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을 담보 잡히고 새하얀 공포에 도전장 [강의실에서 히말라야로 ③]




5일간의 울릉도 훈련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4평 남짓 작은 자취방이 5성급 호텔 스위트룸처럼 느껴졌다. 여러 날 눈밭을 뒹굴며 방수 능력을 잃어버린 고어텍스 재킷과 바지는 땀 냄새가 배어 쿰쿰한 냄새가 났다. 온몸이 흙먼지 범벅이었다. 이대로 침대에 올라갈 수는 없다. 하지만 욕실에 가서 씻을 기력이 도저히 남아 있지 않았다. 결국 무거운 배낭을 내팽개치고 차가운 맨바닥에 그대로 쓰러져 잠 들었다.
며칠 뒤, 훈련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몸을 이끌고 강의실에 앉아 전공 강의를 듣고 있었다. 문득 원정대 단톡방 공지사항이 떴다. '파키스탄행 항공권 발권 완료.' 원정 참여에 대한 각서도 서명을 마쳤다. 달력을 열어 D-Day를 세어 보니 출국까지 100일이 채 남지 않았다. 온몸이 서늘해졌다.
7차 훈련이 끝난 지금, 나는 정말 6,000m 고산에 오를 준비가 되었는가? 국내 훈련조차 버거워하는 내가 원정을 가는 게 맞는 걸까? 25세 또래 동기들은 취업 준비를 하고, 대외활동을 하며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느라 바쁜데, 나는 온 정신을 히말라야 원정대와 부산대 산악부에 쏟고 있다. 게다가 몇몇 대원들은 원정대를 이탈했다. 그 빈자리를 볼 때마다 내 마음도 흔들렸다. 그리고……, 솔직히 무섭다.
'지금까지 훈련한 게 아깝긴 하지만, 그만두는 용기도 필요하지 않을까? 내가 과연 도움이 될까?'
가장 두려운 건 내 한계를 마주하는 일이었다. 정상에 가는 건 고사하고, 내 한 몸 건사하지 못한 채 짐짝처럼 질질 끌려가다 팀원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만큼은 죽어도 싫다. 하지만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할 때마다 결론은 늘 한 곳으로 귀결되었다. 안 갈 이유는 수천 가지인데, 가야 할 이유는 단 하나, 내가 미치도록 가고 싶기 때문이다.
매달 40만 원 남짓한 알바비로 훈련비와 비싼 장비 값을 충당해야 하는 현실도 팍팍하고, 부산대 산악부 대장으로서 산악부를 잘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도 무겁다. 때로는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마음 편히 술도 마시고 해외여행도 다니며 놀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진정 원하는 것, 마음이 시키는 일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면 히말라야 원정이었다. 척박한 고산에서 살아 있다는 감각을 느끼고, 내 한계를 보란 듯이 부수며 강해지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가장 갈망하는 일이었다.

가장 피하고 싶었던 고통과 마주하다
"훈련 때마다 땅만 보고 질질 끌려가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면 진짜 죽고 싶어."
원정에 전념하기로 결심한 뒤, 원정대에서 함께 막내 라인을 맡고 있는 재우(동아대 산악부25)와 속마음을 나눴다. 재우의 고백은 내 뼈를 때렸다. 나 역시 같은 패배감을 씹어 삼키고 있었다. 훗날 카라코룸 히말라야에 가서 체력 부족으로 정상에 서지 못한 채, '아! 그때 개인 훈련 더 독하게 할 걸'하며 땅을 치고 후회하는 건, 죽기보다 싫다.
고백하건대,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암벽과 빙벽 등반에만 취해 있었다. 일주일에 사나흘씩 산에 가서 바위를 타고 얼음을 찍어대니, 따로 체력 훈련할 필요는 없다고 자만했다. 하지만 히말라야 6,000m 고산의 희박한 산소가 우리에게 진짜로 요구하는 자질은 화려한 무브나 테크닉이 아니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고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끈적한 고통, 바로 '숨 막히는 달리기'와 무식한 기초 체력이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해 왔다.
내 밑바닥을 인정한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투자론 수업이 끝나자마자 운동화 끈을 동여매고 학교 뒷산인 금정산으로 향했다. 피할 수 없는 '업힐Uphill 훈련'을 시작하기 위해서다. 처음 원정대 합류 소식을 알렸을 때, 고산등반을 경험한 부산대 산악부 졸업생 선배들이 입을 모아 한 말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동문 달리기'는 매주 하라"는 것이다.
부산대 후문에서 시작해 금정산성 동문까지 이어지는 가파른 아스팔트 길. 평소라면 마을버스를 타고 편하게 오르던 길을 두 발로 뛴다고 생각하니 출발 전부터 아찔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오르막을 향해 묵묵히 발을 내디뎠다. 얼마 가지 않아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입에서 피 맛이 났다. 다리는 족쇄라도 매달아 놓은 듯 묵직한 통증이 몰려왔다. 옆에서 감시하는 사람도 없으니 '딱 1분만 걸으며 쉴까?'하는 악마의 속삭임이 한 발 디딜 때마다 귓가를 맴돌았다.
하지만 내가 세운 규칙은 단 하나였다. "절대 멈추지 않는다!"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다리가 풀려 걷는 것보다 느려질지언정, 무조건 뛰어간다는 것을 1원칙으로 삼고 악으로 버텼다. 그렇게 일주일에 두 번씩 미련한 동문 달리기를 반복했다. 쉬는 날에는 15km 이상을 쉬지 않고 뛰는 장거리 러닝을 훈련 프로그램에 욱여넣었다. 거창할 것 없는 땀방울이 모여 나의 빈약한 엔진을 서서히 개조해 나가고 있었다.

