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원전이 밀고 양수가 받친다"…에너지 안보의 심장부, 신한울에서 예천까지
신한울 3·4호기 건설 박차, 2033~34년 완공
송전망 증설 없이 전기생산하는 수상태양광
양수발전, '블랙아웃'에도 전력망 불쏘시개 역할

【울진·안동·예천=한용수 기자】정부세종청사에서 버스로 3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울진의 봄 바다는 잔잔했지만, 원전 마을은 분주했다. 한울 1~6호기와 신한울 1·2호기가 쉼 없이 돌고, 신한울 3·4호기 건설 인력과 계획예방정비 중인 한울 5호기 인력까지 몰려들며 마을 전체가 거대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인공지능(AI)과 데이터센터 산업의 폭발적인 팽창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시대, 울진 신한울 원전과 안동 임하댐 수상태양광발전소, 예천 양수발전소 등 한국수력원자력이 운영하는 대한민국 에너지 안보의 핵심 기지를 둘러봤다.
◆ 철근 10만 톤의 요새, 서울 전력 18% 책임지는 신한울 원전
국가 보안시설인 신한울 원전의 출입 절차는 까다롭다. 사전에 인적사항을 제출해 허가를 받았음에도 삼엄한 경계 속 신분 확인을 거쳐야 했다.
시선을 압도하는 돔 구조의 원자로건물은 높이만 76.66m로 아파트 27층 높이에 달한다. 내부 기압을 외부보다 낮게 유지해, 혹여 문제가 생기더라도 방사성 물질이 밖으로 새 나가지 못하고 외부 공기가 안으로만 빨려 들어가게 설계됐다. 신한울 1·2호기에 들어간 철근만 10만 3000톤으로 63빌딩 건설 소요량의 약 13배다. 외벽 두께는 122cm, 주증기배관 등은 두께가 195cm에 달한다. 27톤짜리 팬텀 전투기가 시속 800km로 충돌해도 고작 5cm 정도 손상되는 수준의 요새다.
신한울 1호기는 1400MW(메가와트)급 신형경수로인 'APR1400' 노형이다. 운영허가기간을 기존 40년에서 60년으로 늘렸고, 내진성능은 대폭 강화해 UAE에 수출된 모델과 같다.
터빈룸에서는 290℃의 고온·고압 증기가 고압터빈(HP)을 돌린 뒤 습분분리재열기를 거쳐 저압터빈 3대로 공급돼 날개를 분당 약 1800회 회전시키며 24킬로볼트(kV)의 전기를 생산한다. 신한울 1호기가 2024년 한 해 동안 생산한 전력량은 8821GWh로, 서울시 전체 전력 소요량(50,352GWh)의 약 18%에 해당한다. 제 역할을 마친 사용후핵연료는 온도가 49.8℃를 넘지 않도록 관리되는 습식 저장조로 옮겨져 안전하게 관리된다.
발전소 내부는 화재와 지진에 완벽히 대비된 구조다. 비상발전기 등 핵심 설비는 지상에 위치한 데다 두터운 방수문이 버티고 있어, 지하 발전기 침수로 수소 폭발을 일으켰던 후쿠시마 원전과는 근본적으로 구조가 다르다.

◆ 12.3조 투입, 국격 높이는 신뢰의 K-원전…에너지 믹스의 중심 서다
총사업비 12조 3000억 원이 투입되는 신한울 3·4호기 건설 현장으로 이동했다. 올해 4월 기준 종합공정률 29.80%를 기록 중인 현장은 오는 27일 첫 콘크리트 타설을 앞둔 4호기의 기초 지반 다지기 작업 등으로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신한울 3·4호기는 오는 2033년과 2034년 각각 완공을 목표로 순항 중이다.
월드컵 경기장 197개를 합친 140만 3921㎡의 광활한 대지에서는 원자로 격납건물 철판(CLP) 설치와 해저터널 공사가 동시에 진행된다. 바다 쪽으로는 해안선을 건드리지 않고 냉각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해저 터널을 뚫어 심해의 차가운 물을 끌어오는 공사가 한창이다. 이 거대한 현장엔 외국인 근로자가 없다. 원전 기술 유출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투입 인력 100%를 대한민국 국민으로 채웠다.
신한울 3·4호기는 단순한 발전소 건설을 넘어 정부가 추진하는 '에너지 믹스'의 핵심축이다. 원전 비중을 30% 이상으로 확대해 단단한 에너지 안보를 구축하고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핵심 수단이다. 실제로 신한울 3·4호기가 본격 가동되면 연간 2만 358GWh의 전력을 생산하게 된다. 이는 2024년 국내 총 발전량 기준 약 3.4%에 달하는 규모로, 연간 484만 가구(4인 가구 기준, 서울시 연간 전력 소요량의 약 40%)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수급할 수 있는 양이다.
동시에 고사 위기에 처했던 원전산업 생태계를 활성화하고 지역 경제와 상생하는 핵심 마중물 역할도 하고 있다. 건설 기간 중 노무인력 443만 명을 비롯해 한수원, 설계, 기기제작, 시공 등에 누적 총인원 722만 명이 참여하며 거대한 고용 창출 효과를 내고 있다.
지역 사회에 환원되는 경제적 혜택도 막대하다. 60년 운영 기준 총 2조 1541억 원 규모의 법정지원금이 투입된다. 건설 기간에 지급되는 특별지원사업비 2304억 원을 시작으로 기본지원사업비와 사업자지원사업비가 각각 3511억 원씩 책정됐다. 특히 운전 개시 이후 지역에 납부되는 지역자원시설세만 1조 2215억 원에 달해 울진 지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전망이다.
아울러 순수 국산화 원전(APR1400)의 건설·운영 경험을 축적해 향후 대한민국 원전 수출의 강력한 '참조 모델(Reference)'을 구축한다는 복안이다.

