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태양광 시대 숨은 버팀목…전력망 '5분 대기조' 양수발전
전력계통 안정화 맡는 '응급실' 역할…재생에너지 확대 속 존재감 커져
낮 시간 태양광 잉여전력 저장했다가 밤 시간대 공급하는 ESS 주목
BESS보다 저렴하고 친환경적인 '물배터리(WESS)'로 급부상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환 기조에 따라 태양광 발전 확대, 해상풍력 산업 생태계 조성, 직류(DC)로 생산된 재생에너지를 최대한 손실 없이 원거리로 보낼 초고압직류송전(HVDC)망 구축이 중점 과제로 거론된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시대를 뒷받침하기 위해 이들 과제 못지않게 중요한 미션으로 떠오른 발전 분야가 있다. 태양광이나 원전에 비상이 걸려 주파수가 낮아졌을 때 단 5분 내 가동해 전력망에 부족한 에너지를 '수혈'할 수 있는 시스템. 배터리가 아닌 양수발전 얘기다.
경북 예천군에 위치한 한국수력원자력의 예천양수발전소를 지난 15일 찾았다. 발전소 입구에서 버스를 타고 약 720m 길이의 터널을 따라 내려가면 어느새 지하발전소 건물 입구에 닿는다.
서늘한 공기와 머리를 울리는 기계음을 들으며 안전모를 쓰고 지하 5층까지 이어진 높은 층고의 계단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파트 20층 높이 정도의 깊은 지하 아래 시커멓게 반짝이는 물이 희미하게 보인다. 지하 5층에는 냉각수 펌프와 배수전원 설비가 있고, 지하 3층에는 펌프·터빈실, 지하 2층에는 발전기가 있다.
예천양수발전소는 해발 730m 소백산하늘자락공원 인근 어림호에 조성된 저수용량 700만 톤 규모 상부댐에서 시작한다. 수로로 물을 끌어와 710m 높이에서 226m 아래로 떨어뜨리고, 이 과정에서 생기는 484m 낙차의 위치에너지로 지하발전소의 수차를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18kV로 생산된 전기는 지하발전소 1층 주변압기에서 승압을 거쳐 345kV 송전망을 통해 전력망에 연결돼 수요처로 공급된다. 이후 물은 하부댐인 송월호로 흘러간다. 상부댐-지하발전소-하부댐이 하나의 세트인 셈이다.

전력수요가 낮은 시간대에는 하부댐의 물을 양수(Pumping), 즉 상부댐으로 끌어올려 발전을 준비한다. 배터리로 치면 일종의 '충전' 시간이다. 같은 시설 그대로, 하부댐에서 상부댐으로 물을 끌어올릴 때는 수차가 전력을 소모하며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 물을 퍼 올리고, 전력수요가 높아 발전할 때는 상부댐에서 떨어지는 물의 힘으로 수차가 시계 방향으로 돌며 전기를 생산한다.
하부댐인 송월호의 저수용량은 900만 톤 규모인데, 실제 발전 시에는 607만 톤의 물로 400MW 규모 발전기 2대를 돌려 최대 800MW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이는 한수원이 보유한 수력·양수발전 전체 설비용량 5307MW의 약 15% 규모다. 착공은 2004년 한국남동발전이 했지만, 2011년 전국의 양수발전 사업을 한수원으로 일원화하면서 그해 준공 후 운영을 시작했다.
한수원 관계자는 "양수발전은 전력계통 안정화를 위해 잉여전력을 흡수·저장해 뒀다가 피크 시간대에 공급하는, 일종의 '응급실' 역할을 하다 보니 이용률이 낮아 효율화를 위해 한수원으로 일원화 됐다"고 설명했다.
한국전력거래소의 급전지시가 있을 때만 가동할 수 있다 보니 충분한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였다는 것이다. 다만 블랙아웃(대정전) 발생 시 발전설비를 살리는 데 필요한 초기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설이라 수익성과 무관하게 유지돼 왔다.

