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호정의 톱밥 먹는 중입니다] [21] 바디 프로필을 찍었다

바디 프로필(몸매 인증 사진)을 찍었다. ‘관종’인 나는 다소 쑥스러운 사진을 SNS에 올렸다.
불과 몇 달 전, 해고와 부친상이 한꺼번에 왔다. 마음이 무너지니 몸도 망가졌다. 2주 만에 7㎏이 빠졌다. 보통은 이쯤에서 가족이나 친구의 따뜻한 위로를 찾는다. 아니면 혼자만의 깊은 사색에 빠진다. 처음에는 나도 그렇게 했다. 그러다 갑자기 바프(바디 프로필)를 찍기로 했다. 엉뚱한 선택의 이유는 간단하다. 내 몸은 나를 먹여 살려야 한다. 나에게 건강한 몸은 온전한 정신 상태를 되찾는 데 필요한 최소한이다.
촬영 콘셉트는 미리부터 ‘목수’로 정했다. 마침 목수 소개 페이지에 쓸 사진도 마땅한 게 없던 터였다. 동기 부여의 효과는 대단했다. 휘어진 생각은 펴졌고, 굼떴던 행동은 빨라졌다. 7000g과 함께 빠져나간 근육을 다시 채우는 동안 몸과 마음은 회복됐다. 일터와 헬스장에서 태운 칼로리는 일상을 유지한 증거였다. 그렇게 다소 쑥스러운 사진은 나왔다.
사진을 게시한 날은 노동절이었다. “노동하는 인간, 일하는 몸”이라 설명을 달았다. 설왕설래가 오갔다. ‘노동’의 정의가 다르기 때문이라 여기고 있다. 정의가 다르면 같은 사진을 보고도 견해가 갈린다. 이내 싸움이 된다.
어떤 이들은 좋게 봐줬다. 이것도 노동이란다. 적어도 노동과 자기 관리 사이 어디쯤이란다. 좋았다. 거짓으로 보이지는 않았다는 뜻이니까. 어떤 이들은 나쁘게 봐줬다. 그것은 노동이 아니란다. 나아가 노동을 너무 미학화했단다. 괜찮다. 바프라는 건 원래 조명과 보정이니까. “누가 그렇게 입고 일하냐?”라는 댓글에는 잠깐 웃음이 났다. “맞아요. 정말 그렇게 입고 일할 리는...” 답글을 쓰려다 말았다.
“그것은 노동이 아니다.” 정치할 때 지겹도록 들었던 말이다. 오랜만에 반대한다. 노동을 말할 수 있는 자격 따위는 없다. 그것을 허락할 수 있는 면허 따위도 당연히 없다. 무릇 노동이란 더 더럽고, 더 위험하고, 더 어려운 것이어야만 한다는 그놈의 ‘은연중’을 반대한다. 누구나 노동하기 때문이다. 가깝게는 나와 내 가족, 멀게는 우리 공동체를 위해 힘써서 하는 일 모두가 노동이다. 진짜냐 가짜냐 검증하고 심사하고 급기야 판정까지 할 고결한 무엇이 아니다.
그리고 저 바프는 포장된 사진이다. 그래도 그 안에 노동하는 인간의 일하는 몸이 있다. 샤방샤방한 사진이 류호정이라는 개인의 허세로 보일 수 있고, 목공이라는 노동의 미학화로 보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설명한다. 그 몸은 무너질 뻔한 나를 붙잡아 여기까지 끌고 온 기록이다. 또한, 나에게 노동은 자격이 아니라 생활이다. 생활은 오늘도 계속된다. 나는 그 몸으로, 그 공구로 일하고 있다. 물론 사진보다는 쬐끔 더 초췌한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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