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또다시 ‘시민단체의 시대’가 오나
보조금 받으며 신뢰 상실했는데
지방선거는 시민단체에 ‘대목’…
세금이 아깝지 않은 서울 돼야

시민단체가 시민들로부터 신뢰받던 시절이 있었다. 2001년 국정홍보처의 국민 의식 조사에서 ‘시민단체를 믿는다’고 답한 국민은 65%로 모든 사회 기관을 통틀어 가장 많았다. 2002년 갤럽 인터내셔널이 45국 국민을 대상으로 진행한 신뢰도 조사에서도 우리 국민 77%가 시민단체를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에 반해 정부 신뢰도는 25%, 국회는 11%에 그쳤다. 한국의 시민단체 신뢰도는 조사 대상국 중 제일 높았다.
당시는 권위주의 체제와 IMF 외환위기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시기였다. 정경유착·부정부패의 폐단을 경험한 국민은 정부와 기업을 믿지 않았다. 그 불신이 이들을 감시하는 시민단체를 향한 지지로 이어졌다. 개인이 목소리 낼 수 있는 창구가 제한적이던 시절, 시민단체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익을 대변함으로써 사회적 영향력을 키워나갔다. 때마침 들어선 참여정부는 많은 시민단체 인사를 공직에 중용했다. 민주·진보 계열 정당들 또한 시민단체 인사들을 적극 영입했다. 지금도 시민단체는 여권의 싱크탱크이자 정치인 사관학교로 기능하고 있다.
2010년대 들어 시민단체는 지방자치단체와도 결합하기 시작한다. 그 토대를 마련한 인물이 바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다. 일찍부터 시민운동을 이끌던 그는 이른바 ‘민관 거버넌스’를 강조하며 공공의 정책 수립·집행 과정에 시민단체를 합류하게 했다. 시는 시민단체에 각종 사업을 위탁하는 한편 보조금을 지급함으로써 이들의 활동을 지원했다. 지역별·분야별로 시민사회를 지원하는 중간 지원 조직이 설립됐다. 그가 재임한 2012년부터 2021년까지 10년 동안 마을공동체·도시재생·사회적 경제 등을 명분으로 투입된 시민단체 민간 보조금과 민간 위탁금은 1조원을 넘는다. 2012년 226억원이던 시민사회 분야 민간 보조금은 2021년 913억원으로 4배 증가했다.
시민단체란 본디 시민의 편에서 정치·경제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집단이다. 그러나 이들의 정·관계 진출이 활발해지며 감시 대상과 감시 주체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옛 동료가 몸담고 있어서든 공천이라는 떡고물을 바라고 있어서든 특정 정치권력을 비판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남의 작은 실수에는 벌떼처럼 일어나 분노하다가도 박원순·윤미향·조국 등 자기 편 잘못에는 침묵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이들을 바라보는 여론의 시선도 싸늘하게 식었다. 요즘 시민단체는 자신들이 감시하는 대상만큼의 신뢰도 얻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한국행정연구원의 2025년 사회통합 실태조사에 따르면 시민단체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4점 만점에 2.4점으로 대기업(2.7점), 지자체(2.6점), 중앙정부(2.5점)보다 낮았다. 시민단체보다 신뢰도가 낮은 집단은 국회(2.2점)와 검찰(2.3점)밖에 없었다.
일반 시민들한테 인기가 없다고는 해도, 시민단체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번 정부에선 그 입김이 더 세진 듯하다. 정부는 이번에 우리나라를 찾은 북한 여자 축구팀을 응원하는 데 남북협력기금 3억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북한 축구팀을 응원하고자 하는 민간단체들의 요청을 받았다”는 걸 이유로 들었다.
이번 지방선거도 시민단체들에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승리가 예상됨에 따라 각종 지자체 사업과 지원금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광역·기초단체장 선거 캠프는 전공(戰功)을 쌓으려는 시민단체 인사들로 넘쳐난다.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캠프에도 시민단체 인사가 여럿 합류했다. 그가 서울시장에 당선된다면 또다시 많은 시민단체가 시정에 참여하리라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참고로 그가 이번 선거에서 내건 슬로건은 ‘세금이 아깝지 않은 서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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