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의 키워드, 재분배 [세상읽기]

한겨레 2026. 5. 17.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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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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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준 |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대학 선배와 오랜만에 저녁을 함께했다. 지난 30여년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대화가 즐거웠다. 졸업 이후 아이티(IT) 업계에서 굵직한 역할을 해오고 있는 그는 대화 내내 인공지능(AI) 이야기와 함께 ‘청년들 정말 큰일 났다’는 말을 거듭했다. 각자 둘 셋을 키우는 아빠들로서 걱정을 나누기도 했다.

정책을 연구하는 학자이다 보니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어떤 정책이 필요할지, 얼마나 큰 예산이 들어갈지 고민하게 된다. 문제는 작금의 대전환기에 대규모 예산이 필요한 영역이 하나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노인들은 많아지고 있지만, 삶은 불안정하고 돌봄을 자녀로부터 받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미래 세대를 침몰시킬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도 한참 부족하다.

그뿐이 아니다. 변화하는 산업구조에 대응하기 위해, 불안정한 국제정세 속에서 국민들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 낡아가는 유무형의 공공 인프라가 비극적 사건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국가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이 모든 노력 역시 공짜일 수 없다.

미국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의 2012년 연설 일부를 각색해 소개하고자 한다. “이 나라에서 혼자 힘으로 부를 이룬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공장 하나를 지었다고 칩시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건설한 도로를 통해 시장으로 상품을 운반하고, 세금으로 가르친 직원들을 고용하겠죠. 여러분의 공장이 안전한 것은 세금으로 유지하는 경찰과 소방관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공장을 지었고 큰 성공을 거두었다면, 정말 축하할 일이지요. 하지만 사회적 계약이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평화롭고 번영한 시기를 살아가지만, 동시에 전환의 시기를 잘 헤쳐 나가야 하는 때이다. 전환에는 비용이 따라오게 된다. 시대가 이럴진대, 증세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이를 ‘국민 주머니 털기’나 ‘세금 중독’ 같은 선정적 단어를 활용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이들이 있다.

재분배는 나의 성공이 나로만 인함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우리의 노력과 성공 속에서 가능하게 되었음을 인정하는 행위이다. 나의 성공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기반을 만드는 노력이기도 하다. 지난 10년 동안 누군가의 부동산이 10억이 올랐다면, 혹은 지난 1년의 주식투자 수익이 상당했다면, 그중 얼마만큼이 자신의 노력 덕분일까?

코넬대학교 경영대학원 석좌교수인 로버트 프랭크는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라는 책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오직 재능과 노력을 강조함으로써 자신이 성취한 부의 정당성을 강화하려 한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국가 지출 증가를 보며 국가 재정을 걱정한다. 하지만,부를 사회와 공유하는 것은 반대하는 경향이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정부 부채가 가장 높은 일본과 그 가까이에 있는 미국을 보자. 국가가 재정을 필요로 하는 곳은 많은데, 모두를 위한 증세는 늘 공격의 대상이어서 반대하기 때문에 부채가 증가하는 것이다.

물론 국가만이 재분배의 통로가 될 수는 없다. 국가는 스스로 강건성을 유지하되, 변화하는 시대에 따라 유연하게 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스스로 효율화를 하려는 노력을 멈출 수는 없다. 하지만, 국가는 유연하고 창의적인 대응이 약하기 때문에 민간의 역할이 중요하다. 민간을 통한 나눔과 재분배도 중요한 이유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기부에는 긍정적이지만 세금은 싫어한다. 워런 버핏과 함께 빌 게이츠가 유산의 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자는 공개 자선 캠페인을 2010년에 시작했다. 이 나눔 운동에 많은 이들이 박수를 보냈다. 힘을 받은 빌 게이츠는 독일에 가서 독일 백만장자들에게 캠페인에 동참하길 호소했다. 하지만 독일의 백만장자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를 왜 국가가 아닌 개인이 결정하는가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그 사회에서 어떤 곳에 자원을 배분하는 것이 가장 적합한지를 고민하고 실행하는 데 있다.

5월을 맞아 연로해지시는 부모님들과 불확실한 미래로 들어가는 아이들을 다시 보게 된다. 각자의 노력이나 자녀이자 부모인 나의 노력만으로는 미래가 불투명하다. 국가의 견고한 대응이 필요한 이유이다. 국가는 기꺼이 재분배에 동참하고, 감시하며, 견제하는 건강한 시민이 없이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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