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으로서 최고 영예 누린 이탈리아 ‘슈퍼 마리오’ [이 사람@World]
“유럽 재정 위기로부터 유로화·유로존 지켜”
유럽 통합에 기여한 정치인 등에게 수여되는 샤를마뉴상(카롤루스 대제상)의 2026년도 수상자로 마리오 드라기(78) 전 이탈리아 총리가 선정됐다. 이 상은 오늘날 프랑스·독일·이탈리아 3국에 걸친 광대한 영역을 지배했던 프랑크 왕국의 국왕 샤를마뉴(742∼814)의 이름을 따 지었다. 그는 서유럽 통일의 공로를 인정받아 옛 서로마 제국 황제의 지위를 계승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자리에는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직접 참석해 드라기에게 축하를 건넸다. 메르츠는 연설에서 “드라기는 위험한 시기에 유로화(貨)를 책임지고 유로화와 유로존을 안정시켰다”며 “유럽은 당신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찬사를 보냈다. 이어 “그(드라기)의 친구들이 왜 그를 ‘슈퍼 마리오’라고 부르는지 다들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농담을 던졌다.
메르츠가 지목한 ‘위험한 시기’란 2000년대 말 시작된 유럽 재정 위기를 뜻한다. 2008년 지구촌을 강타한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로존 역내에서 국가 부채 누적이 은행 위기와 결합하며 경제난이 확산했다. 그리스를 시작으로 포르투갈, 스페인 등 남유럽 몇몇 국가들의 신용 등급 하락과 구제 금융 요구 등이 맞물리면서 금융 시장의 불안이 증폭했다.
드라기는 이 위기의 와중인 2011년 11월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로 취임했다. 그때부터 2019년 ECB에서 퇴직하기까지 과감한 대규모 통화 완화 정책으로 유로존 국가들의 연쇄적인 부채 위기를 막아냈다. 당시 그에게 붙은 별명이 ‘유럽 해결사’, ‘유로존 구원투수’ 그리고 이름을 딴 ‘슈퍼 마리오’ 등이다.
슈퍼 마리오는 일본 기업 닌텐도가 제작한 마리오가 주역으로 등장하는 플랫폼 게임에서 비롯했다.

ECB를 이끌며 유로존 경제를 안정시킨 공로로 국제사회에서 명성을 누린 드라기는 2020년대 들어 정치권의 요청으로 정계에 입문해 2021년 2월부터 2022년 10월까지 1년 8개월 남짓 이탈리아 총리를 지냈다. 그가 정부를 이끄는 동안 코로나19 대유행 여파 속에서도 이탈리아 경제는 안정적 성장을 기록했다.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드라기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하며 이탈리아를 ‘올해(2021년)의 국가’로 선정했을 정도다.
하지만 애초 정치인이 아니고 주요 정당에 기반도 없었던 드라기의 총리 생활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유럽연합(EU)을 중시하고 유럽 통합을 강력히 지지하는 그의 성향은 의회 다수파를 점한 우파 및 극우파 정치인들의 반(反)EU 및 민족주의 정서와 맞지 않았다. 결국 2022년 10월 강성 우파 지도자로 극우 정당들과 연대한 조르자 멜로니 현 총리에게 자리를 내주고 물러났다.
지난 2월 벨기에의 한 대학에서 행한 연설에서 드라기는 “유럽이 진정한 강대국이 되려면 분열을 해소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미국과 중국에 종속 상태로 남을 것”이란 말로 EU 회원국들의 결속력 강화를 촉구했다. 유럽 일각에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협상 중재자로 미국과 더불어 EU도 참여하게 된다면 그 역할은 드라기에게 맡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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