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죽을 맛이라더니…"생수값 10만원 못 내서 야반도주"
10곳 중 1곳은 신용등급 최하
수도권 지역 공장 경매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국내 제조업 경쟁력이 떨어지는 가운데 환율, 물가, 유가 부담이 동시다발로 가중되자 공장 문을 닫는 기업이 증가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17일 경매정보업체 디지털태인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서울, 인천, 경기지역 공장 경매는 1526건으로 지난해 1분기(622건) 대비 2.5배로 늘었다.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4년 이후 최다 규모다. 업계 관계자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이후 가장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공장 경매는 2024년 12월 비상계엄 사태 후 분기별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2024년 1846건이던 경매는 지난해 3866건으로 1년 만에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뿌리 기업’ 등 중소 제조업체가 몰려 있는 반월·시화·남동 국가산업단지에서 폐업이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기업 신용등급도 빠르게 추락하고 있다. 신용보증기금의 기업분석시스템(BASA)에 따르면 지난해 ‘주의’ 등급(E9, E10)을 받은 기업은 4만1254개로 전체(45만7503개)의 9%를 차지했다. 신보가 처음 이 시스템을 도입한 2022년(6.9%)보다 2.1%포인트가량 증가했다. 같은 기간 최하위 등급(E10) 중소기업 비율은 1.4%에서 3.4%로 약 2.4배로 늘었다. 유병준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좀비기업을 정리하면서 살릴 수 있는 기업의 실질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올 1분기 휴·폐업 248곳 달해…"코로나 때보다 더 심각하다"
中 저가공습에 뿌리기업 위태…최저임금·주52시간제도 족쇄
경기 김포 통진읍에서 40년간 표면처리 공장을 운영하던 P씨는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지난해 공장 문을 닫았다. 생계를 위해 거래처 공장장으로 취업했지만 올 들어 이 회사도 경영이 어려워졌다. P씨는 “다섯 달째 월급을 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다”며 “평생 이 일만 해온 터라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렵다”고 털어놨다.

◇“증시와 달리 실물경기 사상 최악”
은행 빚을 갚지 못해 경매로 넘어가거나 폐업 절차를 밟는 공장이 잇따르고 있다. 수도권 지역 공장도 문을 닫고 있다. 제조업의 근간이 되는 금형, 열처리, 표면처리 등 뿌리 기업도 고사 위기다. 내수 불황, 고물가, 고환율, 차이나 쇼크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누적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17일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국가산업단지에서 휴·폐업한 기업은 1090곳으로 관련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17년 이후 최대 규모다. 올해 1분기 휴·폐업한 기업도 248곳에 달했다. 수도권 지역의 공장 경매는 비상계엄 이후인 지난해부터 급증했다. 이영진 이월에셋 대표는 “최근 경매로 넘어가는 공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21~2022년 코로나19 때보다 훨씬 많다”며 “증시와 다르게 실물경기는 사상 최악”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경기 시화국가산단에선 기업인 체육대회 행사가 개최 2주 전 전격 취소됐다. 연례행사인데도 참석률이 저조했다는 전언이다. 산단에 있는 기계설비 제조업체 대표 K씨는 “요즘 시화 일대 중소 제조업체 절반 이상은 은행 이자 내기도 벅찬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화·안산 일대 공장에 생수를 공급하는 J대리점 대표도 “2~3년 전만 해도 한 달에 생수 2000통을 납품했는데 지금은 절반으로 줄었다”며 “물값 10만원도 내지 못하고 야반도주하는 공장도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인천 남동산단에서 가전제품에 쓰이는 플라스틱 부품을 생산하는 한 사출 업체는 열 달째 월세를 내지 못하고 있다. 보증금(4500만원)을 돌려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업체 대표는 “비상계엄 이후 정부 조달사업이 거의 중단돼 직원을 다 내보내고 1년 이상 간신히 버텼는데 다시 이란 전쟁이 일어났다”며 “고부가가치 합성수지(ABS) 등 플라스틱 원료를 공급받지 못해 공장을 제대로 못 돌리고 있다”고 했다. 인근의 설비 부품 제조회사 대표는 “한 통에 8만원 하던 절삭유 가격이 13만원까지 올랐는데, 그마저도 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한 중견기업은 협력사 관리에 부쩍 신경 쓰고 있다. 이 회사 대표는 “납기를 준수하지 못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경영 상황이 좋지 않은 거래처의 물량을 줄이는 등 공급망을 정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뿌리기업 직격탄 맞아
중소 제조업체가 고전하는 근본적 원인은 중국 업체와의 경쟁이다. 신용문 금형조합 이사장은 “중국산 금형은 값이 30% 이상 낮다”며 “중국에서 금형을 조달하는 국내 대기업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경기 부천의 한 금형업체 대표는 “국내 업체가 중국에 금형을 발주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일본에서 수십 년간 힘들게 배워온 기술이 고스란히 유출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남동산단의 표면처리 기업 D사 대표는 “중국에서 수입하는 부품이 늘면서 제조업의 최종 단계인 표면처리 쪽으로 내려오는 물량이 급감하고 있다”며 “하도 일감이 없어 기름값이 비싼데도 충청권까지 내려가 읍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친노동 정책도 국내 제조업 경쟁력을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라정주 파이터치연구원 원장은 “최저임금이 지속적으로 오르고 주 52시간 근로제가 의무화된 후 중소·중견 제조업체의 경쟁력이 빠른 속도로 낮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구 의원은 “뿌리기업이 무너지면 제조업의 체질이 약해져 반도체, 조선, 방위산업 경쟁력도 떨어진다”며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했다.
이정선 중기선임기자/박시온 기자 leewa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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