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도 오른다고?”…한국 ‘망한다’더니 코스피가 바꾼 풍경 [불장 시대 빛과 그림자①]

정채희 2026. 5. 18.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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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불과 1년 전 ‘3,000선’에 갇혀 있던 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8,000고지’를 밟았다. 비록 반나절 만에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되며 급등락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지만, 대한민국 증시는 지금껏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 전혀 새로운 숫자’의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 코스피 불장 시대, 빛과 그림자를 조명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10년 넘게 한국 경제 붕괴를 예측하고 삼성전자를 ‘모래 위의 성’으로 표현하는 분석 프로그램을 자주 봤습니다. 실제로는 정반대였습니다.”

최근 X(구 트위터)를 비롯한 일본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패배감과 당혹감이 번지고 있다. 발단은 골드만삭스가 내놓은 삼성전자의 2028년 영업이익 전망치다. 보고서가 제시한 삼성전자의 2028년 예상 영업이익은 약 3445억달러(약 53조엔). 한화로 500조원이다. 이는 일본을 대표하는 상위 100대 상장 기업의 영업이익 합계인 42.3조엔을 단일 기업 하나가 가볍게 추월한다는 충격적인 수치였다.
X에서 화제가 된 삼성전자와 일본 상위 100대 기업의 2028년 영업이익 전망치 비교 표.


일본 투자자들 사이에서 이 데이터는 ‘충격 그래프’로 불리며 빠르게 확산됐다. 한국 경제의 위기를 예견하며 ‘혐한 비즈니스’에 열을 올리던 경제 평론가들을 향해 “한국 경제 붕괴 관련 책을 책장에 줄 지어 놓은 사람들을 눈물 짓게 만드는 그래프”, “그들은 모두 체포돼야 한다”는 격앙된 반응까지 터져 나왔다.

불과 2년 전인 2024년 일본 증시의 퀀텀점프를 배우자며 한국판 밸류업 프로그램이 등장했을 때만 해도 전혀 생각하지 못한 풍경이다.

한국에서조차 삼성전자의 부활과 코스피의 비상을 확신하지 못했다. 지난해 8월까지만 해도 유튜브 채널에는 삼성 위기론이 유행했으며 일반인들은 물론 삼성을 좀 안다는 전문가들조차 비관적인 전망을 쏟아냈다.

지금은 다르다. 주식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애국심마저 고취되고 있다. 특정 산업의 주가가 오를 때마다 국내 산업을 재조명하는 분위기다.

심지어 최근 미국-이란 전쟁으로 유가가 고공 행진할 때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한국산 항공유의 몸값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우리 정유업계는 섬세한 정제 기술뿐만 아니라 질이 낮은 중동산 중질유에서 항공유를 뽑아내는 고도화 기술로 세계적인 정유 허브로 손꼽힌다. 정제하고 남은 기름 찌꺼기에서도 항공유를 뽑아내 낮은 가격으로 생산할 수 있는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춘 결과다.

어디 반도체와 항공유뿐인가. 자동차, 선박, 방산 등 주력 제조업이 굳건히 버티는 가운데 K-푸드와 뷰티 등 소비재도 성장동력으로 가세했다. 미·중 무역전쟁과 보호주의 강화로 “망한다”던 한국 경제의 대반전 서사다.

한국은 우리가 부러워하던 세계 시장을 한 단계씩 밟고 올라서기 시작했다. 올해 초 시가총액 기준으로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 증시를 넘어선 것이 상징적이다. 우리에게 독일은 ‘라인강의 기적’을 일궈낸 스승이자 닮고 싶어 했던 제조업의 북극성이었으나 이제 제자가 스승을 앞질렀다. 한국 주식시장은 시가총액 기준으로 지난13일 대만까지 넘어서며 전 세계 6위에 등극했다. 

 주식 계좌에 함박웃음…달라진 수익률

대한민국 인구 5161만 명 중 약 420만 명.

