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엔 장애인 돌봄, 주말엔 극한 산행 이유 있는 '두 집 살림' [산지컬 100]

서현우 2026. 5. 18.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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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산행하는 장애인활동지원사 최도열씨

극한 산행은 단순히 체력만 좋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다. 산을 대하는 올곧은 태도와 이념, 탄탄한 지식과 경험을 두루 갖춰야만 안전히 산행을 마칠 수 있다. 넷플릭스 인기 예능 <피지컬100>에서 피지컬이 뛰어난 이를 탐구했듯, 월간<山>은 '산지컬'이 뛰어난 이들을 만나본다. _ 편집자

"저는 월요일 아침에 출근해서 금요일 밤 9~10시에 퇴근해요."

최도열씨의 일주일 스케줄은 독특하다. 일단 두 집 살림을 한다.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면 직장(?)에서 금요일 저녁까지 머문다. 만약 주말 산행 일정이 금요일 밤부터 시작되는 무박산행이면 미리 산행 복장과 배낭을 갖고 왔다가 퇴근과 동시에 산행을 시작한다. 보통은 집으로 가서 자고 토요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산으로 간다. 그렇게 90km, 100km의 산길을 누비고 다시 또 출근. 이쯤 되면 평일에 한다는 일이 근무 시간만 길고, 오죽 편하면 그럴까 싶은데 결코 녹록하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 장애인활동지원사다.

레그프레스 270kg인데…첫 산행 후 3일 알 배겨

최씨는 강원도 영월 출신이다. 그는 "왕사남의 고장"이라며 웃었다. 정확히는 영월에서 태백 방면으로 차로 20분쯤 가면 나오는 큰 소나무가 있는 마을이다. 최씨는 "그 소나무가 우황청심환 상표 모델"이라고 했다. 거기서 8남매와 함께 왁자지껄 옥신각신 컸다.

"시골이라 빨리 다니고 뛰어다니고 이런 걸 좋아했어요. 형제들 모두 운동 쪽에 재능이 있었어요. 학교 다닐 땐 체육부장도 자주 맡았죠."

영월에서 학교를 마친 후 서울로 올라왔다. 이런 저런 일을 전전했는데 확실히 터를 잡은 건 없었다. 그러던 차에 누나가 매형이랑 운영하던 분식집이 바쁘니 손 좀 빌려달라는 요청이 왔다. 그렇게 요식업의 길이 이어졌다. 양식요리만 15년을 했다. 가게를 직접 연 적은 없지만 한 가게에서 8~9년을 머물렀고, 그 이후로는 자주 직장을 옮겨 다니면서 일을 했다.

취미는 술이었다. 술자리가 너무 좋고 재밌었다. 그러니 몸이 남아나지 않았다. 1998년 어느 날 갑자기 배가 아팠다. 평소 미련하게 잘 참는 편인데,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병원에 가봤다. 진찰을 받자마자 바로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맹장이 터져서 복막염으로 번진 상태였다. 바로 응급수술을 해야 되는 수준이었다. 흉터만 13cm 가까이 남은 대수술이었다. 9시간의 마취를 거쳐 수술을 받고 일어났더니 '살 수 있는 확률이 반반이었고, 장을 다 꺼내서 세척해야 하는 위기 상황이었다'는 설명을 들었다.

몸 관리의 중요성을 깨닫고 운동을 시작했다. 당시 식당 주방 일을 하면 한 달에 1~2번 정도밖에 휴일이 없었다. 출근하면 12시간 근무가 보통이었다. 그래서 낮, 브레이크타임에 식당 인근 헬스장에 가서 재빨리 운동하고 돌아오는 방법을 택했다. 7년 정도 운동을 하니 몸에 근육이 상당히 붙었다. 당시 몸무게가 56kg 정도였는데, 누워서 하체로 밀어 올리는 레그프레스를 270kg까지 들 정도로 힘이 넘쳤다.

"운동 다음 취미는 책이었어요. 소설이나 산문을 많이 찾아 읽었죠. 그러다가 등산 잡지들을 만나게 됐어요. <월간산>, <마운틴> 등을 5년간 매달 사서 봤죠. 인터넷이 없던 시기에는 산행지 선택이나 코스 정보가 아주 유용했어요."

2015년 백두대간 13구간 종주 중 만복대.
정상석이 인상적이었던 서대산.
설악태극종주 중 대청봉

백혈병 앓았던 친구의 제안으로 시작한 등산

등산을 하게 된 건 아주 우연한 계기였다. 2004년에 당시 유행하던 '동갑 번개 모임'에 가입하게 됐다. 거기서 사귄 친구 중에 백혈병 걸렸다가 5년 걸려 완치된 사람이 있었다. 만나면 술 마시고, 노래방 가고 그랬는데 이 친구는 당연히 술을 안 마셨다. 대신 만날 때마다 산에 한 번 가보자는 제안을 했다. 그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힘들기만 할 텐데 산을 왜 가"라며 무시했다. 그래도 자꾸 가자고 하니 "그래 우리가 졌다. 한 번 가보자"고 했다.

