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마지막 소원은 언젠가 프랑스에서 영화를 찍어보는 것"..佛 코망되르 수훈 답사 [전문]

칸(프랑스)=김미화 기자 2026. 5. 18.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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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뉴스 | 칸(프랑스)=김미화 기자]
박찬욱 감독 /사진=/AFPBBNews=뉴스1=스타뉴스

프랑스 정부가 주는 최고 문화예술공로훈장인 코망되르를 수훈한 박찬욱 감독이 "마지막 소원은 언젠가 프랑스에서 영화를 찍어보는 것"이라며 답사를 전했다.

박찬욱 감독은 17일 오전(현지시각)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공로훈장(Ordre des Arts et des Lettres)을 받았다. 박찬욱 감독이 받은 훈장의 등급은 코망되르(Commandeur)다.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은 프랑스 정부가 문화예술 분야에 탁월한 업적을 이룬 사람에게 수여하는 훈장. 코망되르(Commandeur), 오피시에(Officier), 슈발리에(Chevalier) 등 세 등급으로 나뉘며, 코망되르는 이 중 최고 등급에 해당한다.

이날 수훈 후 박찬욱 감독은 답사를 통해 소감을 전했다. 박 감독은 "우선 저희 부모님 생각이 난다. 지금 연로 하셔서 두 분 다 편찮으신데, 오늘 이 소식이 그분들께 좋은 선물이 되리라 확신한다. 생각해보면 그분들이 저에게 프랑스와 가깝게 느껴지도록 해주신 것 같다. 저를 카톨릭 신자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더 이상은 성당에 가지 않지만 어렸을 때 성당에 다니면서 받은 인상들이 저에게 깊은 흔적을 남겼다. 무엇보다도 여러 순교자들이 잔인하게 고문당하고 처형되는 그런 이미지들이 저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라고 말했다.

(칸=뉴스1) 이준성 특파원 =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인 박찬욱 감독이 17일 현지시간 프랑스 남부 칸 팔레 데 페스티발(Palais des Festivals) 내 대사 접견실(Salon des Ambassadeurs)에서 열린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수훈식에서 최고 등급인 ‘코망되르’를 받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티에리 프레모 칸영화제 집행위원장, 박 감독, 카트린 페가르 프랑스 문화부 장관, 이리스 크노블로흐 칸영화제 조직위원장. (사진제공 Julien Ezanno. DB 및 재판매 금지) 2026.5.17/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칸=뉴스1) 이준성 특파원

박 감독은 "그래서 사람들이 저에게 왜 이렇게 영화가 폭력적이냐고 물으면 저는 항상 '프랑스 때문이다'라고 대답을 한다. 그리고 장관께서 제임스 본드 영화나 서부영화들 그리고 영국 영화들을 말씀하셨지만, 사실 어렸을 때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영화는 프랑스 영화였다. 그게 너무 제 영화들하고 어울리지 않아서 사람들이 비웃을까봐 한번도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사실은 줄리앙 뒤비비에의 '나의 청춘 마리안느'를 어렸을 때 본 것이 저에게 정말 깊은 인상을 줬다. 그렇게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 영향을 받은 사람이 왜 이따위 영화를 만드느냐라는 말을 할까봐 여태까지 숨기고 있었습니다만 이제야 고백한다"라고 전했다.

이어 "프랑스와 저의 인연의 정점은 아마도 2004년 깐느 영화제"라며 영화 '올드보이'로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던 순간을 되짚었다. 박 감독은 "그 사건은 저한테는 정말 가장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쉽게 말해서 제 인생을 완전히 바꿔놨다고 할 수 있다. 이 자리에 심사위원장으로서 깐느에 다시 오게 될 때까지 그 인연이 계속 길게 이어졌다"라며 "제가 프랑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만큼 그리고 지금도 받고 있는 것만큼 또 저 자신이 프랑스의 젊은 감독들에게 어떤 영향을 조금이라도 주고 있는 것 같아서 서로의 이 주고받는 문화와 예술의 영감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이 현실이 저에겐 너무나 감동적으로 뿌듯하게 느껴진다"라고 감사를 표했다.