2025년 12월 말 기준으로 삼성전자의 소액주주는 419만5927명에 달하며 이들이 전체 주식의 66.04%를 보유하고 있다. 실제 주식 투자가 가능한 경제활동인구(약 2900만 명)로 범위를 좁히면 7명 중 1명꼴로 삼성전자 주주다. 가구당 평균 인원(2.2명)을 고려할 때 대한민국 약 400만 가구가 삼성전자의 등락에 희비가 엇갈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명실상부한 ‘국민주’ 삼성전자의 주가가 1년 새 419.37% 폭등하고 최근 3개월간 55%를 넘는 수익률을 기록하면서 가계 자산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이번 불장의 특징은 실제 수익 실현이 활발하게 이뤄졌다는 점이다. 신한투자증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주식을 매도한 개인투자자 10명 중 8명은 평균 848만원의 수익을 냈다. 삼성전자 투자자들의 평균 실현 수익은 714만원으로, 손실을 본 투자자들의 평균 손실액(173만원)을 크게 앞질렀다.

주식 커뮤니티에는 수십억대 차익을 실현했다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직장인들의 점심시간도 단연 투자 이야기다. “작년 2억 넣었는데 올해 두 배 넘게 벌었다”고 자랑하면 “나도 ETF로 한 달 만에 1000만원 벌었다”며 화색을 띠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제2의 전원주’, ‘제2의 김구라’가 등장하며 소비 현장도 달라졌다. 최근 백화점 명품관에서는 50·60대 고객들이 20·30대 못지않게 적극적으로 지갑을 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주식으로 수익을 낸 30~40대 중에는 수입차로 바꾸거나 배우자에게 고가의 가방을 선물하고 가족 해외여행을 비즈니스 클래스로 계획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백화점 주가도 점프…소비 진작?

소비 온기를 바로 볼 수 있는 곳이 백화점 명품관이다. 롯데·신세계·현대 등 백화점 3사는 올해 1분기 일제히 역대 최대 매출을 갈아치웠다. 영업이익 증가율 역시 전년 동기 대비 30~40%에 달한다. 롯데쇼핑의 백화점 부문 영업이익은 47.1% 폭증했고 신세계와 현대백화점 또한 각각 30.7%, 39.7%의 영업이익 신장률을 기록했다. 

실적 호조의 일등 공신은 객단가와 마진율이 높은 명품 등 고가 상품이었다. 현대백화점은 해외명품(30.0%)과 워치·주얼리(50.2%) 매출이 급등했으며 롯데백화점 역시 럭셔리 주얼리·워치 부문에서 55%의 매출 신장을 기록했다.  


외국인의 방한 소비가 급증하기는 했지만 업계에 따르면 백화점 전체 매출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미만이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성장의 핵심 동력을 주가 상승에 따른 ‘부의 효과(Wealth Effect)’에서 찾고 있다. 삼성증권 리서치센터는 기업의 역대 최대 이익 경신과 가계의 주가 상승 및 급여 증가가 가처분 소득 확대로 이어지며 ‘자산 가격 상승이 소비 확대’로 연결되는 메커니즘이 발현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2020년 코로나 당시 여행이 불가능해지며 남은 소비 여력이 명품과 프리미엄 가전으로 쏠렸던 것처럼 지금은 이란 사태 여파로 유가가 급등하며 해외여행 비용(유류할증료)이 크게 상승한 것이 변수가 됐다. 결국 비싸진 해외여행 대신 국내에서의 프리미엄 소비가 더욱 활성화되는 구조다. 삼성증권이 꼽은 수혜주는 미용 기기, 화장품, 그리고 백화점 업계다. 최근 3개월 새 롯데쇼핑 주가는 52.16%, 신세계는 47.18% 급등했다. 증권가도 백화점 3사의 목표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하지만 체감 경기는 싸늘하다. 대한상공회의소의 2026년 2분기 소매유통업 경기전망지수(RBSI)를 보면 소비의 양극화가 뚜렷하다. 주가 상승과 외국인 관광객 급증의 수혜를 입은 백화점만 유일하게 기준치(100)를 상회(115)하며 장밋빛 전망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고물가와 매입가 상승에 직면한 마트와 편의점 등은 기준치에 못 미치며 체감 경기가 얼어붙었다. 이진경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부동산 자산효과 부족, 주식 수익의 재투자 경향 등으로 인해 과거보다 자산 효과가 소비로 전환되는 비율이 낮아졌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백화점 등 일부 업종만 수혜를 입는 양극화 국면이 지속될 전망이다.