"그렇게 충청도 계룡산을 갔어요. 저의 첫 산행이었죠. 헬스를 몇 년간 하고, 270kg를 들어 올리는 다리인데 산행을 마치고 나니 알이 배겨서 3일을 제대로 못 걸었어요. 사용하는 근육이 다른가 보더라고요. 그렇게 힘들었는데도 막상 갔다 오고 나니 좋은 기억으로 남았어요."

처음 산으로 가자는 유혹을 꺼냈던 이는 그후로도 계속 다른 산을 가자고 졸랐다. 그 유혹에 최씨를 포함해 총 5명이 이끌렸다. 그렇게 매주 의기투합해 산을 가게 됐다. 한 달 정도 산을 다니니 이젠 갔다 오고 나서 다리도 안 아프게 됐다. 30대 후반일 때다.

"그렇게 다니다 보니 감질 난다고 할까요. 주방 일이 바쁘니 많이 가봤자 일주일에 한 번이고 대개 2주일에 한 번 산에 오르는 게 보통이었어요. 산에 원 없이 가보고 싶었죠. 그래서 직장을 때려 쳤었습니다."

주방 일자리가 넘쳐나던 때라 가능했던 선택이었다. 몇 달간 일을 하면서 돈이 모이면 사표를 내고 즉각 산으로 몇 달을 다녔다. 그러다가 슬슬 몸도 지치고 돈도 떨어져 가면 다시 몇 달간 주방에서 일하는 삶을 반복했다. 3번 정도 그런 기간을 반복했다. 산에 대한 낭만이 밀집돼 있던 시절이었다.

"지금이야 등산앱도 많고, 인터넷에 산행후기도 많지만 그땐 앱도 없고 후기는 적었죠. 그래서 책이나 아니면 얼마 안 되는 후기들을 읽으면서 산을 찾아다녔어요. 주로 혼자 다니면서 가끔 동갑 모임 친구들과 같이 오르거나 안내산악회를 이용하곤 했어요."

유명하고 멋있다는 산을 찾아다니다가 나중엔 '산림청 100대 명산'이란 것이 있다는 걸 알고 완등했다. 그중 기억에 남는 건 충남 최고봉인 서대산. 최씨가 올랐을 땐 정상석이 지금의 모양과 달랐다고 한다. 석탑이 쌓여 있고 그 중간에 정상석을 올려둔 형태였다. 그는 "충청도 산을 좋아한다. 옥천의 고리산(환산)이 있는데 거기서 대청호를 내려다보면 토끼 모양이 보인다. 그게 굉장히 멋있고 인상적이었다"고 전했다.

한창 취미로 헬스할 때 몸 상태. 레그프레스를 270kg를 들어올릴 정도로 몸이 좋았다. 
금남호남정맥 야간산행 중 조난위기에 빠졌을 때 촬영한 사진. 길이 수풀로 막혔다.
2011년 고리산(환산) 산행 중 발견한 대청호 토끼. 

새끼발가락 부러지고 엄지발톱 빠져도 "산이 좋아"

2015년 J3클럽에 가입했다. 원래 가입할 생각은 없었는데 이미 거기서 활동하고 있던 친구의 꼬드김이 이번에도 문제였다. 친구의 눈에는 그렇게 산을 좋아하면서도 '산줄기'를 타지 않고 특정 산 정상만 다녀오는 최씨가 안타깝게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백두대간을 했어요. 저는 13구간으로 했죠. 끝나고 나니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정맥을 걷자고 권유하라고요. 별로 욕심이 없었는데 그저 산행지 고민 없이 따박따박 갈 길이 있다는 점은 좋아보였죠. 그러다보니 어느 날부턴가 또 정맥을 걷고 있더라고요."

산행의 역사가 곧 꼬임의 역사였다. 이어서 지맥까지 걷고 했는데 현재까지 완주를 마무리한 건 1대간 9정맥, 6기맥이 전부다. 2025년 12월에 완주했다. 코로나 시국 때 산행을 많이 못해서 오래 걸렸다. 또 주방에서 일하다 보니 주말에 쉬는 게 원활하지 못한 것도 주효했다. 그래서 평일에 산행 가는 산악회를 찾아 길을 잇곤 했다. 산줄기 걷기를 못 하면 근교산행. 아침 6~7시쯤 나가서 저녁 6~7시까지 12시간에 40km를 걷는 훈련을 했다. 지금도 그가 '근교산행을 다녀왔다'고 하면 이 정도의 시간과 거리가 기본이다.

