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조정권 꺼낸 정부, 삼성 노사에 합의 압박
총리 “파업을 막을 마지막 기회”
이재용 “비바람 제가 다 맞겠다”
대국민 사과하며 대화 문 열어

김민석 국무총리는 17일 대국민 담화에서 “삼성전자 파업으로 국민 경제에 막대한 피해가 우려되면 정부는 긴급 조정을 포함해 가능한 모든 대응 수단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 노조가 예고한 대규모 파업(21일)이 나흘 앞으로 다가오자, 국무총리가 ‘긴급 조정’을 공식 언급하며 막판 합의를 강도 높게 주문한 것이다.
김 국무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18일 교섭은 파업을 막을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며 “노사 모두 이 자리의 무게를 결코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청와대도 “정부는 삼성전자 노사가 파업에 이르지 않고, 현명하게 갈등을 해결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18일 중앙노동위가 주재하는 노사 사후 조정이 파업 전 마지막 대화가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정부·청와대가 삼성전자 노사 양측을 상대로 전방위 압박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파업이 끝나는 6월 7일 사측과 협의하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던 삼성전자 노조 분위기도 주말 사이 바뀌었다. 지난 16일 해외 출장서 조기 귀국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대국민 사과에 나서자, 극적으로 2차 사후 조정이 성사됐다. 이 회장은 고개를 세 차례 숙이며 노조를 향해 “우리는 한 몸, 한 가족”이라며 “매서운 비바람은 제가 다 맞겠다. 우리 한번 삼성인임을 자부할 수 있도록 (대화에) 최선을 다해보자”고 했다. 이에 노조 측은 “신뢰 회복에 시간이 걸릴 순 있지만, 함께 갈 수 있도록 이번 교섭부터 노력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앞서 사측은 노조의 요구에 따라 대표 교섭 위원을 김형로 반도체 부문(DS) 부사장에서 여명구 DS피플팀장으로 교체했다.

한편, 정부의 긴급 조정권 가능성 언급에 노동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양대노총은 “경제적 파급력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긴급조정권을 적용하려는 시도는 사실상 대기업 노동자의 파업권을 제한하는 선례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한국노총), “노동자의 헌법상 권리를 경제 논리로 위축시키는 시도에 단호히 반대한다”(민주노총)고 했다.
◇21년 만에 긴급조정권 임박… 과거 4차례선 합의·강제중재 ‘반반’
김민석 국무총리가 17일 ‘긴급조정권’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6·3 지방선거를 염두에 뒀다는 분석이다. 파업이 반도체 생산 차질로 이어질 경우 막대한 경제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선거를 앞둔 정부 입장에선 부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파업이 시작되면 호황을 누리고 있는 국내 증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날 청와대 역시 “삼성전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매출 비중이 12.5%에 이르고, 460만 우리 국민이 주주인 기업”이라고 강조했다.
18일 오전 10시부터 열릴 2차 사후조정 회의엔 박수근 중노위 위원장이 직접 참여한다. 이번 사후 조정의 핵심은 ‘영업 이익의 N%’를 성과급 재원으로 삼고, 성과급 상한을 없애는 조건이 제도화되는지 여부다. 하지만 중노위가 1차 조정 때 절충안으로 내놓은 안에 양측 모두 거부감이 컸고, 지난 16·17일 노사의 사전 미팅에서도 격차가 좁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합의점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최승호 삼성전자 초기업노조 위원장은 17일 저녁 “(사측이) 긴급 조정, 중재로 가면 노조가 힘들 것이라고 해서 ‘그만 이야기하자’ 하고 나왔다”며 “(노조의) 피해가 클 것이라고 압박하지만 굴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긴급조정 언급에 따라, 회사의 태도도 변화한 것 같다”고도 했다. 16일 사전 미팅 자리에서는 사측이 그간의 노사 신뢰 훼손에 대해 사과하고 교섭에 성실히 임할 것을 약속했지만, 이날 김 총리가 긴급조정권 발동 가능성을 시사하자 다시 고압적인 태도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최 위원장에 따르면, 사 측은 기존 연봉의 최대 50%를 성과급으로 유지하되, 반도체(DS) 부문의 영업이익이 200조원을 넘어서면 영업이익의 9~10%를 따로 떼어내 ‘특별 포상’ 재원을 마련하고, 이를 전체와 사업부별로 6대4로 나눠 지급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이런 지급 방식을 향후 3년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최 위원장은 “사측이 (중노위 절충안보다) ‘후퇴된 안’을 제시했다”면서 “이 안을 납득할 수 없다고 사측에 전달했고, 내일 사후 조정에서 동일한 자세라면 합의하지 않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2차 사후 조정이 결렬되고 21일 파업이 시작되면 정부는 긴급 조정권을 꺼낼 것으로 보인다. 긴급 조정권은 파업 개시 후 발동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파업은 즉시 중지되고, 30일간 할 수 없다. 노조가 ‘집단 연차’를 사용하는 등 다른 방식으로 투쟁을 이어 갈 가능성도 거론되지만, 휴가 사용이 통상 범위를 벗어나 업무를 방해했다고 판단되면 이 역시 쟁의 행위에 해당돼 불법이다. 동시에 중앙노동위원회가 노사 조정 절차에 들어간다. 노사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 중앙노동위원회가 노사 양측이 의무적으로 따라야 하는 강제 중재안을 마련할 수 있다.
긴급 조정권은 지금까지 총 네 차례 내려졌다. 이번에 발동되면 2005년 대한항공 조종사 파업 이후 약 21년 만이다. 이 중 대한조선공사(1969년)와 현대자동차(1993년)는 긴급 조정권 발동 후 노사 합의로 마무리됐다. 아시아나항공(2005년)과 대한항공(2005년)은 조정 결렬 뒤 중노위 중재로 종결됐다.
긴급 조정권 발동 권한을 가진 고용노동부는 관련 법리 검토에 나섰다. 노동부는 그동안 ‘대화가 우선’이란 입장이었지만, 이날 김 총리가 긴급 조정권을 언급하자 법적 요건 검토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긴급조정권
파업 등의 쟁의 행위가 국가 경제나 국민 생활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때 고용노동부 장관이 발동할 수 있다. 발동 즉시 파업이 30일간 중지되고,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가 조정 절차에 들어간다. 노사 간 입장 차로 조정이 어려울 경우, 중노위가 중재안을 낼 수 있다. 이때 중재안은 노사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따라야 한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속보] 중노위 “삼성전자 노사, 오후 10시까지 합의 안되면 조정안 제시”
- 시진핑, 트럼프에게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후회할 수도 있다”고 말해
-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피해자, 가해자 정보 유출 혐의로 입건
- 金 ‘철도’로 부울경 연결 VS 朴 ‘기업 유치’로 경남 경제 도약
- 우아한형제들·드레이퍼, 배민 입주 스타트업 글로벌 진출 협력
- 남산서 흉기 지닌 40대 미국인 실종… “우울증 앓고 있어 자해하려”
- 서울 관악구서 음주운전 차량에 50대 여성 사망
- 권익위 “실수로 고속도로 나갔다 들어왔다면 추가 요금 면제하라”
- 전광훈 목사 ‘출국금지 집행정지 신청’ 법원서 기각
- 우버, 딜리버리히어로 최대주주로...배민 인수 협상력 높아질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