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일] 금남로 택시·버스 차량시위에 MBC 불타…광주역 7명 사망
오전부터 진압봉 들고 시민 무차별 구타
트럭·택시·고속버스 211대 경적 시위
광주일보 기자들 언론통제에 단체 사직서
시위대 수만명 분수대·광주역 등서 대치
밤 11시 계엄군 발포에 시민 희생 잇따라

20일에도 계엄군은 광주 시민들을 향한 무차별 폭력 공세를 이어갔다. 오전부터 진압봉을 든 공수부대는 도로 위에 줄지어 서서 시민들을 집단 구타하고 옷을 벗겨 연행했다. 머리가 깨진 시민들이 피를 흘린 채 끌려갔고, 곤봉에 맞아 쓰러진 시민들 위로 군홧발이 날아들었다.
지켜보던 시민들이 “왜 사람을 때리느냐”고 항의해도, 공수부대는 욕설을 퍼부으며 시민들을 폭행할 뿐이었다.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는 전날보다 더 늘어 있었다. 전날인 19일 오전 신군부가 제3공수여단을 광주에 증파할 것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20일 새벽 1시께 장교 255명과 사병 1137명으로 구성된 제3공수여단 병력이 청량리역을 출발해 오전 7시께 광주역에 도착하면서 광주 시내에 투입된 공수부대는 3400여 명 규모로 늘어났다.
제7공수여단과 제11공수여단 각 대대는 전남도청과 광주은행 본점, 상업은행, 한일은행, 계림파출소 등을 장악하고 있었고, 제3공수여단은 황금동과 시외버스터미널, 양동사거리, 광주시청, 전남대 등 시내 주요 길목을 틀어막고 있었다.
이유없이 시민들을 폭행하고, 연행하고, 살해하는 공수부대의 만행을 3일째 지켜보고 있던 시민들은 분노가 극에 달했다.
20일 오후 1시 20분께 상업은행 광주지점과 충장로 입구, 전남도청 앞에는 각각 수백 명의 시민들이 집결했고 계림동 일대에는 2000여 명이 몰려들었다. ‘투사회보’ 수천 장이 금남로 일대에 뿌려졌고 시민들은 충장로와 중앙로, 도청 앞으로 모여들었다.
시민들은 공수부대가 장갑차를 앞세우며 확성기로 “해산하라”고 경고해도, 오히려 “살인마 물러가라”고 외치며 맞섰다.
오후 3시를 넘어서자 청년과 학생들 뿐 아니라 상인과 노동자, 행인들까지 거리로 쏟아져 나오면서 금남로는 시민들에게 넘어가기 시작했다. 계엄군은 최루탄을 쏘며 해산을 시도했지만 군중은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기를 반복했고, 돌과 화분, 각목을 던져 가며 저항했다.
시민들은 더 이상 피하거나 달아나려 하지 않았고, 구경만 하거나 방관하는 시민도 거의 없었다. 최루탄이 날아오면 물수건과 치약을 발라 가며 버텼다. 여고생 6명이 태극기를 펼쳐 들며 행진하면 그 뒤로 시민들이 수백명 따라오기도 했다. 시민들은 길바닥에 주저앉아 “차라리 우리 모두를 죽여라!”고 절규하면서 태극기를 흔들었다.
오후 6시 30분께, 금남로에 12t 대형 트럭과 고속버스·시외버스 11대, 택시 200여대가 3열로 줄지어 경적을 울리며 도청 방향으로 진입해왔다. 트럭과 버스 위에 올라탄 청년들은 대형 태극기를 흔들었고, 차량 행렬을 본 시민들은 손을 흔들며 환호했다. 운수노동자들은 자신의 유일한 생계 수단을 무기로 삼고 목숨을 던지기로 각오한 것이었다. 기존의 즉흥적이고 비조직적인 시위를 넘어, 강력하고 일체화된 조직적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는 순간이었다.
