국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래스커상(82)’과 노벨상 등을 나란히 수상하며, 1993년 바머스가 미 국립보건원(NIH ) 원장으로 임명돼 대학을 떠날 때까지 함께 연구했다.

그들의 70년대는 생명공학이 본격 개화하던 시기였다. 50년대 DNA의 구조와 기능이 규명되고 60년대 유전 암호 해독으로 DNA의 작동 원리들이 잇달아 드러나면서 유전학-분자생물학이 실용의 시대로 이행하던 전환기. 72년 DNA 재조합-편집기술이 개발돼 유전자 클로닝이 가능해졌고, 75~76년에는 DNA 염기서열 분석법이 개발됐다. 일군의 과학자들이 아실로마 회의에서 유전공학의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만든 게 75년 2월이었고, 민간-기업자금이 대거 유입되며 인류 최초의 바이오테크 기업(Genentech)이 탄생한 게 76년이었다.
비숍과 바머스의 76년 논문의 의미를 MIT 종양학자 로버트 와인버그(Robert A.Weinbeg)는 1996년 ‘암의 기원 탐색’이란 부제를 단 1996년 저서(‘Racing to the Beginning of the Road’)에 이렇게 표현했다. “안개 속을 헤매던 우리 앞에(…) 아무 징후도 없이 돌연 강풍이 불어닥쳤고, 그 덕에 비로소 새로운 길이 너무나 선명하고 뚜렷하게 나타났다. 갑자기 세상이 눈부시고 찬란한 빛으로 환해진 듯했다.” 이후 현대 암의학은 그들과 동일한 원리로, 하지만 유전자 클로닝과 맵핑, 시퀀싱 등 진전된 기술 덕에 훨씬 빠르고 간편하게, ‘MYC’ 등 40여 종의 원암 유전자를 찾아냈다.
원암 유전자는 피부색 등을 결정하는 일반적인 유전자들과 달리 세포 성장과 분열-증식에 간여하는 핵심 유전자들이다. src가 세포 바깥에서 온 성장 신호를 세포 내부로 전달하는 스위치 기능을 하는 유전자라면, 또 다른 원암 유전자 ‘라스(RAS)’는 외부에서 들어온 세포 분열 신호를 단백질에 전달하는 스위치이고, ‘미크(MYC)’는 전달받은 신호를 변환해 세포 분열에 직접 간여하는 유전자들을 활성화시키는 유전자다. 자동 차단 기능을 장착한 저 각각의 유전자들이 어떤 계기로 개별적으로, 혹은 한꺼번에 고장 나 무한정 세포를 증식(on)하는 상황, 자동차에 비유하자면 가속 페달이 망가져 제 위치로 되돌아오지 않고 계속 밟고 있는 상황이 곧 암이고, 암 부위 세포 전체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던 전통적인 화학 항암 대신 고장 난 유전자 부품(분자적 특정 변이)을 추적해 그 부품만 수리(치료)하는 게 표적 항암이다.
즉 c-src의 발견은 종양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정밀 의료’의 시작이자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암은 특정 경로를 차단하더라도 쉽사리 우회 경로를 찾아 다시 성장(내성)하는 경향이 강한 데다 여러 부품이 동시에 고장 나는 복합 변이가 많아 표적 항암 역시 괄목할 만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직 갈 길이 멀다.
또 앞서 언급했듯이, 노화는 암의 궁극적이고도 주요한 원인 중 하나다. 근년의 노년학 등이 노화를 자연의 섭리가 아닌 치료 대상(질병)으로 보는 근거도 암과 수많은 노인성 질환들이 노화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즉 암 치매 심혈관 질환 등의 증상만 볼 게 아니라 노화라는 근본 원인을 치료해야 한다는 주장. 그들은 생명체도 물리법칙을 따르는 만큼 장기적 엔트로피(무질서) 증가는 필연이며 번식 기능을 다한 개체는 종의 번영을 위해 사라지는 것이 ‘진화적 성공’의 과정이라 여기는 전통적 진화론의 관점과 맞선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현대 의과학이 노화 메커니즘을 일정 정도 제어 가능한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그런 경향을 반영해 2018년 세계보건기구(WHO)도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ICD-11)에서 ‘노령(old age)’ 관련 코드를 도입했다가 논란이 일자 '노화 관련 내재 능력 쇠퇴'란 용어로 대체한 바 있다. 노화에 대한 현대 의학의 저 다분히 철학적인 논쟁의 가장 밑바닥에도 비숍 등의 원암 유전자가 있다.