 “나만 없다” 공포가 밀어올린 빚투 ‘최대’

광풍이 거센 만큼 나만 뒤처지고 있다는 포모(FOMO·소외에 대한 공포) 현상도 짙게 깔리고 있다. 주식 투자자 A 씨는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주식’ 관련 키워드를 아예 차단했다. 화면에 코스피, SK하이닉스 단어만 떠도 가슴이 답답해지는 극심한 포모 현상 때문이다. 그러나 퇴근길 식당에서도, 옆자리 동료의 대화에서도 주식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번 사람이 있으면 잃은 사람도 있는 법. “작년에 아파트 팔고 미국 주식으로 옮겼는데 그사이 코스피가 3배 올랐다”거나 “나만 코인에 물려 소외됐다”, “SK하이닉스 수익률이 2341%인데 단 한 주 갖고 있다”는 자조 섞인 농담이 일상이 된 풍경이다.

이러한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면서 고민 상담 유튜버에게는 위로를 구하는 사연이 쏟아지고 있다. 장이 좋을 때는 사연이 없다가 지수가 폭등하는 지금은 오히려 눈물 섞인 고백들이 줄을 잇고 있다.

시장 지표에서도 과열 조짐이 뚜렷하다. 지난해 6월까지만 해도 월평균 60만 개 수준에 머물던 주식거래활동계좌 증가폭은 올해 들어서만 708만 개가 폭증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무려 1545만 개의 계좌가 새롭게 늘어난 셈이다. 특히 대신증권 분석에 따르면 0~9세 어린이의 계좌 개설 증가율이 1월 대비 119.2%에 달해 자산 대물림을 노린 투자 열풍이 전 연령대로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증권사 대출인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36조원에 육박하며 사상 최고 수준에 도달했고 마이너스 통장 잔액까지 다시 늘어나고 있다. 투자자 예탁금은 136조원을 돌파했으며 코스피가 7000선을 넘긴 단 이틀 동안에만 12조원이 추가로 유입됐다.

지수는 사상 최고가인 7800선을 넘기며 환호하고 있지만 종목별 성적표를 뜯어보면 ‘박탈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최근 일주일간 유가증권시장 종목의 66%는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고 전체 900여 개 종목 중 하락 종목(602개)이 상승 종목(281개)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의외의 복병, 결혼과 출산율마저?

흥미로운 진단도 나왔다. 증시 광풍이 한국 사회의 가장 고질적인 난제인 출산율 지표까지 돌려세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2026년 1~2월 합계출산율은 0.96명으로 급증하며 2024년 대비 23%, 2025년 대비 11%라는 경이로운 증가율을 기록했다. 이는 1981년 통계 작성 이래 계절성을 감안하더라도 가장 높은 수치다. KB증권 이은택 애널리스트는 이러한 흐름이 향후 1년간 상당히 견조하게 유지될 것으로 전망하며 그 근거로 출산율이 ‘집값이 상승할 때 하락하고, 주가가 상승할 때 반등하는’ 강한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점을 꼽았다.

자산시장 측면에서 출산율에 가장 큰 부정적 영향을 주는 데이터는 단연 주택값이다. 집값의 급등은 ‘벼락거지’가 됐다는 정신적 패배감과 감당하기 힘든 경제적 장벽을 만들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게 만든다. 이른바 ‘3포 세대’의 배경이기도 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주식시장의 강세는 약 10개월의 임신 기간을 고려할 때 약 1년 후의 출산율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과거 2000년이나 2006~2007년처럼 집값이 급등하던 시기에도 출산율이 반등할 수 있었던 비결은 코스피의 강력한 랠리가 집값 상승의 부정적 효과를 상쇄했기 때문이다.

이 애널리스트는 “증시의 ‘위험선호도’와 인간의 ‘자신감’은 본질적으로 같은 축에 있다”며 “결혼·출산은 ‘계산기’를 두드릴 때보다 ‘자신감’이 커질 때 결심하게 되는 법”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논리가 맞다면 코스피 불장이 만들어낸 자산 효과와 심리적 자신감이 한국 사회의 인구절벽 위기를 극복하는 의외의 돌파구가 되고 있는 셈이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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