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내고 새치기?” 놀이공원 ‘매직패스’에 분노하는 부모들 [남인숙의 신중년이 온다]

남인숙 작가 2026. 5. 18. 08:01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공정’에 민감해진 세대…우선권 서비스 향한 거부감 확산
불공정 익숙했던 기성세대와 달라진 젊은 부모들의 인식 

(시사저널=남인숙 작가)

최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 촉발한 놀이공원 이용권 서비스 논란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해당 글은 놀이공원에서 전용 대기줄을 통해 실질적인 우선권을 주는 '매직패스'라는 서비스를 겨냥하는 내용이다. 작성자는 "아이와 함께 방문한 놀이공원에서 매직패스 사용자들이 내 앞을 가로질러 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돈 주고 새치기하는 게 권리처럼 느껴지고 박탈감까지 들어 기분이 울적했다"고 토로했다. 특히 '대통령님, 서민들 박탈감 느끼는 매직패스 막아주세요'라는 문구에 동요한 민심이 끊임없이 찬반 논의를 재생산하는 중이다.

매직패스를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추가 비용을 내고 더 나은 서비스를 받는 것에 무슨 문제가 있냐는 의견이,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놀이동산에서까지 박탈감을 주어야 하느냐는 의견이 나온다. 

ⓒChatGPT 생성 이미지

20년 전엔 없던 박탈감, 왜 지금 폭발했나

필자가 이 논란을 처음 접했을 때 자연스럽게 나온 의문은 이것이었다. "왜 지금인가?" 그도 그럴 것이 이 제도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06년, 정확히 20년 전이다. 그 시기에 필자도 한창 육아를 하며 수도권 안의 각종 놀이동산을 자주 드나들었지만 매직패스라는 것을 딱히 의식한 기억이 없다. 온라인과 실생활에 두루 속해 있던 '엄마 커뮤니티'에서도 논란을 접한 적이 없다. 

물론 해당 논란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꾸준히 제기되는 문제였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내가 못 보았으니 그런 문제는 없었던 것이다'라고 우길 생각도 없다. 다만 그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 제도에 대해 불쾌감을 느끼는 이들이 점진적으로 늘어났다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같은 나라, 같은 놀이공원, 같은 제도가 존재해 왔다면 이 현상 안에서 달라진 요소는 단 하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입장에서의 '부모'다. 그렇다면 20년 전의 부모와 지금의 부모는 어떻게 다를까?

20년 전 어린이의 부모였던 지금의 중년 세대는 어린 시절부터 불공정한 사회의 민낯을 보며 성장했다. 학교에서는 집안 좋고 촌지 건네는 부모를 둔 아이들이 편애를 받는 걸 보았고, 동네 병원에서 대기할 때도 원장 지인들이 먼저 들어가는 걸 맥없이 지켜보곤 했다. '돈 있고 빽 있는 사람들'에게 특혜나 우선권이 돌아가는 걸 목격하며 저항감을 느끼기는 했지만 권위주의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그러다 사회 구성원들의 교육 수준이 올라가고 민주 의식이 높아지면서 불공정하다고 느낀 많은 것이 개선되었다. 필자는 은행 ATM이나 여자화장실 앞에서 질서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손해를 보던 불쾌한 경험이 한줄서기 문화가 정착되면서 말끔히 사라진 시기를 기억하고 있다. 공공장소에 하나둘 번호표 발급기가 들어오면서 세상이 좋아졌다고 느끼기도 했다. 