테마가 있는 장거리 길도 여럿 섭렵했다. 그가 가장 먼저 떠올린 건 김신조 루트길이다. 이름대로 김신조 일당이 걸은 길을 유사하게 따라 걷는 코스로, 파주 파평산에서부터 출발해서 북한산 김신조 밀랍인형을 지나 청와대 인근 북악산까지 63km다. "어린 시절 '삐라'를 통해서 접했던 게 간첩이라 과연 어떤 길일지 순전히 흥미본위로 걸어봤다"며 "마장호수도 지나고 꽤 볼거리가 많아 재밌는 길"이라고 평했다.

사건사고도 많았다. 금남호남정맥은 홀로 걷다가 조난위기에 빠진 적도 있었다. 숙지한 코스 정보가 알고 봤더니 겨울에 체크된 것이었다. 여름의 산은 수풀이 한가득 우거져 있어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50km쯤 진행하자 새벽 2시였는데 무작정 밀고 들어가다가 수풀에 둘러싸인 채 오도 가도 못하고 이슬에 몸만 흠뻑 젖은 상태가 됐다. 마침 같은 시간에 불수사도북을 하고 있는 선배에게 전화해서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자 "되짚어 나온 뒤 해뜨길 기다려라"는 답이 왔다. 그렇게 돌아 나와서 2~3시간을 보내고 해가 뜨자 거짓말처럼 보이지 않던 길이 떡하니 보였다.

가장 나쁜 기억을 준 산은 관악산이다. 관악산둘레길을 걷다가 '이쪽으로 오면 희한한 광경을 볼 수 있다'는 글이 적힌 A4 용지를 주웠다. 수없이 다닌 길이라 신기한 게 뭔지 궁금증이 생겨 일단 오라는 쪽으로 땅에 길 흔적을 더듬으며 걸었다. 그러다보니 별안간 플라스틱 의자가 길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어 이상해 고개를 들었더니, 시신이 있었다. 양복을 입은 채로. 최씨는 "아마도 시간이 오래 지나면 까마귀나 산짐승에 훼손될까봐 자신을 발견해 달라고 써놓은 것 같다"고 했다. 나중에 듣기론 우울증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한편 다친 적도 많았다. 새끼발가락은 두 번 골절됐었다. 북한산과 충청도 모처였다. 무릎 인대가 늘어나기도 했고, 발톱은 여섯 번 빠졌다. 하광용성이라고 하남~광주~용인~성남을 도는 100km 코스에선 양쪽 엄지발톱 두 개가 몽땅 빠졌다.

고통스럽고, 아파도, 신기하게 산이 싫지 않았다. 도무지 질리지 않았다. 지금도 누가 산에 가자고 하면 아직도 가슴이 설렌다. 최씨는 그게 "희한하다"고 했다.

"그외 부산 11산이나 춘천분지환종주 등 80~90km 급의 코스들, 아니면 충청도에 있는 50km 전후의 종주코스들이 생각나네요. 그보다 더 유명한 200km급 코스들, 가령 국립공원 연계산행 같은 건 시도를 못 해봤어요. 다른 코스는 금토일 무박산행으로 충분히 완주할 수 있는데, 100km 이상 가려면 하루나 이틀 더 휴가를 내야 하잖아요. 저는 휴가 낼 형편이 안 되거든요."

서울 아차산에서 만난 최도열씨.

장애인활동지원 위해 극한산행 자제

휴가 낼 형편이 아니란 말은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하다.

그의 직업은 장애인활동지원사다. 실제론 휴가를 얼마든지 낼 수 있다. 대타를 구하거나, 돌보는 이의 가족이 오거나, 정 안 되면 장애인 혼자서 생활하면 된다. 그런데 대타를 구하기도 하늘의 별따기고, 가족은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 휴가가 강제된다. 그래서 '내가 없으면 이들이 더 고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마음이 내키지 않는단다. 스스로 마음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처음은 고용관계였을지 몰라도 이젠 가족이자, 형제다.

"15년 동안 주방에서 일을 하니 팔꿈치가 고장 났어요. 예전처럼 요리를 못 해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방황하던 차에 동갑 모임에서 만난 제주도 친구가 마침 자기가 장애인 돌봄 일을 하고 있다면서 이 일을 해보라고 추천해 주더라고요."

