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제 능력 세계 5위권… 석유·화학 업종 주목을”
“호르무즈 해협이 막혀 있는 상황에서 아랍에미리트(UAE)의 석유수출국기구(OPEC) 탈퇴는 단기적으로는 그 영향이 미미합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유가 하방압력이 커졌다는 측면에서 우리에게 호재입니다.”

최근 조선일보 경제부가 만드는 유튜브 채널 ‘조선일보 머니’의 ‘이기자의 취재수첩’에 출연한 김태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실장은 UAE의 OPEC 탈퇴로 인한 영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는 “유가가 무한정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라며 “미국 셰일 업체들에게 큰 피해가 가지 않을 선에서, 비(非) OPEC의 한계비용 수준까지 유가가 내려가고 멈출 것”이라고 말했다.
◇유가 올라가면 가계·산업·거시경제 전반 타격
최근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전쟁 발발 후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약 51%, 미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약 57% 올랐다. 이는 에너지를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에 치명적이다. 김 실장은 이를 ‘공급발(發) 충격’으로 규정했다.
“석유 수요는 안정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유가 폭등은 거의 다 공급 충격에서 비롯됩니다. 1970년대 1·2차 오일쇼크, 1990년 이라크 전쟁,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이번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이 그 사례입니다. 특히, 이번 사태는 3차 오일 충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2차 오일쇼크 때 영향을 받은 세계 공급량이 9% 수준이었는데, 호르무즈를 통과하는 물량은 글로벌 공급의 20%에 달하기 때문입니다."
유가 상승의 파급 효과는 광범위하다. 가계는 기름값이 올라 가처분 소득이 줄고, 산업계는 물류비와 자재비가 오른다. 환율과 금리도 불안해진다. 정유 산업 규모가 내수의 20~30%에 그치는 필리핀·미얀마 같은 나라들은 배급제나 주 4일제 같은 물리적 수요 감축에 나서고 있다.

◇세계 5위 정제 능력… 미국·호주도 한국 기름 사 간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유가 상승으로 인한 충격을 상대적으로 방어하고 있다. 세계 5위의 정제 능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유국인 미국과 호주에서도 우리 기름을 사 간다. 석유 제품 수출도 세계 5위 수준이다. 김 실장은 “그 배경은 1973년 박정희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했다.
“당시 정부는 내수 물량을 훌쩍 뛰어넘는 대규모 설비를 짓고 석유화학·수출까지 연계한 산업으로 키웠습니다. 1980~1990년대 중국·인도 등 아시아 신흥국 성장으로 석유 수요가 급증하면서 호황기를 보냈고, 그 돈으로 설비를 더 고도화·확장해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그 결과 한국은 원유 100을 수입해 60을 석유 제품으로 수출하는 나라가 됐다. 지난해 기준 석유 제품 수출액은 407억달러로 원유 도입액(684억달러)의 59.5%를 회수하는 구조다. 수출 상대국을 보면 호주(16.8%), 싱가포르(13.6%), 일본(11.3%), 미국(10.2%), 중국(9.2%) 순이다. 김 실장은 “미국은 정제 능력이 세계 1위지만 항공유 수요가 자국 공급을 따라가지 못한다”며 “특히 지리적으로 가까운 서부 지역에서 미국이 수입하는 항공유의 약 70%를 한국에서 가져간다”고 말했다. 호주는 2000년대 초 에너지 전환을 명분으로 정유업을 조기 구조조정했다가 경쟁력이 낙후돼 한국에 의존하는 처지가 됐다. 그는 “이런 경쟁력 덕분에 이란 사태 때 정부가 ‘석유 최고 가격 상한제’라는 이례적 극약 처방을 시행할 수 있었다”며 “세계 5위 기술력을 가진 정유 및 석유화학 업종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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