박 감독은 끝으로 "이제 저에게 남은 마지막 소원은 언젠가 프랑스에서 영화를 찍어보는 것, 프랑스 배우들과 함께 영화를 찍어보는 것. 그것만 남은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박찬욱 감독은 1992년 '달은...해가 꾸는 꿈'으로 영화감독에 데뷔했으며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박 감독은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등 복수를 담은 인간의 이야기를 그렸다. '올드보이'가 2004년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으며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이어 영화 '아가씨', '헤어질 결심' '어쩔수가 없다' 등 박찬욱 감독 특유의 정교한 연출이 담긴 영화로 사랑 받고 있다. 박 감독은 지휘자 정명훈(2011), 소프라노 조수미(2025) 등에 이어 한국인 네 번째로 코망되르를 수훈했다.
다음은 박찬욱 감독의 수훈 답사 전문

여러분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말씀하셨듯이 서울에서 만나서 이미 친구가 됐으니까 이렇게 이름으로 불러도 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카트린, 감사합니다. 제 삶이 이렇게 훌륭하신 분들을 이렇게 오랫동안 서서 듣게 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선 저희 부모님 생각이 나네요. 지금 연로 하셔서 두 분 다 편찮으신데, 오늘 이 소식이 그분들께 좋은 선물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생각해보면 그분들이 저에게 프랑스와 가깝게 느껴지도록 해주신 것 같습니다. 저를 카톨릭 신자로 만들었기 때문이죠. 지금은 더 이상은 성당에 가지 않지만 어렸을 때 성당에 다니면서 받은 인상들이 저에게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무엇보다도 여러 순교자들이 잔인하게 고문당하고 처형되는 그런 이미지들이 저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죠. 그래서 사람들이 저에게 왜 이렇게 영화가 폭력적이냐고 물으면 저는 항상 '프랑스 때문이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리고 장관께서 제임스 본드 영화나 서부영화들 그리고 영국 영화들을 말씀하셨지만, 사실 어렸을 때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영화는 프랑스 영화였습니다. 그게 너무 제 영화들하고 어울리지 않아서 사람들이 비웃을까봐 한번도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사실은 줄리앙 뒤비비에의 '나의 청춘 마리안느'를 어렸을 때 본 것이 저에게 정말 깊은 인상을 줬거든요. 그렇게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 영향을 받은 사람이 왜 이따위 영화를 만드느냐라는 말을 할까봐 여태까지 숨기고 있었습니다만 이제야 고백합니다.

그리고 대학을 갔을 때는 아무래도 학생운동이 격렬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프랑스의 68혁명에 관한 이야기들을 많이 읽었고, 배웠고요. 그리고 사르트르를 비롯한 프랑스 실존주의의 영향도 많이 받았죠. 그래서 아마 프랑스 여러분들은 한국 젊은이들이 까뮈의 이방인을 얼마나 많이 읽는지 얼마나 인기 있는 작품인지 알면 놀라실 겁니다. 그리고 대학 졸업할 무렵에서야 뒤늦게 에밀 졸라, 발작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어렸을 때 그 영화를 보고 그 낭만주의와 또 혁명의 그런 비판적인 시각 이런 것에 대한 영향을 다 종합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졸라와 발작을 읽으면서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아주 지극히 냉정한 관찰, 분석 그리고 그런 것에서 모든 것이 프랑스에서 받은 모든 영향들이 저에게는 종합되는 그런 기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프랑스와 저의 인연의 정점은 아마도 2004년 깐느 영화제이겠죠. 그 사건은 저한테는 정말 가장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고요. 쉽게 말해서 제 인생을 완전히 바꿔놨다고 할 수 있겠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티에리 (프레모)의 선택이었고, 그것이 저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심사위원장으로서 깐느에 다시 오게 될 때까지 그 인연이 계속 길게 이어졌습니다.

제가 프랑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만큼 그리고 지금도 받고 있는 것만큼 또 저 자신이 프랑스의 젊은 감독들에게 어떤 영향을 조금이라도 주고 있는 것 같아서 서로의 이 주고받는 문화와 예술의 영감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이 현실이 저에겐 너무나 감동적으로 뿌듯하게 느껴집니다.

이제 저에게 남은 마지막 소원은 언젠가 프랑스에서 영화를 찍어보는 것, 프랑스 배우들과 함께 영화를 찍어보는 것. 그것만 남은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칸(프랑스)=김미화 기자 letme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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