계엄군에게는 이마저도 ‘진압 대상’이었다. 도로 중앙에 화분대를 끌어다 바리케이드를 설치하더니, 차량 시위대를 향해 대량의 최루가스를 발사했다. 선두 버스가 가로수를 들이받고 멈춰서자 공수부대원들이 달려들어 곤봉으로 유리창을 깨부수고 창문 안으로 최루탄을 던져넣었다. 끌려나온 운전기사와 시민들은 무차별 폭행했고, 그를 구하려고 달려든 시민들에게도 진압봉을 마구 휘둘렀다.
금남로를 빠져나온 시민 5000여명은 MBC 방송국으로 달려갔다. ‘8시 뉴스’에 광주의 끔찍한 참상에 대해 사실 그대로 보도해 달라고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날도 MBC 방송에서는 광주 시민을 폭도로 매도하는 계엄당국의 발표와 오락 프로그램만 방영됐다. 분노한 시민들은 오후 8시 30분께 방송국 건물을 향해 화염병을 던졌고, 밤 10시 폭음과 함께 방송국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같은 시각 KBS 방송국도 시위대에 점거돼 방송이 완전 중단됐다.

시위대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대규모 차량시위 이후, 시위대의 차량을 이용한 반격이 잇따랐다. 도청 앞 분수대로 향하는 모든 길목이 수만명의 시민들로 뒤덮였고, 충장로 입구와 노동청 방향, 금남로 입구 등에서 시위대의 차량 돌진 공격이 이어졌다. 밤 11시께에는 도청을 제외한 광주 전 지역이 시위대가 장악하다시피 했다.
계엄군은 결국 광주 시민들을 ‘집단 학살’하기에 이르렀다.
밤 9시 30분께, 제3공수여단은 제20사단 증원 병력 도착 예정지인 광주역 일대를 장악하고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었다. 공수부대원들에게는 M16 소총 개인 60발, M60 기관총 정당 2000발 등 대침투작전에 준하는 규모의 탄약이 분배돼 있었다. 시민들은 그 사실을 모른 채 분수대를 사이에 두고 시위를 계속하고 있었다.
밤 11시가 됐을 무렵, M16 자동소총의 연발사격 소리가 ‘두두두두’ 울려퍼졌다. 시위대 선두에 섰던 시민들이 픽픽 쓰러졌다. 계엄군은 광주역 뒤편 도로를 통해 실탄을 운반하던 차량을 저지하는 시민들을 향해서도 M60 기관총과 M16 소총을 발사했고, 광주역 분수대 주변에서는 “살려달라”는 비명이 터져나왔다.
계엄군의 시민들을 향한 첫 집단 발포 순간이었다. 신군부의 ‘자위권’ 보유 천명이 이뤄지지도 않았던 시점인데다, 그나마도 ‘신체의 하복부를 지향 사격하라’는 자위권 행사 지침조차 어긴 ‘학살’이었다. 당시 최세창 제3공수여단장은 집단 발포 이전 ‘윗선’과 통화를 한 뒤, “위급 상황 시 발포하라”는 명령을 하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날 밤 광주역 인근에서만 시민 7명이 계엄군 총탄과 폭행으로 숨졌다. 기존에 알려진 김만두·김재수·김재화·이북일 외에도 박세근·신동남·허봉 등 3명의 희생자가 추가로 확인됐고, 허봉은 진압봉이나 총 개머리판 등에 의한 둔력 손상으로 숨진 것으로 조사됐다. 또 희생자 대부분이 머리와 가슴, 복부 등 상반신에 총상을 입었으며 일부는 당시 제3공수여단이 사용한 M16 소총 탄환에 의해 숨졌다는 사실도 규명됐다.
뒤늦게 제2군사령부는 밤 11시 20분 발포 금지와 실탄 통제 지침을 내렸지만 이미 총성은 광주 전역에 울려 퍼진 뒤였다.
/서민경 기자 mink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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