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숨결 간직한 숲, 노란 ‘꽃폭포’를 품다

해남 현산면 황산리 4est수목원은 목향 장미 세상이다. 연두색으로 갈아입은 나무들 사이에 노랑과 하얀꽃들이 한껏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가느다란 줄기마다 초록 잎이 촘촘하게 달려있고 그 사이로 탐스러운 노랑 꽃송이들이 폭포처럼 쏟아진다. 햇빛을 머금은 꽃잎들은 비단처럼 부드럽게 반짝인다. 하늘로 높이 솟아오른 덩굴은 마치 자연이 손수 짜놓은 꽃의 커튼과 같다. 목향장미가 활짝 피웠다는 소식에 수목원을 찾아온 이들이 빽빽하게 박힌 노랑꽃들을 배경으로 추억 담기에 분주하다. 가정의달이어서 그런지 흐드러지게 핀 목향 장미꽃을 배경으로 카메라와 핸드폰을 향해 예쁜 표정을 짓는 모습에서 정겨움과 행복감이 진하게 묻어난다.

나무 사이로 뻗은 덩굴식물들은 서로 얽히며 천장을 이뤘고, 그 아래로는 양치식물과 들꽃들이 제멋대로 번져있다.
이름 모를 새가 멀리서 짧게 울면 숲은 다시 조용해진다. 숲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웅장하고 우람한 소나무와 참나무는 더 깊어진다. 가까이 다가가면 화려하기보다는 거칠고 은은한 향이 퍼진다. 이곳의 아름다움은 손질된 완벽함보다 시간이 천천히 쌓이며 만든 깊고, 오래된 생명력에 있다. 거칠고 자유로운 무성함 속에는 오래 묵은 자연의 품격이 배어있다.
4est수목원은 지난 2019년 선을 보였다. 조경 전문가인 김건영 원장의 꿈이 담긴 자연 속 도화지이다.
해남 출신으로 경기도에서 살았던 김 원장은 은퇴 후 고향에서 나무와 꽃을 가꾸고 싶었다. 인생 2막은 자연을 바탕으로 그만의 경영을 하고 싶었다. 그의 산림 경영 목표는 분명했다. 별(STAR), 기암괴석(STONE), 이야깃거리(STORY), 배울거리(STUDY) 등 4개 요건을 지향했다.
이러한 비전을 갖고 몇 년간 해남과 목포지역 산을 탐색하던 중 지난 2015년 지인을 통해 현재 수목원이 된 문중 산을 소개받았다. 이 산을 본 순간 마음에 확 꽂혔다.
1970년대 정부의 산림녹화정책으로 나무를 심고 관리한 마을 주민 150명의 명의로 된 6만평이었다. 50년이 넘은 편백, 소나무, 참나무 등 수목과 식생뿐만 아니라 계곡이 있어 대만족이었다. 그가 계획하고 있는 수목원은 일정 조건의 수목과 식생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데, 다양한 식생과 수목, 여기에 물까지 금상첨화였다.

“그때 경기도에서 살고 있었는데 소개받고 바로 내려와 이 산을 본 순간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룻밤을 여기서 보내고 그 다음날까지 둘러봤습니다, 혹여 내 차지까지 올까 염려하고 조바심이 났는데, 다행히 나에게 기회가 왔습니다.”
김 대표는 산을 매입하고 이듬해부터 2년간에 걸쳐 자신이 구상한 수목원을 조성해 나갔다. 수목원은 그의 인생 2막을 실현하는 장이자, 후대들의 교육장에 방점을 두고 있다.
우선적으로 이 산에 있는 수목과 식생을 최대한 살려내는 데 초점을 뒀다. 수목원 입구는 성토를 하는 대단위 작업이었음에도 나무의 경우 잔 가지 정리외에는 일부러 나무를 베어내는 일은 없었다. 지난 2019년 개관식도 없이 문을 연 수목원은 그가 지향하는 뜻을 담아 4est라는 간판을 달았다. 영어 숲을 뜻하는 포레스트(forest)의 발음에 맞춰 이곳의 장점 4개를 담아내는 의미였다.
김 원장은 수목원을 철저하게 경영의 눈으로 바라본다. 상품을 판매하는 제조업 경영자처럼 제작·판매·유통까지 전력을 쏟는다. 심을 수목 선택과 상품화 여부, 조형물 구조와 위치를 매년 바꾸는 수목원 업그레이드 사항은 끊임없는 고민거리이다.

