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시장은 응징의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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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현 정부의 금융·부동산 정책과 새롭게 등장한 '국민배당' 논의를 관통하는 공통된 방향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금융시장에서는 "왜 가난한 사람이 더 높은 금리를 부담해야 하느냐"는 문제의식이 강조되고, 부동산시장에서는 "불로소득 구조를 바꾸겠다"는 선언이 반복된다.
현 정부는 금융시장에서 "가장 절박한 사람이 가장 높은 금리를 부담하는 구조는 불공정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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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작용과 피해는 결국 서민 몫
유경준 前 통계청장

최근 현 정부의 금융·부동산 정책과 새롭게 등장한 ‘국민배당’ 논의를 관통하는 공통된 방향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금융시장에서는 “왜 가난한 사람이 더 높은 금리를 부담해야 하느냐”는 문제의식이 강조되고, 부동산시장에서는 “불로소득 구조를 바꾸겠다”는 선언이 반복된다. 여기에 청와대 정책실장이 국민배당을 언급하며 개별 기업 초과 이윤의 사회 환수 가능성까지 거론해 논란을 키웠다. 이후 대통령이 직접 나서 “초과 이윤이 아니라 초과 세수”라고 못박았지만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국민배당은 기본소득·기본사회라는 현 정부 출발 전부터의 논쟁을 재소환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접근이 시장의 가격 기능과 위험 부담이라는 경제 기본 원리를 정치적·도덕적 판단으로 대체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 정부는 금융시장에서 “가장 절박한 사람이 가장 높은 금리를 부담하는 구조는 불공정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금리는 본질적으로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위험의 가격이다. 상환 가능성이 높은 차주에게 낮은 금리가 적용되고 위험이 큰 차주에게 높은 금리가 붙는 것은 금융의 기본 원리다. 만약 현재의 신용평가 체계가 청년, 자영업자, 플랫폼 노동자의 실제 상환 능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면 해결책은 위험을 무시한 금리 통제가 아니라 위험을 더 정교하게 평가하는 시스템 개선이어야 한다. 즉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은행을 압박해 금리를 누르는 것이 아니라, 정책보증과 이자 지원을 투명하게 설계하고 그 비용을 재정으로 책임지는 일이다.
부동산 정책도 다르지 않다. 정부는 양도소득세 중과 재개와 장기보유특별공제 축소, 향후 보유세 강화 등을 통해 기존 주택을 시장에 나오게 만들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공급 확대라기보다 거래 비용 인상을 의미한다. 특히 서울처럼 구조적 공급 부족이 지속되는 시장에서는 거래 비용을 높인다고 주택이 새로 생겨나지 않는다. 신규 공급이 없는 한 오히려 “세금을 감수하고 팔기보다 버티겠다”는 심리만 강화될 것이다.
국민배당 논의 역시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기업의 이윤은 위험을 감수한 투자와 혁신의 결과다. 그런데 국가가 사적 이윤까지 어떤 방법으로든지 정치적 환수 대상으로 보기 시작한다면 기업의 투자 예측 가능성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금융과 부동산, 기업 정책은 서로 다른 영역처럼 보이지만 원리는 같다. 금융에서는 금리가 위험을 반영하고, 부동산에서는 세후 수익과 거래비용이 공급과 거래를 결정하며, 기업에서는 투자 수익 기대가 혁신과 고용을 만든다. 그런데 정부는 세 영역 모두에서 가격과 위험의 기능보다 정치적 가치 판단을 앞세우고 있다. “고금리는 악” “다주택은 죄” “초과이익은 환수 대상”이라는 프레임만으로 시장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는 순간 정책은 현실과 충돌한다.
시장은 구호로 움직이지 않는다. 가격 기능을 억누르면 시장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왜곡으로 되돌아온다. 금융에서는 대출 위축과 정책금융 의존으로, 부동산에서는 매물 잠김과 전세 불안으로, 기업에서는 투자 감소와 성장 둔화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 부담은 결국 정부가 보호하겠다고 말하는 청년과 서민에게 가장 먼저 돌아간다. 정부의 역할은 시장을 응징하거나 굴복시키는 데 있지 않다.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고 경쟁의 질서를 바로 세우는 데 있다. 정의로운 구호는 박수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구호가 아니라 가격과 책임 그리고 예측 가능성이라는 냉정한 시스템이다. 정부가 그 원리를 거스르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시장이 아니라 정책에 대한 신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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