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은 덜 사고, 재무부는 더 찍는다…美 국채시장 덮친 '노 피벗' 경고

이윤형 기자 2026. 5. 18.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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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둔화 와도 금리 안 내리는 시대…채권시장 프레임 바뀌나
재정적자·전쟁비용·국채 공급 확대 겹치며 장기금리 상방 압력
AI가 美경제 체력 지탱…월가 금리인하 기대와 엇갈린 채권시장
월가가 여전히 기준금리 인하 시점을 계산하고 있는 사이 채권시장은 이미 '고금리의 구조화'를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출처=포브스]

미국 국채시장이 '피벗(pivot)' 이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경기 둔화가 나타나면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를 인하하고, 장기채 가격이 반등하던 기존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월가가 여전히 기준금리 인하 시점을 계산하고 있는 사이 채권시장은 이미 '고금리의 구조화'를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나증권은 최근 '2026년 하반기 해외채권 전망' 보고서에서 미국 장기금리가 단순한 경기 사이클이 아니라 재정·수급·지정학 리스크가 결합된 구조적 상승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 10년 만기 국채금리 상단을 4.8%까지 열어둘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침체 오면 채권 강세' 공식 흔들

허성우 하나증권 연구원은 시장의 프레임 변화를 짚었다. 과거에는 경기 둔화 조짐이 나타나면 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가 선반영되며 장기채 매수세가 유입됐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공급 충격에 따른 물가 압력이 예상보다 오래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 재정적자 확대와 국채 발행 증가가 장기금리의 하방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허 연구원은 미국 국채시장의 가장 큰 변수로 '공급 부담'을 지목했다. 미국 정부의 차입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는 반면 연준은 양적긴축(QT)을 지속하며 장기채 보유를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보고서는 향후 연준이 장기채 재투자를 축소하거나 중단할 경우 민간 시장이 이를 흡수해야 하는 구조가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美 국채 공급 쇼크…"민간이 받아야 한다"

미 재무부의 조달 구조 역시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현재 미국 정부는 단기물 중심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지만 금리가 높은 수준에서 유지될 경우 차환(refinancing) 부담이 빠르게 커질 수밖에 없다. 허 연구원은 "1년 이내 만기 도래 국채 규모가 10조달러를 넘어선 상황에서 결국 중장기 이표채 발행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연준은 덜 사고, 재무부는 더 찍고, 민간이 받아야 하는 구조"라는 해석이 나온다. 그동안 미국 국채시장을 지탱해온 중앙은행 수요가 약해지는 반면 공급은 오히려 증가하는 방향으로 구조가 바뀌고 있다는 의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차기 연방준비제도 의장으로 지명한 케빈 워시가 2026년 4월 21일 워싱턴 D.C.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상원 은행위원회 인준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여기에 중동발 에너지 리스크까지 겹치며 시장은 다시 인플레이션 경계 모드로 진입하고 있다. 보고서는 국제유가가 3분기에도 배럴당 100달러 수준을 유지할 경우 연내 금리 인하는 사실상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했다. 반대로 유가가 안정돼야만 4분기 이후 제한적인 인하 기대가 가능하다고 봤다.

흥미로운 대목은 인공지능(AI)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시장에서는 일반적으로 AI를 디플레이션 요인으로 해석해왔지만, 보고서는 오히려 AI 기반 생산성 향상이 미국 경제의 체력을 지탱하면서 금리 인하 필요성을 낮추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업들의 비용 효율성이 개선되면서 고금리 환경에서도 이익 방어가 가능해졌고, 이는 장기금리 상승 압력을 완화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결국 시장의 고민은 단순한 '금리 인하 시점'이 아니라 '장기금리의 기준 레벨 자체가 올라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으로 이동하고 있다. 실제 최근 미국 증시는 견조한 흐름을 이어가는 반면 장기채는 약세를 지속하는 흐름이 반복되고 있다. 경기 침체 우려가 커져도 채권 가격이 과거처럼 강하게 반등하지 못하는 배경이다.

이는 자산시장 전반에도 적지 않은 함의를 던진다. 그동안 글로벌 금융시장의 기본 전략으로 여겨졌던 '주식-채권 분산(60:40 포트폴리오)' 구조 역시 재점검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침체 국면에서 채권이 손실을 방어해주던 전통 공식이 약해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경기만 꺾이면 장기채를 사면 된다는 공식이 있었지만 지금은 재정적자와 국채 공급 자체가 시장의 핵심 리스크가 되고 있다"며 "채권시장이 단순한 경기 사이클이 아니라 미국 정부의 재정 구조와 지정학 리스크를 반영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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