비숍과 바머스는 자신들이 ‘가장 성공적인 듀오’가 될 수 있었던 동력을 서로에 대한 존중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후배와 제자들 역시 그렇게 존중했다. 그들의 박사후연구원 출신인 US샌디에이고 세포-분자의학 교수 데보라 스펙터는 “그들의 업적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격려한 사실로도 평가돼야 한다”며 “그들은 후배들과 결코 경쟁하려 들지 않고 항상 존중하고 지원했다”고 말했다. 다수의 학자들이 비숍 등의 저 미덕을 여러 경험과 일화로 부각했다.
비숍의 선배 격인 프린스턴대 생물학자 존 타일러 보너(John Tyler Bonner, 1920~2019)는 2003년 비숍의 자서전 서평에서 그가 자신의 연구-교육 외에 워싱턴D.C 정치인들의 과학 교육에 힘쓴 공로를 중점 부각했다. 한마디로 정부 과학 예산 증액을 위한 로비였다. 노벨상을 탄 1989년 비숍은 ‘생명과학연합(Coalition for Life Sciences)’ 출범에 앞장섰다. '연합'은 의회 내 생의학 학회 등을 조직해 의원들을 교육시키고, 로비스트를 직접 고용해 의회와 NIH, 국립과학재단(NSF) 등을 상대로 로비를 벌이는 단체다.
바머스가 대학을 떠나 NIH와 국립암센터 등에서 활약하는 동안에도 비숍은 줄곧 대학에 남아 노벨상 수상자로는 이례적으로 UCSF 총장(1998~2009)으로 재직, UCSF 미션베이 캠퍼스를 신설해 세계 최고의 바이오 메카 중 하나로 성장시켰다. 또 캠퍼스 예술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신축 예산의 1%로 회화와 판화, 설치미술 등 150여 점의 예술품을 수집, 캠퍼스를 예술 전시 공간으로 꾸미기도 했다. 그는 게티스버그 학부 때 만난 캐슬린 비숍(Kathryn Bishop, 2016년 별세)과 59년 결혼해 아들 둘을 낳았다.
그와 바머스는 독서와 예술 취향 외에도 프로야구 캘리포니아 자이언츠의 광팬이었다. 노벨상 발표일 정오 자이언츠의 내셔널리그 플레이오프 마지막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수상 기자회견을 오전 일찍 서둘러 끝낸 일화는 유명하다. 그날 자이언츠는 시카고 컵스를 꺾고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해 월드 시리즈 경기에 둘이 시구자로 초청받았다가 당일 지진(Loma Prieta Earthquake)으로 무산된 일화, 이듬해 LA 다저스와의 경기에 기어코 공동 시구자(비숍이 먼저, 바머스가 뒤이어)로 마운드에 선 일 등을 그들은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비숍의 자서전 제목 ‘어떻게 하면 노벨상을 탈 수 있나’는 그가 여러 곁길들에 한눈을 팔다가 어찌어찌 과학자가 된 것처럼, 상은 “세상을 이해하고 싶다는 과학적 욕망”을 좇다 보면 “예상치 못한(as a surprise) 선물"처럼 찾아오는 것이라는 말을 하기 위한 역설적 제목이었다. 그는 “만일 환생한다면 현악 4중주단 연주자가 되고 싶다. 과학자 인생은 한 번으로 족하다”고 노벨상 자서에 썼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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