◆ 송전망 한계 극복한 국내 1호 주민참여형 '임하댐 수상태양광'
울진에서 경북 안동시 임하댐으로 발길을 돌렸다.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도달한 댐 수면 위로 뜻밖의 장관이 펼쳐졌다. 잔잔한 물결 위로 거대한 태극기와 무궁화 형상이 태양빛을 받아 반짝였다. 네모반듯한 모듈들이 빚어낸 이색적인 정체는 국내 최대 규모(47.2MW)의 수상태양광 시설이다.
축구장 약 74개를 합친 52.1만㎡ 면적에 총 732억 원이 투입된 이 시설은 산지나 농지를 훼손하지 않는 친환경 발전의 모델이다. 수면의 냉각 효과 덕분에 육상 태양광보다 발전 효율이 높고, 녹조 발생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
특히 임하댐 수상태양광은 전국적인 현안인 '송전망 부족' 문제를 영리하게 해결했다. 기존 임하댐 수력발전소의 송전계통을 그대로 공유해 별도의 송전망 증설 없이 전기를 보낸다. 낮에는 태양광이, 밤에는 수력이 하나의 선로를 나누어 쓰는 '교차발전' 방식이다. 이곳은 국내 1호 '주민참여형 재생에너지 집적화단지'이기도 하다. 인근 마을 주민 4000여 명이 투자자로 참여해, 향후 20년간 약 222억 원의 수익 혜택을 돌려받게 된다. 태양빛으로 피운 무궁화가 지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는 셈이다.


◆ 재생에너지 시대의 '응급실' 예천양수발전소
최근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늘어나면서 역설적으로 전력망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날씨에 따른 간헐성이 큰 신재생에너지가 확대됨에 따라 안정적인 전력계통 유지가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는 매 순간 60Hz 수준의 일정한 주파수를 유지해야 하는데, 이 출렁임을 잡아주지 못하면 전력망 전체가 붕괴하는 광역 정전, 즉 '블랙아웃'이 올 수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전력계통의 '최후의 보루'는 경북 예천군 은풍면 골짜기의 한국수력원자력 예천양수발전소다. 예천양수발전소는 2011년 준공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최신의 양수발전소이자, 단일 호기(호기당 400MW) 기준 국내에서 가장 큰 설비용량(총 800MW)을 자랑하는 곳이다.
임석채 발전부장은 "발전소마다 각 특징이 있는데, 원자력은 대용량으로 기저 역할을, 양수발전소는 주파수를 안정적으로 유지해 주는, 전력계통의 안정화 기능을 수행한다"고 설명했다. 발전소 입구에서 버스를 타고 약 720m의 어두운 지하 터널을 내려가자, 습하고 차가운 공기 속에서 아파트 13층 높이 4개 동 규모(높이 53.5m, 길이 19m, 폭 21m)에 달하는 육중한 지하 발전기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양수발전의 원리는 거대한 '물 배터리(WESS)'다. 전력 수요가 적은 야간이나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이 과도해 전기가 남아돌 때, 그 남는 전기를 이용해 발전기를 반시계 방향으로 돌려 하부 저수지의 물을 484m 위 상부 저수지로 끌어올린다. 반대로 전력 수요가 폭증하거나 태양광 발전량이 급감할 때는 상부 저수지의 물을 떨어뜨려 발전기를 시계 방향으로 돌리며 순식간에 전기를 생산한다.
임 발전부장은 "상부댐에 물을 저장했다가 즉각 전기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일종의 배터리라고 볼 수 있다"며 "특히, 전력 수급 상황이 급변할 때 신속하게 투입되는 긴급 구조대"라고 설명했다.
양수발전은 전력망 전체가 무너지는 블랙아웃 상황에서 발전소들을 다시 깨우는 '불쏘시개' 역할도 맡는다. 전기를 생산하려면 발전기 내부에 전자기석을 만들어야 해 초기 전기가 필수적인데, 광역 정전 시에는 양수발전소가 상부댐의 물만 떨어뜨려 전기를 자생적으로 생산하고, 이 전기를 마중물 삼아 대형 원전과 화력발전소의 엔진을 차례로 돌리기 때문이다.
한수원은 기후변화와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신규 양수발전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최초로 지자체 자율유치공모를 도입했다. 그 결과 주민들이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선 영동(500MW), 홍천(600MW), 포천(700MW) 등 3곳에 총 4조 3000억 원을 투입해 신규 건설을 추진 중이다. 특히, 건설 과정에서 지역의 인력과 기업이 최대한 투입될 수 있도록 지역 상생에 힘쓰고 있다. 건설이 끝나도 관광객이 많이 찾아 지역이 꾸준히 발전할 수 있도록 댐 주변 조경이나 둘레길 조성 등도 추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