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에 도착한 좀비 바이러스 … 연상호, 세계를 감염시키다
'집단 지능'으로 스스로 진화하고
인간 행동 모방하는 좀비들 다뤄
전지현·구교환·김신록 등 출연

영화팬들이 좀비에 왜 그토록 오랫동안 열광했는지를 생각해보면, 좀비는 이전과는 차별화된 괴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영화에서 악인 내지 빌런은 대개 외부에서 등장해 내부로 진입한 뒤 일상의 풍경을 망쳐버리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좀비는 외부로부터 출현하는 게 아니다. 감염되는 순간 나와 우리 스스로가 '타자화'되는 특이한 괴물이 좀비다.
하지만 이제 좀비물은 어딘지 모르게 진부해 보인다. '물리면 나도 괴물이 된다'는 산식이 단순한 데다, 제목은 달라도 시대와 공간만 바꿨을 뿐 동어반복적인 영화가 적지 않아서였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 앞에 서면 '또 좀비물인가'라며 예단할 수 있겠다. 그러나 심드렁하게 객석에 앉았다간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순간 '방심하다가 감독에게 온몸이 물어뜯긴'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좀비 영화도 그는 이렇게 만들 수 있구나' 혹은 '좀비 영화이지만 좀비 영화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불가피해져서다.

올해 제79회 칸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진출한 연상호 감독의 신작 '군체'가 베일을 벗었다. 16일(현지시간) 새벽 1시부터 시작된 '군체'의 월드 프리미어(세계 첫 상영)를 감독, 배우, 2300여 명의 관객들과 함께 칸영화제 주행사장 팔레 드 페스티벌(축제의 궁전) 뤼미에르 극장에서 살펴봤다.
생물학자 서영철(구교환)은 자신을 배반한 회사 상사에게 앙갚음하기 위해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이 바이러스가 같은 건물의 모두를 감염시킨다. 건물은 봉쇄되고, 물리지 않은 사람들은 고립된다. 정부는 외부 확산을 막기 위해 건물 내부에 구조대를 투입할 계획이 없다. 권세정(전지현), 최현석(지창욱) 등 내부 생존자들은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물리면 감염되고, 감염된 자가 다시 문다'는 점에선 '군체'의 좀비도 이전 좀비와 같다. 그런데 이번 연상호의 좀비들은 '감각과 지능'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좀비다. 악인이 되기 전의 서영철은 '유기물 칩을 통한 정보 공유 기술'을 개발해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언어나 데이터로 표현하지 않고도 함께 공유하는 '집단 지성'의 세상을 꿈꾼 바 있다. 그러다 보니 그가 만들어낸 좀비들도 '개체'가 아니라 이 영화의 제목처럼 '군체'로 움직인다. 예를 들어 이런 것. 건물 전체에 퍼진 좀비 가운데 한 명이 뭔가를 보거나 들으면 이 좀비가 습득한 시청각 정보가 다른 좀비에게 동시에 공유된다. 또 한 좀비가 가진 지적 능력 역시 집단화돼 다른 좀비에게 실시간으로 이식된다. 심지어 좀비들은 인간의 행동을 모방하고 스스로 판단을 내린다. 특수부대 요원이 좀비가 되면 좀비 전원이 특수부대가 되는 식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그저 죽자 살자 달려들어 사람의 목부터 물어뜯는 기존 좀비 영화 속 식상한 좀비의 지적 능력을 초월하는 신(新) 개체들, 즉 군체다.
'군체'는 이야기의 힘이 세고 장르적 재미도 넘쳐난다. 그러나 그것만이 이 영화가 말하려 했던 바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는 인공지능(AI) 시대의 공포를 다룬 우화로도 읽히는 지점이 있다. 인간과 기계의 관계는 어느덧 기계가 인간의 감각과 지능을 '먹어 치우는' 지경에 이르렀다. 군체로서 기능하는 AI의 집단 지능은 개체로서의 인간을 넘어서며, 인간이 집단 지능에 굴복하는 순간 인간은 인간이 아닌, 비(非)인간이 된다. 인간의 형체를 한 섬뜩한 생명체가 인간의 감각과 지능을 빨아들이고 인간보다 더 효율적으로 행동할 때의 미친 공포가 이 영화의 지층 속에 내장돼 있다. 영화관 안이 아니라 영화관 밖의 '나'까지도 기계에 침투되고 복제당할 수 있다는 현실적이고 실재적인 공포심 말이다.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난 연상호 감독은 "AI가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를 생각하다가 '보편적 사고의 총합'이란 생각에 이르렀다. AI도 그렇고 SNS도 그렇고 우리 시대에선 빠른 교류가 가능해지면서 보편적 사고가 강해졌고, 또 그러다 보니 소수의견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졌다"며 "이걸 좀비와 결합해 영화로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끝에 '군체'를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칸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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