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 암 환자는 원래 이렇게 아픈 거 아닌가요?

이영이 2026. 5. 1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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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탈리스트 다이어리]#20
사진=클립아트코리아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는다. 금요일 오후라면 더 그렇다. 그날도 그랬다. 평소 같으면 슬슬 퇴근을 준비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왠지 찜찜한 기분으로 꾸물럭거리며 병동 간호사 스테이션 안에 있는 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주말 동안 걱정되는 환자는 없는지 다시 한번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그때까지는 모두가 안정적이었다.

"OO병동에서 환자 OOO님 전동 오셨습니다."

환자 이동을 담당하는 이송반 직원의 큰 고함 소리가 들렸다. 너무나도 귀에 익은 이름이었다. 3년 전 대장암을 진단받고 항암 치료를 하면서 우리 병동에 자주 입원하는 50대 여자 환자였다. 1년 전부터는 항암제도 잘 안 듣는지, 암이 커지고 복막까지 옮으면서 복통으로 입원하는 일이 잦아졌다. 간격도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이번에도 심한 복통으로 전날 응급실을 통해 다른 병동에 입원했다가, 우리 병동에 자리가 나자 오후 늦게 병실을 옮기게 된 것이다.

환자가 전동 오기 전 인계 기록을 살펴보니 이전보다 마약성 진통제 주사 용량을 두 배나 올려 투약하고 있었다.

'아…암이 더 악화되고 있는 건가?'

마약성 진통제는 일반 진통제와 달리 '천정효과 없는(No ceiling) 약'이었다. 약의 용량을 늘릴수록 진통 효과도 비례해서 증가하기 때문에 통증이 조절될 때까지 제한 없이 쓸 수 있다는 뜻이다. 통증 조절이 중요한 말기암 환자에게는 그나마 다행인 선택지다.

통증이 안 잡히면 주말 동안 용량을 좀 더 올려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병실로 따라 들어가면서 환자의 표정을 살폈다.

"통증은 좀 덜하세요? 오늘 점심부터 진통제 용량을 올린 것 같은데요."

"큰 효과는 없지만 그래도 참을만해요. 선생님 얼굴 보니 금방 나은 것 같아요."

"정말요? 배 한번 만져볼게요."

그녀는 말과는 달리 배에 청진기만 대도 자지러지게 아파했다. 내가 손을 살짝 댔다가 떼자 비명을 지르며 몸을 더 웅크렸다.

"언제부터 이렇게 아팠어요?"

"한 사나흘 됐는데, 더 심해진 건 오늘 아침부터예요."

"방귀는 나와요? 대변은 언제 보셨어요?"

"대변 본 지는 며칠 됐고요, 방귀는 어제부터 안 나와요. 그래서 더 아픈가 했어요."

어제 응급실에서 찍은 복부 엑스레이 사진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장에 가스가 조금 차 있었지만 급한 문제로 보이지는 않았다. 응급실에서는 평소처럼 암성 통증으로 보고 우선 병실에 올려 빨리 통증 조절을 해드리자고 판단했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통증을 무던히도 잘 참는 환자였다. 끙끙 앓으면서도 의료진이 물으면 늘 "견딜 만하다"고 대답했다. 암 환자는 원래 아픈 거 아니냐며 애써 밝은 얼굴을 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매번 응급실에 올 때마다 엑스레이와 CT를 찍었지만 다른 특별한 원인은 보이지 않았다. 뱃속에 퍼져 있는 종양이 조금씩 커지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진통제 용량을 늘리고 통증이 가라앉으면 퇴원하는 일이 반복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복부 진찰에서 압통과 반발통이 분명했다. 복막염에서 흔히 보이는 소견이었다. 아침까지 열이 없었다는데 다시 재보니 39도였다. 아침 피검사에서도 염증 수치가 오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엑스레이와 CT를 서둘러 처방했다. 엑스레이에서는 장에 가스가 가득 차 장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장마비 소견이 보였다.

얼른 외과 대장파트 교수에게 협진을 의뢰하고 전화를 걸었다.

"대장암 복막전이 환자인데 심한 복통을 호소합니다. 압통, 반발통 다 있고요. 장 천공으로 인한 복막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응급수술이 필요할지 한번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지금 바로 올라가겠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CT를 진행해 주세요."

외과 교수가 달려왔고 CT를 찍기도 전에 응급수술이 결정됐다. 외과와 마취과에서 수술을 준비하는 사이 CT를 확인해 보니 종양이 커지면서 대장 벽이 터져 막 복막염이 시작되고 있었다. 불과 2주일 전 CT에서는 없었던 소견이었다. 하루 이틀 사이 상황이 빠르게 악화된 것 같았다.

저녁 7시. 우리 병동으로 온 지 몇 시간 만에 그녀는 수술실로 들어갔다. 보호자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렇게 상태가 나빠지고 있는 줄 몰랐어요. 원래 미련할 정도로 힘든 걸 잘 참는 사람이에요. 난 그것도 모르고 조금만 더 힘내보자는 말만 했네요."

그녀는 집에서 통증이 심해질 때마다 마약성 진통제를 콩알처럼 집어먹으며 가족에게 늘 미안해 했다고 했다. 남편도 딸도 손을 잡아주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해줄 수가 없었다며 고개를 떨궜다.

환자들은 암이 진행되면서 생기는 여러 증상들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체념하는 때가 많다. 의사 입장에서도 오랜 시간 서서히 악화되는 과정 속에서 평소와 달라진 증상을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일련의 흐름 속에서 미세한 변화를 잡아내는 타이밍이 때로는 생사를 가른다.

"외과에서 이렇게 빨리 응급 수술을 해주신다니 그나마 다행이에요. 이제 환자는 외과로 넘어가서 수술해 주시는 교수님이 계속해서 잘 치료해 주실 거예요."

보호자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하며 위로를 건넨 뒤, 외과 주치의에게 환자 인계 기록을 남기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다. 그날 밤 늦게 병동에 전화를 걸어 환자 상태를 물었다.

"개복 수술하는 데 다섯 시간 정도 걸렸는데 지금은 중환자실에서 경과를 관찰 중입니다. 수술은 잘 됐다고 하고 환자 상태도 안정적이니 월요일에는 다시 일반 병실로 오실 수 있을 것 같다고 합니다."

이번 주에도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불길한 예감 때문에 꾸물럭거리고 있었고, 덕분에 환자를 잃지 않았다. 전화를 끊은 후 난 편히 잠들 수 있었다.

월요일, 외과 일반 병동으로 올라온 환자를 찾아갔다.

"금요일 저녁 선생님이 계신 병동으로 오지 않았으면 주말 동안 전 죽었을지도 몰라요.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아픈 거 너무 참지 마세요. 암 환자라고 무조건 아픈 건 아니거든요."

<편집자주>

입원전담전문의(호스피탈리스트)는 병동에 상주하며 가장 가까이에서 입원환자를 돌보는 의사를 말한다. 2016년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입원전담의 제도는 2021년 본사업으로 전환되어 올해 꼭 10년을 맞는다.

'호스피탈리스트 다이어리'는 이들이 병동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치료하고 퇴원시키며 하루하루 쌓아가는 작은 순간들의 기록이다. 환자와 보호자, 다른 의료진, 그리고 입원전담의 자신에 대한 고백까지, 이 연재(주1회)를 통해 병원 안에서 겪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대한입원의학회 도움

이영이 교수 (maristella2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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