끊고 싶었던 썰매줄, 종합실전 훈련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된 원정 훈련이 7차에 접어들었다. 이번 덕유산에서 진행된 훈련은 그동안 몸으로 부딪치며 배운 모든 기술을 쏟아 붓는 '종합 실전'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 모든 장비를 착용한 채 까마득한 설사면을 오른다. 시야가 좁아지고 있었다. 앞서 걷는 동료들의 희미한 헤드랜턴 불빛에만 의지해 더듬더듬 발을 내디뎠다. 가뜩이나 배낭의 무게만으로도 척추가 짓눌려 죽을 것 같은데, 울릉도 훈련 때처럼 공용 장비를 실은 썰매까지 끌어야 했다.
스노바와 데드맨, 퀵드로, 아이스 스크루 등 쇳덩이로 꽉 찬 썰매는 내 허리를 계속 뒤로 잡아끌었다. 당장이라도 허리춤에 연결된 슬링을 칼로 끊어버리고 눈밭에 나자빠지고 싶은 충동이 수십 번도 넘게 치밀어 올랐다.
이를 악물고 버텼다. '무슨 일이 있어도 멈추지 않는다'는 개인훈련에서의 다짐을 지켜야 했다. 나만 한계와 싸우는 것이 아님을 안다. 모두 고통스럽고, 모두 자기 한계를 깨부수는 중이다. 무엇보다 이 무거운 썰매는 나 혼자 감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2인 1조로 썰매를 끌 때, 앞사람이 지쳐 멈춰버리면 뒤에서 스틱으로 썰매의 방향과 무게를 통제하는 파트너가 고스란히 그 충격을 떠안게 된다.
이번 훈련의 파트너인 재영 선배(동아대23)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억지 파이팅을 외쳤다. 내가 속도를 늦추면 재영 선배가 더 힘들어질 거란 생각 하나로, 끊어질 듯한 허벅지 근육을 달래가며 묵묵히 눈을 뭉개고 나아갔다.
완만했던 초반 구간을 어찌저찌 넘기고 나니, 고도를 높일수록 끝이 보이지 않는 첩첩산중의 급경사가 앞을 가로막았다. 팍팍하게 얼어붙은 눈에 이중화가 헛돌고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겨울 내내 빙벽과 눈밭에서 뒹굴며 몸에 새겼던 사이드 스텝Side step, 스텝 커팅Step cutting, 백스텝Back step 같은 설상 등반기술을 기계적으로 꺼내 쓰며 필사적으로 고도를 높였다.
가파른 설사면 중단부에 이르러서야, 스노바와 자일을 사용해 직접 픽스 로프Fixed rope를 깔고 주마링Jumaring으로 등반하는 훈련이 이어졌다. 등강기를 끌어당겨 로프를 올랐다. 까마득한 허공 위로 올라갔다. 어둠 속에서 차가운 장비가 부딪히며 내는 서늘한 금속 소리, 발에 짓눌린 눈이 "퍽퍽" 압축되는 소리만이 적막한 덕유산에 울려 퍼졌다. 허공에 매달려 거친 숨을 고르는 사이, 불현듯 등골이 서늘해졌다. 피부로 느껴지는 건, 한 가지였다.
'이젠, 정말 히말라야가 코앞까지 다가왔구나.'


단순하고 무식한 진심 하나면 충분하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던 병아리 같았던 1차 훈련 때와 비교해 보면, 꾸역꾸역 한계를 깨며 성장해 가는 우리를 볼 때마다 묘하게 가슴이 벅차오른다. 여전히 한참 부족하지만, 각자의 약점을 채우려 기꺼이 땀 흘리는 우리 원정대 팀원들이 참 좋다. 우리는 천천히 가더라도 끝까지 함께 갈 것이다. 하나의 자일에 서로의 목숨을 묶고, 미련할 만큼 단단한 신뢰로 똘똘 뭉쳐서 말이다.
우리는 '남들 다 누리는 즐거운 청춘을 포기하면서까지 왜 이 고생을 사서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답을 아직도 찾지 못했다. 하지만 그냥 함께 거친 숨을 몰아쉬며 설사면을 오르고 바위를 오르는 이 시간 자체가 미치도록 즐겁다. 6,000m 고봉이라는 거대한 목표 앞에서는 여전히 알을 갓 깬 병아리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도망치고 싶지 않다. 안 갈 이유 수천 가지를 덮어버린 '그냥 너무 가고 싶다'는 그 단순하고 무식한 진심 하나면 충분하다.
히말라야에서 나와 동료의 목숨을 끝까지 지켜내겠다는 다짐 하나로, 우리는 오늘도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이중화 끈을 조여 맨다. 원정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딱 100일. 어제보다 한 걸음 더 단단해진 나를 만들겠다는 다짐과 함께, 다시 집을 나서본다.

월간산 5월호 기사입니다.
Copyright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