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1건 서류만 50만쪽 ‘15층 높이’… 이젠 AI가 신속·정확 심사[안전한 食·醫·藥, 국민건강 일군다]
- 식약처 ‘의약품 AI 심사관’ 시스템 10월 현장적용
현재 허가에 평균 420일 소요
주요국에 최대 130일 뒤처져
2028년까지 223억 집중 투입
허가 기간 240일로 단축 목표
동시병렬 심사 체계 강화하고
인력 200명 역대 최대 채용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신약 허가·심사 기간을 대폭 단축하기 위해 ‘인공지능(AI) 심사관’을 전면 도입한다. ‘K바이오’ 산업의 글로벌 진출과 신약 경쟁력 강화를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의 심사 인력을 확충했다. 인력, 제도, 기술의 3대 축을 전면 재설계해 규제 지연이 산업 성장을 발목 잡는 구조를 혁신하겠다는 의지다.
◇“느림보 심사는 옛말”= 그간 식약처의 허가·심사 절차는 국내 바이오산업의 경쟁력을 약화하는 요인 중 하나로 지목돼 왔다. 한국의 신약 허가 평균 소요 기간은 420일에 달해, 미국 식품의약국(FDA·356일)이나 일본 의약품·의료기기종합기구(PMDA·290일)에 비해 최대 4개월 이상 뒤처졌었다. 이에 정부는 ‘K바이오 의약 산업 대도약 전략’을 수립하고 신약 허가 기간을 240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식약처는 오는 2028년까지 223억 원을 투입해 ‘의약품 AI 심사관’ 시스템을 완성하기로 하고, 올해 10월부터 현장에 적용할 계획이다. 신약 1건당 기업이 제출하는 서류는 무려 28만∼50만 쪽으로 아파트 9∼15층 높이에 달한다.
앞으로는 LG AI 연구원의 ‘엑사원(EXAONE)’을 기반으로 한 AI 시스템이 심사 과정에서 방대한 자료를 번역하거나 요약하고, 기존 허가를 검색 및 비교하며, 검토서 초안을 작성해주는 등 전문 심사관(사람)을 지원하게 된다. 이를 통해 심사는 더 빨라지면서도 촘촘해진다. 올해 제네릭 의약품 등 13종을 시작으로 2027년 자료제출 의약품 19종, 2028년 신약 등 23종으로 AI 심사 범위가 확대된다.
식약처는 10월부터 접수되는 신약 허가 신청을 대상으로 ‘동시 병렬 심사 체계’도 가동한다. 기존에는 한 명의 심사자가 비임상, 임상, 품질 영역을 순차적으로 검토해 대기 시간이 길었으나, 앞으로는 분야별 전문 인력 2∼3명이 동시에 투입돼 자료를 들여다본다. 제조 및 품질관리(GMP) 실태조사 역시 접수 후 90일 이내에 우선 진행해 심사 효율을 극대화한다. 실제로 지난해 의약품 허가 건수는 총 405건으로 2024년 335건에 비해 21% 늘었다. 특히 새 정부 출범 후인 하반기(7∼12월) 허가 건수는 225건으로 상반기(1∼6월) 180건보다 25% 증가했다.
◇역대 최대 규모로 인력 확충= 물리적인 심사 기간 단축을 뒷받침하기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의 인력 확충도 이뤄졌다. 식약처의 의료제품 허가·심사 인력은 369명으로, 9049명의 미 FDA나 4000명 규모의 유럽의약품청(EMA)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심사관 한 명당 심사 건수로 봐도 미국의 11% 수준에 그치는 등 심사관들의 업무 과부하가 심각했다.
이에 식약처는 올해 기존 인력의 50%에 육박하는 200명 규모의 신규 채용에 나섰고, 12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뚫은 195명(일반직 19명, 연구직 176명)의 신규 공무원이 지난달 20일 정식 임용됐다. 이들은 약 3주간의 직무·전문 교육을 통해 허가 절차와 국제 가이드라인, 실제 심사 사례 등을 숙지한 뒤, 신약 및 희귀의약품 품질 심사, 바이오시밀러 평가 등 핵심 현장에 투입된다.
인허가 시스템의 급격한 디지털 전환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섞여 나온다.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투입된 신약의 허가 결과가 AI의 ‘할루시네이션(환각 현상)’ 등 오류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식약처는 “AI는 어디까지나 심사관의 업무 보조 도구일 뿐, 모든 판단과 확정은 전문 심사관의 재확인을 거친다”고 설명했다. 또한, 행정망 내 폐쇄형 서버에 구축돼 정보 유출 등 보안 문제가 없으며, 의약품 데이터 학습 전 기본 성능 평가에서 ‘85점’으로 활용성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식약처는 현장의 혼선을 막기 위해 관련 협의체를 가동하고 글로벌 제약사의 현실적인 자료 연동 일정 등을 점검하며 제도를 다듬고 있다.
노지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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