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저출생 시대, 무너지는 산부인과와 소아과
출산·아동 의료 인프라부터 구축해야

최근 대구와 청주 등 여러 지역에서 이른바 '분만 뺑뺑이'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갑작스러운 통증을 호소한 임산부가 119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당장 수술할 의료진이 없다는 이유로 여러 병원이 수용을 거부했고, 결국 태아가 사망하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이 같은 사건은 비단 특정 병원이나 의료진 잘못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예고됐던 필수의료 붕괴의 결과이자, 의료 시스템 전반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사회는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저출생을 겪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출산 장려금을 비롯해 돌봄과 주거 지원 정책을 확대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이러한 정책 대부분은 출산 이후의 부담을 줄이는 데 집중돼 있다. 정작 아이를 낳는 과정 자체의 안전과 직결되는 의료 인프라 문제는 상대적으로 소외돼 왔다. 아이를 낳으라고 권하는 사회가 정작 아이를 안전하게 낳고 치료할 수 있는 환경을 충분히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모순이다.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를 중심으로 한 필수의료 분야는 이미 오래전부터 '기피과'로 불려 왔다. 높은 업무 강도와 낮은 의료 수가, 반복되는 당직과 응급 대응 부담, 의료 분쟁 위험까지 겹치면서 전공의 지원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그 결과 지역 병원에서는 분만실과 소아 진료과 자체가 사라지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지방은 물론 수도권에서도 분만 가능한 병원을 찾기 어려운 사례가 늘고 있으며, 응급 상황에서 산모가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일도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아동 의료 인프라 역시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부족 탓에 야간 진료나 응급 진료를 제공하는 병원이 줄어들고 있으며, 아이가 갑자기 아파도 가까운 곳에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부모들이 늦은 밤 수 시간씩 이동하며 진료 가능한 병원을 찾아다니는 현실은 이미 일상이 됐다.
출생률을 높이기 위한 정책은 단순히 돈을 더 주는 것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으며, '안전하게 낳고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전제되어야 한다. 산모가 안심하고 출산할 수 있고, 아이가 아플 때 즉시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어떤 장려 정책도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정부도 최근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응에 나섰다. 중증·권역·지역 모자의료센터 운영 현황을 점검하고, 고위험 산모와 신생아 진료 체계를 재정비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오는 6월부터는 산모와 신생아를 전원·이송할 병원의 자원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신속하게 병원을 연결하는 정보 시스템도 운영할 계획이라고 한다. 늦었지만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단기적인 처방이 아니라 구조적 전환이다. 필수의료를 국가가 책임지는 체계로 전환하고, 특히 출산과 아동 의료를 최우선 정책 영역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 필수 의료 분야에 대한 파격적인 지원과 의료진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
출생률을 높이기 위한 정책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그 출발점은 경제적 지원이 아니라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인프라 구축이어야 한다. 병원을 찾지 못해 산모와 아이가 위험에 내몰리는 사회는 결코 정상적인 사회라고 할 수 없다. 이번 사건이 단순한 일회성 사고로 잊히지 않고, 무너져가는 의료 시스템을 바로 세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김혜정(젠더N정책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