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멕시코 장벽’ 건설 확대에 위협받는 원주민···1000년 유적 이어 성지까지 훼손

최경윤 기자 2026. 5. 18.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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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메야이 부족 지도자인 메사 카예스가 지난 1일(현지시간) 멕시코 테카테주에서 쿠차마산의 영적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 과정에서 원주민의 성지 및 문화유적이 훼손되고 있다. 원주민의 터전을 위협할 뿐 아니라 성지 훼손을 중범죄로 규정한 연방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17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와 멕시코 바하칼리포르니아주 국경 지역에 걸쳐 있는 쿠차마산(테카테 피크)에서 폭파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폭파 작업 과정에서 발생한 바위 파편이 멕시코 쪽 사면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해발 1184m 높이의 쿠차마산은 10여개 이상의 부족 공동체로 구성된 쿠메야이족에게 성지와 같은 장소다. 쿠메야이 부족은 창조 신화 속 주술사(샤먼)가 변해 쿠차마산이 됐다고 믿는다. 쿠메야이 부족 지도자인 메사 카예스는 “이 산은 우리의 치유자”라며 “우리는 힘겨운 세상을 살아갈 힘을 이 산에서 얻는다”고 말했다.

쿠메야이족 일원으로서 비영리단체 ‘쿠메야이 디에기뇨 토지 보존협회’를 운영하는 에밀리 부르게뇨는 “쿠메야이어로 ‘몸’과 ‘땅’은 같은 단어”라며 “그 누구도 산에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하는 것에 동의하거나 지지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불법 입국자와 마약 밀반입 차단을 이유로 약 460억달러(약 69조원) 규모 예산을 투입해 국경 장벽 건설을 확대하고 있다. 현재 약 966㎞ 구간에서 신규 장벽 및 감시 체계 구축 사업이 진행 중이며, 약 600㎞ 구간에서는 기존 장벽에 더해 이중 장벽 건설도 추진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공사 상당수는 올해 미 국토안보부(DHS)가 문화·환경 관련 법률의 효력을 정지하면서 본격화했다. AP통신은 불법 국경 월경이 역대 최저 수준으로 감소한 상황에서도 미 정부가 총 3145㎞에 달하는 미·멕시코 국경 전역에서 장벽 건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애리조나주 국경 장벽 건설 현장 인근에서 1000년 된 물고기 모양의 지상화 유적 ‘라스 플라야스 인탈리오’가 훼손된 모습이 보인다. AP연합뉴스

원주민들은 성지 훼손이 연방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미 연방법은 연방 소유지나 부족 영토 내 원주민 성지를 훼손하는 행위를 징역형과 벌금형 대상이 될 수 있는 중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미 국립공원관리청은 1992년 쿠차마산을 국립사적지로 등재하면서 “산의 자연 상태를 훼손하는 것은 신성모독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부르게뇨는 “모든 국경 지역 부족들이 문화와 성지가 비극적으로 모독당하는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며 “이는 연방 정부가 연방법을 준수하지 않는 대표적 사례”라고 비판했다.

장벽 건설 과정에서 문화유적 훼손 논란이 불거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애리조나주에서는 DHS 계약업체들이 ‘라스 플라야스 인탈리오’로 불리는 1000년 된 물고기 모양의 지상화를 훼손했다. 카베사 프리에타 국립야생동물보호구역 내에 있는 이 유적은 페루의 ‘나스카 라인’처럼 사막 지면에 새겨진 희귀한 그림이다.

당시 지역 원주민인 토호노 오오담 부족은 계약업체에 유적지 위치를 미리 알렸지만 훼손이 이뤄졌다며 “전적으로 피할 수 있었던 참담한 손실”이라고 밝혔다. 부족은 또 장벽 건설이 자신들이 영적 수호자로 여겨 온 재규어의 서식지를 위협한다고 비판했다.

21개 부족을 대변하는 애리조나 인디언 부족 연합 회원들은 지난달 체로키 부족 출신인 마크웨인 멀린 DHS 장관과 만나 해당 국경 구간 장벽 건설에 항의했다. 그러나 멀린 장관은 가능한 한 신속히 추가 국경 장벽을 건설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최경윤 기자 ck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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