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발효의 스포츠 골프

방민준 2026. 5. 17. 15:25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칼럼과 관련 없는 참고 이미지입니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사진을 무단으로 사용하지 마십시오.)

 



 



[골프한국] 발효음식의 맛은 깊다. 단순히 짜고, 시고, 고소한 맛의 합이 아니다. 시간과 기다림, 미생물의 보이지 않는 활동, 그리고 인간의 개입이 적절히 어우러져야만 비로소 발효는 '맛'이 된다.



한국 음식 문화에서 발효는 선택이 아니라 전제다. 된장과 간장, 젓갈이 없으면 밥상은 성립되지 않는다. 홍어의 독특한 향 역시 부패가 아닌 발효의 결과다.



 



이런 발효의 지혜는 한국에만 있지 않다.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포도주와 치즈 역시 기다림의 산물이다. 베트남의 느억맘, 스칸디나비아의 정어리 액젓도 음식의 전면에 나서지는 않지만 맛의 뼈대를 만든다. 좋은 발효음식은 주인공이기보다는 기반이다. 눈에 띄지 않지만 없으면 전체가 무너진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골프야말로 발효의 시간을 거쳐 완성되는 스포츠가 아닐까.



골프는 유난히 '즉각적인 보상'이 없는 운동이다. 스윙 하나를 바꾼다고 바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연습장에서 배운 동작은 필드에 나가면 사라지고, 연습장에서 잘 맞던 공은 이상하게도 스코어로 연결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이 지점에서 좌절한다. 하지만 어쩌면 골프는 원래 그런 운동인지도 모른다. 골프는 숙성이 필요하다. 정확히 말하면, 발효가 필요한 스포츠다. 발효는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치한다고 음식이 발효되지는 않는다. 좋은 미생물이 필요하고, 온도와 습도, 염도와 환경이 맞아야 한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연습은 미생물이고, 경험은 온도다. 실패는 염도처럼 쓰지만, 그것이 있어야 맛이 산다. 라운드에서의 긴장, 스코어카드의 숫자, 어이없는 미스샷까지 모두 발효의 재료가 된다.



 



초보자의 골프는 날 것 상태의 재료에 가깝다. 신선하지만 거칠고, 날 맛이 강하다. 힘이 넘치고 욕심도 많다. 반면 시간이 지난 골퍼의 스윙은 달라진다. 겉으로 보기엔 화려하지 않아도 공은 멀리 가고, 큰 미스가 없다. 이 차이는 기술보다 '발효의 깊이'에서 나온다. 수많은 라운드에서 몸이 기억한 감각, 실패를 통해 자연스럽게 걸러진 욕심, 스코어보다 리듬을 중시하게 된 태도. 이 모든 것이 골프를 숙성시킨다.



 



흥미로운 점은 발효가 언제나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된장이 곰팡이를 잘못 만나면 상하고, 와인은 관리가 부족하면 식초가 된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잘못된 연습은 나쁜 발효를 부른다. 생각 없이 공만 많이 치는 연습, 스윙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강박, 남과 비교하는 태도는 골프를 시큼하게 만든다.



 



발효에는 관리가 필요하다. 때로는 뚜껑을 열어 공기를 넣어주고, 때로는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골프에서 가장 어려운 덕목은 기술이 아니라 인내다. 빨리 늘고 싶다는 마음을 조금 덜어내고, 지금의 서툼이 언젠가 맛이 될 거라는 믿음을 갖는 것, 오늘의 더블보기가 내일의 안정된 보기로, 다시 파로 이어지는 과정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골프의 발효다.



 



잘 발효된 골프는 묘하게 편안하다. 무리하지 않고, 억지로 만들지 않는다. 그날의 컨디션을 인정하고, 코스와 대화하듯 플레이한다. 스윙은 몸이 하고, 머리는 조용하다. 마치 잘 익은 된장이 국물에 자연스럽게 풀리듯 골프는 생활의 일부가 된다.



 



발효음식이 그렇듯 골프도 한 번 맛을 들이면 쉽게 끊을 수 없다. 처음에는 낯설고 어렵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깊이를 더해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골프는 이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골프는 결국 발효의 스포츠다. 스윙이 발효되고, 경험이 발효되고, 사람 자체가 발효된다. 그 시간을 견딘 사람만이 골프의 진짜 맛을 안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Copyright © 골프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