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에 ‘1조원’ 쏟아붓는 한화…‘한국판 록히드마틴’ 전략 본궤도
“국가대표 방산기업 필요”
(시사저널=허인회 기자)
글로벌 톱티어 방산기업을 꿈꾸는 한화그룹의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국내 유일의 항공기 체계종합 기업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지분을 매집하는 동시에 전격적으로 경영 참여를 공식 선언하면서다. 방산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한화의 '한국판 록히드마틴' 전략이 마침내 본궤도에 올랐음을 알리는 결정적 신호탄으로 해석하고 있다. 지상(한화에어로스페이스)과 해양(한화오션)을 접수한 한화가 '하늘'과 '우주' 영역까지 장악해 방산 수직계열화를 완성할 수 있을지 업계의 시선이 집중된다.

"지분 더 늘린다"…민영화 염두 입도선매?
최근 방산 업계의 이목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이하 한화에어로)의 공시 내용에 쏠렸다. 5월4일 한화에어로는 KAI 지분 0.1%(10만 주)를 약 179억원에 장내 매수해 총 지분율을 5.09%로 높였다고 밝혔다. 자본시장법상 5%룰에 따른 공시 의무를 감수하면서까지 지분을 노출한 것이다.
가장 주목할 대목은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변경했다는 점이다. 한화에어로 측은 "구체적인 경영 참여 계획은 검토 중"이라며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필요가 있을 경우 주주로서 적법한 절차와 방법에 따라 회사의 경영 목적에 부합하도록 회사 및 주주, 이해관계자들의 사정과 이익을 충분히 감안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연말까지 총 5000억원을 투입해 KAI 주식을 추가 매입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한화가 지난해부터 KAI 지분을 사들이기 위해 투입한 금액은 약 6420억원이다. 연말까지 추가 매집을 위한 금액까지 합하면 1조원이 넘는 규모의 돈을 KAI 지분 확보를 위해 쓰겠다는 의미다.
이번 지분 매입의 표면적인 명분은 '미래 항공우주사업 협력 확대'다. 하지만 업계는 향후 KAI 매각 추진 시 잠재적 경쟁자들의 진입을 차단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로 분석한다. 최대 수십조원의 자금이 필요한 인수전에 앞서 자본력을 입증하며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도인 셈이다.
한화의 KAI 지분 매입 원동력은 방산 계열사들의 실적 성장과 현금 창출력에 있다. 한화그룹은 ㈜한화 방산 부문과 한화디펜스를 한화에어로로 흡수 합병하며 지상 방산 부문의 사업 구조를 재편했다.
이러한 통합의 결과는 수출 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주력 무기 체계인 K9 자주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6개국(핀란드·노르웨이·에스토니아·폴란드·터키·루마니아)을 비롯해 전 세계 10여 개국에서 운용되고 있다. 현재 155mm 글로벌 자주포 시장에서 K9의 점유율은 50%를 상회한다. 또한 보병전투장갑차(IFV) '레드백'의 호주 수출계약과 차세대 다연장로켓 '천무'의 중동 및 유럽 수출이 이어지면서, 올 1분기 기준 한화에어로의 지상 방산 부문 수주 잔고는 40조원에 육박했다.

두둑한 수주 잔고 앞세워 하늘길 연다
해양 부문 역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한 한화오션은 잠수함 및 수상함 건조 역량에 한화시스템의 전투체계(CMS) 및 레이다 기술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건조 시스템을 일원화했다. 지난해엔 미국 해군의 유지·보수·정비(MRO) 사업을 연달아 수주하며 실적을 개선하고 있다. 지난 연말 기준 해양 부문 수주 잔고는 34조원으로 집계됐다. 지상과 해양 양 부문에서 확보한 수주 잔고와 현금 흐름이 항공우주기업 인수를 위한 재무적 기반이 되고 있다.
업계에선 지상과 해양 사업을 통합한 한화의 KAI 인수는 '한국판 록히드마틴'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퍼즐이라고 보고 있다. '한국판 록히드마틴'은 2014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삼성테크윈을 인수하면서 밝힌 포부다. 이후 삼성테크윈은 한화테크윈을 거쳐 현재 한화에어로로 거듭난 상황이다.