전력망에 전기가 부족해 주파수가 떨어지면 전력거래소는 발전소에 급전지시를 내린다. 원전은 기동에 최소 48시간에서 최대 일주일, 석탄화력발전은 8시간 이상이 걸리는 반면 양수발전은 3~5분 내 기동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최근 낮 시간대에만 많은 전력을 생산하는 태양광 발전이 확대되면서 양수발전을 바라보는 분위기도 달라졌다. 한수원 관계자는 "재생에너지가 확대되며 양수발전 이용률이 높아졌고, 수익이 늘면서 흑자 전환하는 발전소도 많아 지역 주민들의 만족도 역시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예천양수발전소는 건설 당시 낙후된 지역경제 회복을 염원한 주민 1만6천여 명이 서명하며 유치한 시설이다. 준공 이후에는 매년 발전소주변지역지원사업비 약 9억5천만 원과 지방세 약 6억천만 원이 지역에 돌아가고 있다.
또 하천 유지를 위해 일정량의 물을 의무 방류해야 하는 특성을 활용해 900kW 규모 예천소수력발전소와 25kW 규모 미니소수력발전, 주변 시설 태양광 패널을 이용한 1.4MW 규모 태양광 1호기와 0.6MW 규모 태양광 2호기도 운영 중이다.
한수원은 예천양수 외에도 △강원 양양양수(1000MW) △경기 청평양수(400MW) △경북 청송양수(600MW) △전북 무주양수(600MW) △경남 삼랑진양수(600MW) △경남 산청양수(700MW) 등 7곳에서 총 16기의 양수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강원 영동(500MW), 홍천(600MW), 경기 포천(700MW), 경남 합천(900MW), 경북 영양(1000MW) 등에 추가 양수발전소를 건설 중이거나 예정·계획하고 있다. 최근에는 과거 정부 방침에 따라 양수발전 시설을 한수원으로 넘겨야 했던 발전공기업 5사도 다시 양수발전소 추가 건설을 추진 중이다.

에너지 전환을 추진 중인 정부도 양수발전 추가 건설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지난 2월 9일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양수발전은 재생에너지의 간헐성과 원전의 경직성 문제를 완충할 수 있어 세계적으로도 매우 의미 있게 활용된다"며 "한수원이나 한국수자원공사, 한국농어촌공사가 보유한 기존 댐에 상부댐만 추가해도 양수발전이 가능한 곳이 전국에 6~7곳 정도 있다. 이를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6~2040)에 담거나 장기 과제로 추진할지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에너지 전환의 핵심은 재생에너지와 원전 같은 무탄소 전원을 확대하고 석유·가스 등 화석연료 사용을 줄여 전력 부문 탄소배출을 감축하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확정한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는 2018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53~61% 줄이는 것이 목표인데, 이 가운데 가장 높은 감축 기여도를 요구받은 전력 부문은 68.8~75.3% 감축을 계획하고 있다. 이를 위한 전원별 에너지믹스 비중은 올해 확정될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담길 예정인데, 재생에너지와 원전 비중 확대에 따라 에너지저장장치(ESS) 역할을 할 양수발전 확대도 예상된다.
한수원 관계자는 "재생에너지 확대로 태양광이 발전하는 시간대의 잉여전력을 저장해뒀다가 해가 지면 다시 공급할 에너지저장장치(ESS)의 중요성이 커졌다"며 "양수발전은 기존 배터리에너지저장장치(BESS)와 대비해 물(Water)을 이용하는 일종의 '물배터리(WESS)'로도 불린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배터리 기술이 더 발전하기 전까지는 양수발전이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극복할 최적의 대안"이라며 "자연 훼손을 비교적 최소화할 수 있는 친환경 에너지원이라는 점도 양수발전의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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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CBS노컷뉴스 최서윤 기자 sabi@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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