전혀 관련 정보를 모르고 있었지만 일단 담당 센터로 갔다. 거기서 소개받아 처음 만난 이는 근육병을 앓고 있었다. 온 몸이 축 늘어지는 병이라 순전히 최씨의 힘으로 돌봐야 했다. 1년 후 다른 이를 소개 받았다. 30대에 뇌병변으로 인한 장애로 활동이 조금 불편한 이였다. 최씨는 "이 친구와 현재까지 10년 동안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다른 선생님이 돌보고 있었어요. 시작은 그분이 안 계실 때 하루에 몇 시간만 했죠. 기존 선생님이 여성분이라 목욕이나 이런 케어가 조금 껄끄러운 게 있었어요. 이 친구 혼자 목욕하면 2~3시간씩 걸렸죠. 그래서 이 친구가 저에게 전일 케어 요청을 해서 현재에 이르렀네요."

무엇보다 둘이 마음이 잘 맞았던 것은 야외활동을 좋아한다는 점이었다. 최씨에 따르면 아무래도 큰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은 아니라 나이가 많고 실내 활동을 선호하는 활동지원사들이 많은 상황이라고 한다. 최씨는 기꺼이 서울 곳곳의 무장애 데크길을 그와 함께 나갔다. 그가 전동휠체어를 타고 앞서가면 최씨가 부지런히 이를 뒤쫓는 식이었다. 최씨는 "몸이 근질근질한 차에 운동 삼아서 갈 수 있으니 서로 미안할 것이 없어 최고의 듀오를 이룰 수 있었다"고 했다.

"영화관이나 뮤지컬도 자주 봤어요. 조금 아쉬운 게 장애인석이 보통 맨 앞 아니면 맨 뒤더라고요. 중간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이 친구를 들쳐 업고 계단을 올라가 중간에 좋은 자리에 앉아서 같이 보곤 해요."

남의 손과 발이 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사고가 날까 하루 종일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야외활동도 마냥 좋지는 않다. 안아서 옮기거나 할 때 중심을 못 잡고 넘어지면 큰 사고다. 씻길 때도 미끄러질까 스트레스가 있다. 그래도 딱히 불편하다거나 어렵다고 느끼진 않는다.

최씨는 "제 바로 위 형님이 지적장애가 있는데, 가족 중 내가 제일 친해서 같이 놀고 돌보는 걸 도맡았었다"며 "그래서 딱히 선입견이나 편견도 없고 현실도 잘 알아서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고 했다.

백두대간 정도가 아니면 대부분 트레일러닝화로 산행한다. 처음 산에 입문했을 땐 어느 산이든 중등산화로 갔지만, 너무 무거워서 바꿨다고 한다.

종주하는 '티' 내지 않기

11년 동안 돌봄 일을 한 탓일까. 주변 사람들은 그가 산행에서 소위 '종주하는 티'를 안 낸다고 전했다. 잘 걷는다는 이들 중 그런 티를 내는 사람이 꽤 많다면서. 한껏 체력을 자랑하면서 성에 안 찬다고 혼자 바쁘게 가버린다든지, 누가 잘 못 걷고 힘들어하면 놀리는 식이다.

"도전적인 산행을 할 때가 아니라 일반 친구들하고 산에 가면 저는 맨 뒤에서 천천히 봐주는 식으로 가요. 또 극한산행을 하더라도 누가 중도하차한다고 하면 같이 내려가고, 또 항상 그럴 마음으로 산행하고 있어요.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요? 글쎄요. 그냥 그러고 싶어요."

그는 등산하고 난 뒤, 체력이 좋아진 것도 있지만 사물을 보는 관점도 약간 바뀐 것 같다고 했다. 처음에는 산을 오를 때면 그냥 흘러가는 이미지들을 보는 수준으로만 봤다. 그런데 다니면 다닐수록, 조금씩 더 들여다보게 됐다고 한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말을 정확히 거꾸로 뒤집은 셈이다. 숲을 보다 보니 그 안에 나무를 하나씩 찾아보게 됐고, 그보다 더 작은 나뭇잎, 더 작은 존재들까지 찾아보게 됐단다.

이런 습관이 일반 생활로도 확장됐다. 그는 겉모습만 크고 허황된 것에 눈길을 뺏기지 않고, 진짜 귀중하고 소중한 가치들을 예민하게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아마도 그는 그래서, 가고 싶은 곳이나 걷고 싶은 길이 숱하게 많지만 휴가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최씨만의 노하우가 있다. 발목을 삘 것 같을 때 일반인들은 안 삐려고 힘을 주는데, 오히려 힘을 빼야 덜 다친다고 한다.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자신만의 감각이 있단다. 
예전엔 숲만 봤다면 이젠 나무, 더 작은 나뭇잎, 더 작은 존재까지 산에서 찾아보는 습관이 들었다고 했다. 그게 산행을 시작하면서 바뀐 인생의 가치관이라는 설명이다. 

월간산 5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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