아이를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시켰을 때는 음료 하나 받지 않으려던 담임선생님 모습에 내가 겪은 것들을 내 자식은 겪지 않을 거라는 안도감을 느꼈다. 편법과 반칙이 난무하던 세상에 속해 있던 것들이 하나하나 시스템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는 걸 목격했고 그것만으로도 공정하다는 감각은 충족되었다. 매직패스가 처음 도입된 걸 보았을 때의 감정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시간보다 돈을 더 쓸 용의가 있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우리 세대에게 매직패스가 딱히 불편하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는 실제로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놀이공원이란 응당 줄을 서서 기다리는 곳이었고, 똑같은 경험을 굳이 웃돈 얹어서 하려는 사람들이 드물었다. 이에 대한 저항감은 오히려 특혜를 구매하는 일이 일상 안으로 들어오면서부터 올라오기 시작했다. 

"돈보다 기분의 문제"…형평성에 민감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물성이 없는 것에 기꺼이 돈을 쓰기 시작했다. 음반이나 디스크, 책처럼 물건으로 소유하는 것이 아니면 좀처럼 돈을 지불하지 않던 시대를 지나 구독 서비스 시대가 열리고, 사람들은 좀 더 쾌적한 경험에 돈을 쓰는 일에 익숙해졌다. 그러면서 소수만 이용하던 매직패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점차 늘아났다. 20년 전에는 존재감조차 희박했던 매직패스는 이제 비용뿐 아니라 예매 자체도 경쟁을 통과해야 가능한 제도가 되었다. 

한정 수량에 선착순 판매이기 때문에 인기 있는 날짜에는 유명 아이돌 콘서트 티켓을 구하듯 '피케팅('피가 튄다'는 표현과 티케팅(ticketing)을 결합한 말로, 치열한 공연·행사 예매 경쟁을 뜻하는 신조어)'도 필수다. 당일 현장 판매분을 확보하려고 남보다 일찍 도착해 줄을 서기도 한다. 놀이공원을 이용하면서 더 쾌적한 경험을 하기 위해 금전뿐 아니라 여분의 시간 투자를 더 하는 셈이다. 

문제는 이 제도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이것을 이용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이들이 구매한 우선권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공정성의 가치를 절차성에 기울이는 기성세대와 달리 형평성을 공정성으로 인식하는 요즘 젊은 부모들은 이 가시성을 불공정으로 인식한다.

이를테면 항공기의 상급 좌석 서비스는 존재를 알긴 하지만 잘 눈에 띄지 않는다. 발권이나 탑승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 직접 부딪쳐 비교될 일이 없는 데다 수가 적어 내 순서를 빼앗아간다는 기분을 느낄 일이 거의 없다. 그러나 매직패스 같은 놀이공원 우선권은 다른 VIP 서비스와는 다르게 자신의 일행을 앞질러 먼저 탑승하는 것을 눈으로 보게 된다. 이 서비스를 무려 국가에서 금지하기를 요구하는 발언에 동조하는 이들은 지불한 만큼 혜택을 받는 자본주의 원칙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기분'이 관리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정점인 미국은 물론 자유와 평등의 나라 프랑스에도, 보편 복지의 천국 북유럽에도 우리보다 더한 차등 서비스가 존재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요즘 세대가 유독 이 '기분'에 예민하며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공정성은 타인과의 비교에서 온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를 비교하기에 최적화된 사회다. 단일민족에 가까운 인구 구성에, 근대사의 두 비극으로 계층이 붕괴돼 다 같이 비슷한 출발선상에서 여기까지 왔다. 특히 지금의 젊은 세대는 어린 시절부터 입시, 취업, 스펙 경쟁처럼 '동일한 규칙 안에서의 경쟁'을 반복적으로 경험해 왔다. 이전 세대보다 투명하고 시스템화된 사회에서 성장한 만큼 작은 예외와 우선권에도 민감하다. 어느 사회에서도 가능하지 않은 일, 즉 모든 구성원이 같은 층위에 존재하는 상태를 무의식적으로 원한다. 

이 독특하게 경쟁적인 사회에서 상처받은 공정성을 꿈과 희망을 판매하는 놀이공원에서라도 위무를 받고 싶다는 이들의 요구가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지켜볼 일이다. 

남인숙 작가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시사저널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