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좋은가, 대학의 ‘AI 전환’ 비전과 전략?

중세 볼로냐와 파리대학 이후 천 년 가까이 대학은 진리 탐구의 제도적 본산이었다. 근대 국민국가와 산업사회가 형성된 뒤에는 전문 지식의 전달과 연구, 직업 세계로의 진입을 담당하는 핵심 기관이 됐다. 그런데 생성형 AI가 이 오래된 구조를 뒤흔들고 있다. AI는 요약하고 번역하며 논증하고 글을 쓰며 데이터를 분석하고 코딩도 한다. 대학이 오랫동안 가르쳐 온 지식 활동의 많은 부분이 AI와 경쟁하거나 AI에 의존하는 처지가 됐다. 이에 국내외 주요 대학들은 앞다투어 AI 전환 이른바 AX 비전과 전략을 내놓고 있다. 이제 대학은 AI의 충격파를 넘어 다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할 수 있을 것인가?
발표된 비전과 전략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헛헛하다. 대부분의 AX 계획이 당장의 AI 물결에 적응하는 수준에 그칠 뿐 10년 20년 후 대학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AI를 교육·연구·행정에 활용하고 학생들의 AI 리터러시를 제고하며 유료 계정을 보급한다는 식의 당연하면서도 뭔가 고구마 먹는 듯 답답한 낮은 단계의 대응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기하급수적 곡선을 그리며 발전하는 AI의 특성 그리고 시점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상당수 전문가들이 전망하는 범용AI(AGI)의 5~10년 내외 도래 그 뒤를 잇는 초지능(ASI) 가능성이라는 AI 시대의 아득한 지평 위에서 대학의 본질에 대한 깊은 고민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AI 시대를 맞아 인간 능력의 지향점으로 가장 자주 호명되는 화두는 답이 아니라 문제를 찾는 질문력, 창의력, 비판적 사고력 등이다. 그러나 이 덕목들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공자가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고 한 것처럼 배움과 사유의 결합은 오래전부터 교육의 본령이었다. 다만 그 이념적 지향이 강의실에서 구체적 결실로 제대로 발현되지 못했을 따름이다. 발등의 불이 떨어진 지금 그것을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가?
나의 결론은 이렇다. 대학 교육의 본질은 '인간 관계의 마찰'에 있어야 한다고. 대학은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라기보다 인간적 마찰을 통한 경험의 장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인간은 홀로는 자라지 못한다. 타인과의 마찰이야말로 질문력·창의력·비판적 사고 및 공감과 협업의 토양이며 AI가 오래도록 넘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다. 이는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 고유의 활동으로 꼽은 '행위(action)' 즉 타자와 더불어 새로운 것을 시작하고 공적 공간에 자기를 드러내는 능력의 바탕이기도 하다.
대학은 이러한 마찰을 배양하는 데 둘도 없는 공간이다. 일정한 선발 과정을 거친 동질의 역량 위에 서로 다른 경험과 관점을 지닌 학우들이 같이 밥을 먹고 토론하고 과제를 다투며 동아리와 학생자치 활동에 몸을 부대끼는 4년의 시간. 학생들은 갈등하고 타협하며 경쟁하고 협력하며 패배의 쓴맛과 성취의 단맛을 함께 들이마시며 성숙한 인간으로서의 결을 빚어간다. 동아리·자치활동·기숙사의 일상으로 이뤄지는 비교과 활동은 강의실의 교과 못지않게 인간 형성의 중심에 자리 잡아야 한다. 옥스브리지의 모델을 미국에 이식한 예일대학교가 14개 레지덴셜 칼리지의 교육 철학을 '일상의 결 자체가 교육의 본질'이라는 한 마디로 압축해 둔 것은 그 가치에 대한 증언이다.
사실 이 주장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1810년 베를린대학이 설립될 때 훔볼트가 구상한 대학은 단순한 지식 전달 기관이 아니었다. 대학은 완성된 지식을 주입하는 곳이 아니라 교수와 학생이 함께 진리를 탐구하고 그 과정에서 자유로운 인격을 형성하는 공간이었다. 이른바 Bildung 곧 자유로운 인간 형성의 이념이며 대학은 동등한 자들의 학습 공동체이자 만남의 장소가 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레지덴셜 칼리지 모델로의 대학 개혁은 훔볼트 이념의 복원이며 더 멀리는 고대 그리스의 아카데미아와 리케이온이 보여준 공동 산책 속 대화와 탐구의 정신을 오늘의 조건에서 다시 묻는 일이기도 하다. 레지덴셜 칼리지를 한국 대학에 어떻게 제대로 구현할 것인가는 쉽지 않은 과제인데 이는 다음 칼럼에서 다루기로 한다.
얼마 전 누군가 AI에게 "만약 너희가 인간이 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여러 모델이 약속이라도 한 듯 감각과 경험의 소중함을 꼽더라는 이야기가 인터넷에 한동안 떠돌았다. 가슴 한 켠이 찡했다. 먼 훗날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의 앤드류처럼 감각기관을 갖춘 AI가 인간에 가까워질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날까지 어쩌면 그 이후에도 신체와 감각을 매개로 한 인간 관계의 결 그리고 그 결 위에서 자기를 형성해 가는 과정만큼은 오래도록 오직 인간만의 것으로 남을 것이다. 나는 이제 새 학기의 학생들에게 더 이상 독학 운운하지 않고 AI 시대에 대학은 그 어디에도 없는 '함께하는 경험의 시공간'이 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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