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우는 매일 퇴근길에 ‘리셋 버튼’을 누른다

안승호 기자 2026. 5. 17.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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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이 되며 ‘달라진 한가지’
“과거에 없던 리셋의 힘 생겨”
기억하는 것 만큼 잊는 것 중요
전날 경기 잔상 빨리 지워내야
삼성 최형우. 삼성 라이온즈 제공

삼성 최형우가 고민하듯 시간을 두고 내놓은 대답은 기술적인 대목이 아니었다. 최형우는 ‘리셋’이라는 표현을 썼다. “내가 다른 한가지가 있다면, 또 나 스스로 달라진 하나가 있다면 ‘리셋’을 잘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1983년 12월생. 40대 초반의 나이를 지나 중반에 가까워지고 있는 최형우가 올시즌에도 중심타자로 처지지 않는 자기 역할을 충분히 할 것이라는 전망은 꽤 있었지만, 리그 톱을 다투는 타격지표를 써나갈 것으로 내다본 시선은 거의 없었다.

최형우는 지난 16일 대구 KIA전에서 개막 이후 처음으로 선발 라인업에서 빠지며 스태미너 안배의 시간을 가진 가운데 시즌 타율 0.350에 OPS 1.032를 찍고 있다. 부문별 타격 성과가 종합적으로 녹아 있는 OPS로는 LG 외인타자 오스틴 딘(1.037)에 이어 반걸음 차 2위로 전체 선두 다툼을 하고 있다.

야구는 기억의 경기다. 기억은 기록으로 재구성된다. 그래서 기억력이 좋아야 하는 스포츠이기도 하다. 그러나 때로는 똑바로 잘 기억하는 것보다 잘 잊는 것도 필요할 때가 있다. 매일 경기를 하는 일상과 루틴의 게임이기 때문에 부정적 여파가 이어질 만한 것들은 마음에서 빠르게 지워버리는 게 좋다.

최형우 역시 나이 20대 혈기왕성하던 시절에는 무언가를 잊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득점 찬스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봤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경기를 놓쳤을 때는 다음날 새벽까지도 그 장면이 어른거려 잠을 못 이룬 적이 많다. 그때는 무엇을 해도 분한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삼성 최형우가 더그아웃에서 후배 원태인과 밝게 웃으며 대화하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제공

그런데 그 뒤로 언제쯤, 베테랑 소리를 들으면서부터는 신체적 반응 속도는 조금씩 떨어졌을지 몰라도 나쁜 잔상을 씻어내는 ‘리셋의 힘’이 세지기 시작했다. 최형우는 초베테랑 선수가 된 지금은 경기를 마치고 퇴근길에 나쁜 기억을 털어내 버리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면도기로 밤새 자란 수염을 잘라내고 출근길에 오르는 것이 일상이듯 경기를 마치고 집이든 원정 숙소든 돌아가는 길에는 가슴에 담아둘 필요 없는 것들을 지워 버린다. 그렇게 하려고 애써서 그렇게 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는 시점부터는 그렇게 하고 있는 본인을 발견했다.

최형우는 “밖에서 어떻게 보실지 모르지만 난 타석마다 내 나름대로 조금씩 변화를 주고 있다”고도 말했다. 투수도 달라지고, 상황도 달라지는 매타석 시야를 넓혀 그에 맞는 새로운 방법으로 접근을 달리 할 수 있는 것은 매일 야구장에 새로운 마음으로 나서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최형우가 지금 가진 가장 큰 힘은 어쩌면 매일 흘러가고 있는 강물처럼 지나간 것을 지나간 대로 두는 ‘현명함’으로도 보인다. 최형우는 퇴근길이면 슬며시 ‘리셋 버튼’을 누른다.

안승호 기자 si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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