계절마다 바뀐 주인공들은 수목원 뷰포인트로서 적극 활용된다. 대부분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노랑꽃이 무대가 되는 사진은 요즘 젊은이들의 소통 플랫폼인 인스타그램에 올려놓으면 반응이 뜨겁다. 조형물도 추가된다. 조형물은 거창하지 않고 아기자기하다. 이 시설물은 자연스럽게 재밌는 볼거리로서 역할을 한다. 예를 들면 ‘다모 클래스 칼’처럼 권력과 부를 얻는 순간 머리 위에는 한 올의 말총에 매달린 칼날이 정수리를 향해 있는 조형물 등이다. 헤밍웨이 소설 ‘노인과 바다’ 간판을 단 시설도 김 원장의 열정이 녹아있는 콘텐츠의 하나로 이해된다. 무엇보다 수목원 콘텐츠에는 김 원장이 미래 세대들에게 꿈의 씨앗을 키워주고 싶은 마음이 녹아있다. 그래서 그는 조형물 아이디어 사냥에 진심이다.
“갑자기 잠을 자다가 좋은 문구나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지체없이 일어나 핸드폰에 메모를 합니다. 그 시간 지나면 잊어버리니까 빨리 적어놔야 하지 않겠습니까. 수목원 조형물은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다고 자부합니다. 산림청이나 외부에서 그 조형물을 활용하고 싶다는 문의도 있어 그게 보람인 것 같습니다.”
김 원장은 수목원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한다. 우선적인 대응은 끊임없는 변화임을 인식하고 실천에 옮긴다. 스스로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안이자 찾아오는 고객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보답이라고 여겨서다. 이에 수목원은 해마다 조금씩 바꿔주고 또 없던 거 만들어 새로움을 낳고 있다. 김 원장이 시도한 방안들이 바로 튀는 것은 아니지만 눈 밝은 충성고객들이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고 얘기해줄 때 고맙고 보람을 느낀다는 김 원장의 수목원 생활법이다.

4est 수목원 한 해를 여는 목향장미 축제는 이런 일환이다. 3년 전 인스타그램에서 목향장미 사진을 보고 “이게 뭐지”하고 호기심이 생겼다. 이 사진 속 장소인 남해까지 새벽에 내려가 그 꽃 종자 구입처를 알아내 서울에서 24주를 구입했다. “물건이 되겠다”싶어 다시 전국에 수소문해 200주를 사모아 심었다. 그때 노력이 3년의 결실을 거쳐 올해 본격적으로 관람객에게 다가간다. 목향장미는 중국 원산으로 일반적인 장미와는 가시가 없고 우아함과 풍성함, 향기가 은은한 것이 특징이다. 뱅크시아 장미라도 불리며 봄철 담장을 노랗게, 하얗게 물들이는 대표적인 덩굴식물이다.
수목원 개관은 올해 6월이면 7년을 맞는다. 생태자원의 우수성과 다양한 콘텐츠에 힘입어 한 해 평균 10만명이 방문할 만큼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고객 중에는 재방문율이 높을 만큼 충성 고객들이 많다고 한다. 재방문 고객들은 처음에는 혼자 왔다가 다음에는 가족, 친구들과 다시 찾는 경우가 많다고 김 원장은 강조한다. 매년 콘텐츠 변화에 관심을 보여온 4est 수목원의 진정성을 인정받은 것에 자부심이 크다.
“이 먼 곳까지 찾아주신 고객들에게 늘 고마운 마음입니다. 매년 조금씩 변하는 모습으로 고객에게 조금이라도 만족감을 주고 싶습니다. 특히 젊은 미래 세대들에게 뭔가 꿈을 빨리 갖게 하는 확실한 메시지를 주는 게 수목원에서 제가 가장 하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조형물들은 나의 꿈이 스며있습니다.”
글·사진=이용규기자 hpcyglee@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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