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쉬운 생활 속 임대차 정보]불가피성 있거나 배신행위 아니라면 해지 제한

민법 제629조는 임차인이 임대인의 동의 없이 임차물을 제3자에게 사용·수익하게 하면 임대인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부동산 임대차에서 흔히 말하는 '무단 전대 금지'다. 실제 현장에서는 상가를 다른 사람에게 맡겨 영업하게 하거나, 전세를 다시 세놓거나, 가족이나 지인 명의로 운영을 바꾸는 방식으로 자주 나타난다. 많은 임차인은 "실질은 그대로인데 뭐가 문제냐"라고 생각하지만, 법원은 원칙적으로 임대인의 동의 없는 전대를 엄격하게 본다. 임대차가 단순히 물건을 빌려주는 행위를 넘어, 주인과 빌리는 이 사이의 인적 신뢰를 기초로 하는 '계속적 계약'이기 때문이다.
다만 대법원은 예외의 문도 열어두고 있다. 기준은 임차인의 행위가 임대인에 대한 '배신적 행위'인지 여부다(이른바 '배신적 행위설'). 단순히 형식상 임차인이 제3에게 재임차했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해지권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1993년 대법원 사례에서, 남편이 임차한 대지 위 건물을 이혼 과정에서 아내가 위자료로 넘겨받아 운영했고 이후 두 사람이 재혼해 함께 같은 장소에서 영업을 계속했다. 형식적으로는 임차권 관계에 변화가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동일한 가족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업을 이어간 셈이었다. 대법원은 이를 임대인에 대한 배신적 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무단 전대 형식은 있었지만, 임대인의 신뢰를 근본적으로 깨뜨린 경우는 아니라 본 것이다.
2007년 대법원 판결에서는, 임대주택 임차인이 임대인의 부도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상태에서 생업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이사해야 했고, 임대인과는 사실상 연락조차 되지 않았다. 결국 다른 사람에게 집을 사용하게 했는데, 원심은 단순 무단 전대라는 이유만으로 임차인의 청구를 배척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달랐다. 임대인의 부도로 연락 자체가 불가능했고, 생계를 위한 불가피성이 있었다면 단순한 배신행위로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그래서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고 돌려보냈다. 무단 전대 여부만 기계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왜 그런 상황이 발생했는지를 보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런 예외가 있다고 해서 임차인이 안심해서는 안 된다. 현실에서는 오히려 대부분의 무단 전대가 임차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특히 "건물주가 알고도 가만히 있었으니, 묵시적으로 허락한 것 아니냐"라는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
2020년 서울중앙지방법원 사례에서, 임차인은 제3자에게 점포를 넘겨 영업하게 했고, 건물주가 여러 차례 이를 목격했음에도 별다른 항의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단순히 알고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묵시적 동의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임대차 관계는 계속적 신뢰 관계가 중요한 계약이므로, 임대인에게는 새로운 점유 상태를 계속 용인할지 판단할 시간과 권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침묵만으로 동의가 추정되지는 않는다고 봤다.
임대인으로서는 '누가 점유하는지' 자체가 중요하다. 건물 관리, 임대료 지급 능력, 향후 분쟁 위험은 결국 점유자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은 임대인의 동의권을 강하게 보호한다.
임차인으로서도 애매하면 반드시 서면 동의를 받아두는 것이 좋다. 가족이라 괜찮겠지, 건물주가 알면서도 말이 없으니 문제없겠지 하는 안일한 판단은 나중에 계약 해지로 돌아올 수 있다.
성창우 변호사 한국부동산원 울산지사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