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1만 시대 온다…월급만으로는 못 따라간다

코스피가 8000선을 보여준 뒤 다시 조정을 받는 장면은 단순한 숨 고르기일까 아니면 과열의 신호일까. 김한진 삼프로TV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한국 증시의 움직임을 일시적 급등이 아니라 지수대 자체가 바뀌는 구조적 변화로 해석했다. 과거 한국 증시는 몇 차례 큰 도약을 경험했고 그때마다 시장의 기준선이 달라졌다. 지금의 코스피 역시 그런 전환 국면에 들어섰다는 진단이다.
핵심은 코스피가 예전처럼 2000에서 3000 사이를 오가는 시장이 아니라 6000에서 10000 사이를 새로운 박스권으로 삼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이것은 단순히 주가가 많이 올랐다는 뜻이 아니다. 한국 기업의 이익 체력과 자기자본이익률이 달라졌고 반도체와 AI 인프라 산업이 한국 증시의 성격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의미다.
김한진 박사는 자신의 업력에서 지수대가 크게 바뀐 시기가 두 번 있었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는 1980년대 후반이었다. 1983년 코스피는 130 수준이었지만 이후 수출 호황과 3저 호황을 타고 1000선을 넘어섰다. 당시에도 주가순자산비율은 0.7배에서 2배까지 올라갔다. 두 번째는 2003년 이후였다. 닷컴버블 후유증으로 500선까지 밀렸던 코스피가 2000선까지 올라갔다. 이때도 PBR은 0.6배에서 2배까지 상승했다.
흥미로운 것은 두 번 모두 PBR 2배 부근이 하나의 기준점처럼 작동했다는 점이다. 최근 한국 증시도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관세 충격이 컸던 시점에는 PBR이 0.7배 수준까지 내려갔지만 지금은 1.7배 안팎까지 올라왔다. 과거의 규칙성이 반복된다면 PBR 2배 부근까지는 추가 상승 여력이 남아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지수로 보면 코스피 10000에 대한 논의가 완전히 비현실적인 숫자는 아니라는 뜻이다.
다만 이것은 코스피가 당장 직선으로 10000까지 간다는 의미가 아니다. 김 박사는 앞으로 적어도 몇 년 동안 한국 증시가 6000에서 10000 사이의 새로운 지수대에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과거에도 코스피가 1000선을 돌파한 뒤에는 1000포인트대가 오랜 기간 기준선이 됐고 2000선을 돌파한 뒤에는 2000포인트대가 장기간 기준선이 됐다. 이번에도 지수의 레벨 자체가 바뀌었고 7000선 아래로 깊게 밀리는 경우가 있더라도 그것은 일시적 충격일 가능성이 높다는 시각이다.
한국 증시의 레벨업을 가능하게 만든 핵심 변수는 기업 이익이다. 주식시장은 결국 기업 이익의 함수다. 김 박사는 올해 한국 기업의 자기자본이익률이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20% 안팎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봤다. 다만 이 수준이 계속 유지되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과거 10% 안팎에서 머물던 ROE가 앞으로는 15% 부근에서 유지될 가능성이다. 이 정도만 돼도 한국 증시의 적정 PBR은 과거와 달라질 수 있다.
한국 증시가 오랜 기간 저평가됐던 이유는 낮은 ROE와 높은 이익 변동성이었다. 기업이 벌어들이는 돈이 불안정하고 주주에게 돌아가는 몫도 충분하지 않으면 시장은 높은 밸류에이션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반도체와 AI 인프라 전력기기 방산 조선 등 한국이 강점을 가진 산업이 글로벌 투자 사이클의 중심에 들어가면서 시장은 한국 기업의 이익 질을 다시 평가하기 시작했다.

미국 증시를 봐도 이 흐름은 분명하다. 미국 S&P500에서 AI 반도체 하이퍼스케일러 기업들의 시가총액 비중과 영업이익 비중은 비슷하게 움직이고 있다. 시장은 결국 이익을 따라간다. 한국 역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커졌다. 한국 증시의 시가총액에서 두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크지만 영업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더 크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증시를 다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리스크도 있다. 가장 먼저 봐야 할 것은 금리다. 김 박사는 최근 영국 10년물 국채금리가 5%를 넘는 장면을 주목했다. 채권시장에서 인플레이션 경계감이 다시 커지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유가 상승과 국채 발행 확대 그리고 기업들의 대규모 자금 조달이 겹치면 장기금리가 쉽게 내려가기 어렵다. 빅테크와 하이퍼스케일러들이 AI 데이터센터 투자를 위해 채권을 발행하고 미국 재무부도 계속 국채를 찍어내는 상황이다. 장기금리 압력은 증시 밸류에이션에 부담이 될 수 있다.
다만 김 박사는 유가 상승이 곧바로 금리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신중하게 봤다. 공급 충격으로 물가가 오르는 경우와 수요 과열로 물가가 오르는 경우는 다르다. 유가가 올라 소비자가 고통을 받는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면 경기를 더 압박할 수 있다. 연준도 이 차이를 알고 있다. 핵심은 유가 상승이 임금 상승으로 전이되는지 여부다.
2022년에는 유가와 공급망 충격이 임금 인플레이션으로 번졌다. 노동시장이 뜨거웠고 임금 상승률이 물가를 따라가거나 앞질렀다. 그 결과 연준은 강한 긴축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최근 미국 임금 상승률은 물가 상승률을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고 자발적 퇴직률도 낮아지고 있다. 노동자들이 더 높은 임금을 찾아 쉽게 이동하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으로 높아져도 연준이 곧바로 금리를 올리기 어렵다. 임금이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때는 연준이 움직일 가능성이 커진다.
미중 관계도 한국 증시에 중요한 변수지만 김 박사는 오히려 지금의 긴장 구조가 한국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봤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할 수밖에 없고 중국은 미국을 따라잡으려 한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반도체 조선 방산 전력기기 바이오 로봇 등 전략 산업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 한다. 한국은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가다.
김 박사는 인공지능 시대에는 월급만으로 자산 형성의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봤다. 기술 혁신이 진행될수록 전체 부가가치 중 노동이 가져가는 몫보다 자본이 가져가는 몫이 커지는 경향이 강해진다. 미국에서도 오랜 기간 생산성은 개선돼 왔지만 그 성과는 노동자 임금보다 기업 이익에 더 많이 반영됐다. AI 시대에는 이런 흐름이 더 빨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개인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김 박사의 결론은 명확하다.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에 동참하려면 주식시장에 참여해야 한다. 월급만으로는 기업 이익 증가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결국 개인도 자본가의 수익 흐름에 일부 올라타야 한다. 그 방법이 주식 투자다.
다만 종목 선정에 대한 욕심은 경계해야 한다. 김 박사는 장기적으로는 ETF와 같은 시장 전체에 대한 적립식 투자가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봤다. 액티브 펀드매니저가 장기간 시장을 이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10년 이상 시장을 꾸준히 이긴 펀드매니저도 많지 않고 20년 30년 단위로 보면 확률은 더 낮아진다. 시장은 단기적으로 비합리적이고 지저분하게 움직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 이익을 따라간다.
지금 한국 증시는 새로운 질문 앞에 서 있다. 코스피가 8000을 넘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8000 이후에도 이익이 유지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반도체가 과거와 다른 사이클에 들어갔는지 AI 인프라 투자가 장기화될지 한국 기업의 ROE가 구조적으로 높아질지 확인해야 한다. 만약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긍정적이라면 코스피 10000은 상징적 구호가 아니라 새로운 가격대의 상단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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