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는 멈출 수 없다"…삼성전자 판결이 바꾼 '파업의 기준선'
위반 시 노조 최대 18억원…반도체 공정 특수성 첫 강한 인정
"공장 아닌 국가 전략자산" 논쟁, 산업계 전반 확산 가능성
![지난달 23일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의 '투명하게 바꾸고, 상한폐지 실현하자 투쟁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출처=연합]](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18/552778-MxRVZOo/20260518154416797ocbp.jpg)
삼성전자 노조 총파업을 사흘 앞두고 나온 법원 결정이 산업계 전반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법원이 반도체 생산라인의 연속성과 안전·보안 체계를 사실상 국가 전략산업 수준으로 판단, 향후 첨단 제조업 분야 파업의 기준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수원지방법원 민사합의31부는 18일 삼성전자가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등을 상대로 제기한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핵심은 재판부가 제시한 "평상시와 동일한 수준"이라는 표현이다. 법원은 방재시설과 배기·배수시설 등 안전보호시설은 물론, 웨이퍼 변질 방지 작업과 보안 업무까지 파업 이전과 같은 수준으로 유지·운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최소 인력만 남기는 수준이 아니라 인력 규모, 가동시간, 운영 범위, 주의 의무까지 모두 평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산업계에서는 사실상 법원이 반도체 공정을 일반 제조업과 다른 특수 산업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30분 정전에 수백억 손실"…반도체 공정 특수성 첫 강한 인정
이번 판결에서 가장 주목받는 부분은 법원이 반도체 생산라인의 연속성을 사실상 절대적 보호 대상으로 판단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재판 과정에서 2018년 평택캠퍼스 정전 사례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30분이 채 되지 않는 전력 이상으로 수백억원 규모 피해가 발생했다는 설명이다.
반도체 공정은 극도의 청정 환경과 연속 공정 유지가 핵심이다. 온도·습도·전력·가스 흐름 가운데 하나라도 순간적으로 흔들리면 웨이퍼 전체를 폐기해야 할 수 있다.
특히 EUV(극자외선) 기반 첨단 공정은 라인이 한 번 멈출 경우 정상화까지 수일 이상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순 생산 차질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 충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법원 역시 이런 특수성을 일정 부분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정상적 유지·운영'을 "쟁의행위 이전 평상시와 동일한 정도"라고 명시했다. 과거 제조업 파업 사건과 비교해 훨씬 강한 제한 기준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삼성바이오와 달랐다…"제품 보호" 아닌 "시스템 유지"
이번 결정은 지난달 삼성바이오로직스 사례와 비교하면 차별점이 더욱 뚜렷해진다.
당시 인천지법은 배양·정제 공정 9개 가운데 일부만 제한하는 부분 인용 결정을 내렸다. 이미 생산된 물질의 변질·부패 방지 영역만 제한 대상으로 인정했고, 신규 생산 활동은 노조 쟁의권 범위로 판단했다.
반면 이번 삼성전자 사건은 접근 방식 자체가 달랐다. 단순 제품 보호 수준이 아니라 공정 시스템 전체 안정성 유지에 초점이 맞춰졌다.
특히 방재·배기·배수·보안시설까지 모두 유지 대상에 포함한 점은 의미가 크다. 법원이 반도체 생산라인을 단순 제조설비가 아니라 초정밀 산업 인프라 체계로 인정한 셈이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단이 향후 AI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원전 등 국가 전략산업 전반으로 확대 적용될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파업권 과도 제한" 논란도…노동계 반발 변수
반면 노동계에서는 우려도 적지 않다. 법원이 "평상시와 동일 수준"이라는 높은 유지 의무를 요구하면서 사실상 파업권 제한 범위가 과도하게 확대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행강제금 규모 역시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법원은 결정 위반 시 노조에 하루 1억원, 노조 간부 개인에게 하루 1000만원씩 지급하도록 했다.
총파업 예정 기간인 18일 동안 위반 상태가 이어질 경우 노조 부담은 최대 18억원까지 커질 수 있다.
산업계에서는 이번 결정이 삼성전자 노사 협상 전략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생산라인 직접 압박 수단이 제한되면서 노조의 대응 방식 변화 가능성도 거론된다. 동시에 이번 사건은 단순한 삼성전자 노사 갈등을 넘어 "첨단 제조업 시대 파업권은 어디까지 허용돼야 하는가"라는 새로운 사회적 논쟁을 던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글로벌 AI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반도체 생산시설을 일반 제조업 공장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국가 전략자산으로 관리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의 역시 한층 확대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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