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시진핑의 ‘투키디데스의 함정’

윤인수 2026. 5. 17.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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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치학자 그레이엄 엘리슨은 2012년 신구 패권 세력이 전쟁의 함정에 빠졌던 역사적 사례들을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 정의했다.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남긴 투키디데스를 인용했다. 소련 해체 이후 독주했던 미국 패권 시대가 중국에 의해 흔들리기 시작한 2000년대 국제질서에 대한 진단이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대미 외교에 제대로 활용했다. 2015년 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미 대통령에게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없다”면서도 “강대국들의 오판이 함정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중국의 패권을 인정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중국은 미국의 경쟁국이 아니라는 답변이었다. 조지프 나이가 그해 출간한 ‘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에서 중국의 도전에도 미국의 패권 유지를 낙관했던 시절이었다.

시 주석이 14~16일 미중 정상회담에서 트럼프에게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꺼냈는데 2015년 분위기와 확연히 다르다. 트럼프에게 “미국과 중국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뛰어넘어 대국 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겠느냐”고 하문(下問)했다. 미국이 중국과 패권의 평화적 분점을 거부하면 투키디데스의 함정, 즉 전쟁의 함정에 빠질 것이라는 압박이다. “대만 문제를 잘못 처리하면 양국은 충돌할 것”이라며 대만을 레드라인으로 명시했다. 패권의 주도권을 거침없이 과시했다.

시 주석 면전에선 침묵했던 트럼프의 전용기 인터뷰가 가관이다. “대만 독립을 원치 않는다”며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를 중국과 협의했다”고 밝혔다. “중국은 엄청난 강대국이고 대만은 아주 작은 섬”이라며 대만은 중국에 가깝고 미국에선 멀다고도 했다. 대만 반도체 기업의 미국 이주도 권유했다. 대만을 중국 견제의 요충으로 삼았던 미국의 반세기 아시아·태평양 전략을 통째로 뒤엎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와 가까운 중립국 멜로스는 아테네의 항복요구를 거부해 소멸됐다. 믿었던 스파르타는 외면했다. 투키디데스는 약소국 멜로스의 비극을 “강자는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약자는 감내해야 할 것을 감내한다”고 설명했다. 시 주석의 2026년 ‘투키디데스의 함정’ 발언은 아시아·태평양 패권 선언에 가깝다. 트럼프는 장사치의 셈법으로 미국의 고립을 재촉한다. 멜로스의 비극이 도처에서 재현될 수 있는 세계정세다.

/윤인수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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