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 15만원 ‘기본소득의 마법’… “백반집 하나뿐인 마을에 정육점 생겨”

장상민 기자 2026. 5. 18. 09:3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농식품부 ‘농어촌기본소득’ 석달… 시범지역 순창군 가보니
유등면 주민들이 정육점 세워
하루평균 매출 100만원 ‘활기’
“다음 목표는 미용실 여는 것”
풍산면 매주 금요일 이동장터
유정란 등 먹거리 선주문 받아
인근 면까지 잇는 장터로 발전
순창읍에선 ‘누구나협동조합’
전북 순창군 유등면에 최근 문을 연 ‘순창곳간’에서 지난 14일 방문객이 판매 중인 돼지고기를 살펴보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최선희(왼쪽 세 번째) 누구나협동조합 이사장이 순창군 로컬푸드 상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모습. 김동훈 기자

순창=장상민 기자

“고깃집은커녕 정육점 하나 없었어요. 막걸리 집이나 하나 간신히 있었을까. 나아질 일이 없을 것 같던 시골 마을에 새로운 활력이 도는 게 느껴져요.”

지난 14일 전북 순창군 유등면에서 만난 서대현 유등사회적협동조합 ‘순창곳간’ 책임이사가 얼마 전 개점한 정육점 매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유등면에는 6일 순창곳간이 문을 열며 처음으로 정육점이 생겼다.

순창군 11개 읍·면 가운데 가장 작은 면으로 약 1000명의 주민이 사는 유등면에는 중국음식점 한 곳, 백반집 한 곳, 그리고 농협 마트가 상권의 전부다. 임칠래 순창곳간 부장은 “예전 시골로 말하면 점방 몇 개뿐이었던 곳”이라고 했다. 그 유등면에 주민들이 직접 정육점을 세웠다. 지역주민 5명을 고용해 주 6일 운영한다. 하루 평균 매출 100만 원, 개점한 이후 입고한 고기만 3000만 원어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인구소멸·고령화가 심각한 농촌을 겨냥해 순창군 등 10개 군을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대상지로 선정했다. 주민등록을 두고 30일 이상 거주하는 읍·면 주민 전원에게 2년간 매달 15만 원을 지역사랑상품권으로 지급한다. 순창군에 투입되는 예산은 국비 389억 원을 포함해 2년간 총 973억 원 규모다. 단 사용처 제한이 있어, 면 주민은 면 내 가맹점을 우선 이용해야 하고 읍에서는 병원·약국·학원·안경점·영화관 등 5개 업종에만 쓸 수 있다.

그런데 유등면에는 사용처가 마땅치 않았다. 수요조사에서 주민들이 가장 원한 것은 육류였다. 마침 주민자치 회장이 양돈장을 운영했고, 그 돼지를 가공하는 나주의 육가공업체 운영자도 유등면 출신이었다. 지역에서 키운 고기가 지역으로 돌아오는 공급망이 만들어졌다.

주민자치 기금에서 2600만 원을 빌려 냉동탑차도 마련했다. ‘순창곳간, 순창곳간’ 로고송을 틀며 매일 서너 개 마을을 순회하며 선주문을 받아 배달한다. 서 책임은 “많아야 네댓 번 다니는 버스가 전부인 곳이다 보니 읍내에 나가서 고기 한 근 사다 들고 올 형편이 못 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다음 목표는 미용실이다. “면에 미용실이 없어 머리 하려면 읍까지 나가야 했다”는 서 책임은 인근 유휴 공간에 설비를 갖출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웃 면인 풍산면의 방점은 ‘연결’에 찍혀 있다. 구준회 풍산주민자치협동조합 이사장은 같은 날 “면 단위에는 시장경제가 무너져, 도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마트는 물론, 식당조차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14년 전 귀촌한 그는 협동조합을 꾸려 기본소득 가맹점으로 등록하고 매주 금요일 이동장터를 연다. 공급과 소비라는 단순한 메커니즘의 회복이 시작된 것이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으로 선주문을 받아 지역 우리밀 감자라면, 콩두부, 유정란 등을 판매한다. 60∼70대 등이 참여하는 이 채팅방에는 인근 팔덕면·인계면은 물론, 읍내 주민까지 들어와 주문한다. 더 나이가 많은 노인들은 인근 마을 공동 목욕탕에 들렀다 돌아가며 금주의 상품을 확인한다. 주당 매출은 100만 원이다. 1인당 평균 3만 원, 4주면 월 지급액 15만 원의 상당 부분이 소진된다. 구 이사장이 ‘마을로 찾아가는 오일장’이라 이름 붙인 이 모델의 지향점은 인근 면을 잇는 것이다.

그 연결이 9일 처음으로 가시화됐다. 순창군 관내 사회연대경제 조직 33개소가 풍산면 산울림센터에 집결한 ‘상생이음 연대장터’다. 매출의 90% 이상이 기본소득으로 결제됐다. 정예지 순창군 기본사회TF팀장은 “작은 소비 하나가 지역의 가게를 살리고, 주민의 삶을 연결해 결국 마을의 미래를 바꾼다”며 “순창군은 주민과 함께 지역순환경제의 새로운 길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2만7607명의 순창군 인구 중 1만 명이 모여 사는 순창읍에서는 정부 지원 없이 자력으로 세운 로컬푸드 매장 ‘누구나협동조합’이 10개 면 생산자와 읍 소비자를 잇는 새 유통 채널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최선희 누구나협동조합 이사장은 “옆집에서 만든 것을 내가 사고, 내가 만든 걸 옆집이 사는 순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장상민 기자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