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육상 천재 소녀의 고백...24세 은퇴 → 코스플레이어가 된 이유 "원인 불명의 병마, 日 제패하는 순간 절망했다"

황보동혁 기자 2026. 5. 19. 00:19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SPORTALKOREA] 황보동혁 기자= 17살의 나이에 일본을 제패하고 세계 대회까지 나갔던 육상 신동 키누카와 메구미 육상계를 떠나 코스프레를 택한 이유를 밝혔다. 

일본 매체 "찬토웹"은 18일(한국시간) "17세에 세계를 놀라게 한 천재 소녀가 일본 최고가 된 순간 시상대에서 절망을 느낀 이유"라는 제목으로 키누카와의 인터뷰를 전했다.

키누카와는 2007년 주니어 일본 신기록을 세우며 17세의 나이에 오사카 세계육상 일본 대표로 선발됐다. 이후 일본선수권에서도 정상에 오르며 일본 육상계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우승의 기쁨보다 더 큰 두려움에 휩싸였다고 고백했다.

그는 "기쁘다거나 기쁨에 잠길 여유는 없었다. '어떡하지...'라는 공포가 먼저 찾아왔다"라며 "일본선수권에서 우승해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선 다음 순간이 지금도 또렷하다. '내일부터는 이 자리를 죽어라 지켜야 하는 입장이 되는구나.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에 한순간에 무서워졌다"고 밝혔다.

주니어 일본 신기록을 세운 날도 마찬가지였다. 키누카와는 "축배를 드는커녕 '앞으로 어떡하지...'라며 압박감에 짓눌릴 것 같았다. 다음 날 신문을 보고 '이렇게 크게 보도돼 버렸구나. 지금이 절정이고 이제부터는 내려갈 일만 남았다'고 절망 했다"고 말했다.

결과가 좋을수록 부담은 커졌다. 그는 "결과를 내고 주목받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 '이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두려워하기보다는 실패하고 '다음에는 반드시'라며 분해할 때가 오히려 앞을 보기 쉬웠다"고 돌아봤다.

이어 "잘하면 공포가, 못하면 분함이 연료가 될 뿐 결국 어느 쪽으로 가도 '나는 아직 부족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멈추는 법도 모른 채 계속 달리는 '노력의 영구기관' 안에 있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올림픽을 향한 꿈도 순탄치 않았다.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 쿤밍 전지훈련을 다녀온 뒤 몸에 이상이 생겼다. 허리 통증에 이어 무릎 통증까지 찾아왔고 결국 걷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키누카와는 "검사를 해도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의사에게 '어떤 균이 들어갔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고 당시로서는 선진적인 치료를 받아 일단 회복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1년 뒤 다시 몸 상태가 악화됐다. 그는 "어지럼증과 구토가 계속됐고 CT를 찍기 위해 위를 보는 순간 기절했다. 걸을 수 없는 상태가 돼 한 달 정도 입원했다. 아무리 검사를 해도 원인이 특정되지 않았다. 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감각이었고 절망했다"고 털어놨다.

최근에야 당시 증상이 "만성 활동성 EB바이러스 감염증(CAEBV)"이었을 가능성을 알게 됐다고도 밝혔다. 체내에서 EB바이러스가 증식해 발열이나 간 기능 장애 등 강한 염증 증상을 일으키는 병으로,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버팀목이 된 것은 만화와 애니메이션이었다. 키누카와는 "육상 세계에 있으면 결과와 숫자로만 자신을 평가하게 되고 시야가 좁아지기 쉽다. 하지만 나와 전혀 다른 '타인의 이야기' 세계를 접하면 육상 일색이던 머릿속이 문득 가벼워졌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삶도 있구나 하고 아는 것만으로도 불안에 삼켜지지 않을 수 있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며 조금씩 앞을 볼 수 있었다"고 밝혔다.

결국 키누카와는 2014년 24세라는 이른 나이에 현역 은퇴를 선택했다. 결정적 계기는 아킬레스건 파열과 은사와의 이별이었다. 그는 "아킬레스건 파열로 수술했고 1~2년 동안 재활을 해도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 사이 10년 가까이 지도를 받았던 감독이 갑자기 연락이 끊겼다"고 밝혔다.

이어 "전해 들은 이야기로는 '나 말고 다른 코치를 찾아달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고 했다. 감독에게도 여러 생각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당시의 나는 버팀목이 되어준 사람에게 '버림받았다'고밖에 받아들일 수 없었다. 몸도 정신적으로도 한계를 느꼈고 새로운 길로 나아갈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은퇴를 인생의 끝이 아닌 새로운 장으로 받아들였다. 키누카와는 "24세라면 일반적으로 선수 은퇴를 하기에는 이르다고 여겨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육상을 '인생이라는 긴 이야기 속 하나의 장'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물론 선수 시절에는 그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경기를 끝낸 뒤의 인생이 훨씬 더 길다. 선수로서의 끝이 인생의 끝은 아니기 때문에 육상에 집착하지 않고 다음으로 나아가는 결정을 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현재 키누카와는 코스플레이어 '렌야'로도 활동하며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그는 과거를 돌아보며 "당시에는 절망했고 불운하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생각할 수 있었던 것들이 있고 성장으로 이어졌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끝으로 키누카와는 "긴 인생의 점으로 보면 실패일지 몰라도 선으로 보면 그저 하나의 경험이다. 하나의 길이 끊겼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투박하게 다음 길을 찾아가는 것. 그 과정까지 포함해 '이것이 나의 삶의 방식이다'라고 지금은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넘버웹, 게티이미지코리아, 데일리스포츠, 찬토웹 

Copyright © 스포탈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