그동안 한화에어로는 독자 항공기 엔진 기술을 개발해 왔으며, 한화시스템의 능동위상배열(AESA) 레이더 등 첨단 항전 장비는 이미 국산 초음속 전투기 KF-21에 탑재되고 있다. 한화가 완제기 제작 능력을 보유한 KAI를 인수할 경우, 부품 제조 및 엔진 개발부터 기체 최종 조립까지 아우르는 통합 방산 체계가 구축된다. 이는 해외 방산 수출 과정에서 원가 경쟁력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아울러 글로벌 수주전에서 지상 무기 체계인 K9 자주포나 레드백을 수출할 때 항공 무기 체계인 FA-50 경공격기나 KF-21 전투기를 결합해 제안하는 이른바 '패키지 딜' 전략이 가능해진다.
한화 측 역시 종합 방산기업 육성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화에어로 측은 "해외 주요국들이 독자적인 '육·해·공·우주 통합' 대형 방산기업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며 "중동전쟁에서 드러난 위성 및 데이터 분석(AI) 등 '전(全) 영역' 작전이 전개되는 현실을 감안할 때 덩치를 키운 국가대표 기업이어야만 글로벌 경쟁에서 앞서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상 무기 체계 중심의 독일 라인메탈은 최근 군함 건조 부문을 인수하고 차세대 레이저 무기 개발을 위한 합작투자를 단행했다. 프랑스의 에어버스와 탈레스,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 등 3사는 스페이스X에 대응하기 위해 우주사업을 통폐합한 바 있다.
한화에어로는 "한국도 우주항공·방산 분야의 결합을 통한 '내셔널 챔피언(국가대표 기업)' 설립이 필연적인 국가적 과제"라며 KAI 지분 인수, 더 나아가 최종 인수를 위한 명분을 쌓는 모습이다.
KAI 인수전이 가시화할 경우 잠재적 후보군의 움직임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현재 유도무기와 전자전 시스템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춘 LIG디펜스&에어로스페이스(LIG D&A, 전 LIG넥스원)와 과거 KAI 인수를 검토했던 대한항공이 꾸준히 후보로 거론된다. LIG D&A 내부적으로는 KAI 인수 가능성을 검토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 바 있다. 그러나 이들 기업의 재무 상황을 고려하면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해 수조원에서 수십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인수 자금을 조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에는 현대로템이 유력한 경쟁사로 부상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로템을 중심으로 현대위아의 방산 부문을 통합하며 지상 무기 사업 역량을 일원화했다. 5월8일에는 현대차그룹이 KAI와 미래 항공 모빌리티(AAM) 공동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기도 했다. 자금력을 갖춘 경쟁 그룹의 사업 확장 동향이 한화의 지분 확대 시점을 앞당겼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방산 외교 파트너 vs 독점 가능성…정부는?
관건은 정부의 매각 의지다. 현재 KAI 최대주주는 지분 26.41%를 보유한 한국수출입은행이다. 최근 KAI는 KF-21의 성공적인 체계 개발과 양산 체제에 돌입했지만 되풀이되는 낙하산 인사로 인해 장기적인 연구개발(R&D)이나 수출 전략이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했다는 점이 꾸준히 지적되고 있다. 민영화 추진 가능성이 끊임없이 거론되는 이유다.
다만 정부의 태도는 모호한 상태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0월20일 '방위 산업 발전 토론회'에서 "방산 생태계가 특정 기업에 독점화되면 곤란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국가 안보의 근간인 방위 산업이 특정 민간기업에 과도하게 집중될 경우, 무기 획득 비용 상승과 중소 방산 생태계 위축이라는 치명적 부작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KAI 내부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KAI 노조는 "우주항공·위성체 분야에서 한화와 KAI는 직접적인 경쟁 관계에 있는데 한화가 경영에 참여하게 되면 KAI 항공기의 부품 납품 단가와 원가 구조가 고스란히 노출될 수 있다"며 "KF-21 전투기 국산화 장비 중 상당 부분에 이미 한화 계열사 제품이 많은데, 경영권을 쥐면 한화의 장비를 독과점처럼 쓰라고 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외교 영역에선 한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양새다. 현 정부가 최우선 국정과제로 밀고 있는 'K방산 수출 강국 4대 도약' 기조에 가장 적극적으로 부합하는 전략적 파트너로 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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