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물의 민족이라도 이건 못 먹지 [임보 일기]

백수혜 2026. 5. 17.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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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에서 반려로, 반려 다음 우리는 함께 사는 존재를 무어라 부르게 될까요. 우리는 모두 ‘임시적’ 존재입니다. 나 아닌 존재를, 존재가 존재를 보듬는 순간들을 모았습니다.

“아직 한라산이세요? 괜찮으세요?” SNS에 한라산에 다녀온 후기를 올린 지 얼마 안 되어 지인이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왔다. “네? 괜찮아요. 어쩐 일이세요?” 알고 보니 독을 가진 식물인 천남성을 만지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고 놀라서 전화했다고 했다. 역시 식물에 해박한 그녀가 사려 깊은 연락을 해주었다. 천남성은 흔히 키우는 식물이 아니라서 독이 있다는 사실이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나도 처음엔 몰랐다.

처음으로 알로카시아를 구조하던 순간이 아직 생생히 기억난다. 뿌리째 뽑혀 시멘트 바닥에서 뒹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데려왔지만, 당시에는 이름조차 몰랐다. 여차저차 검색해서 천남성과 식물인 알로카시아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독이 있다는 내용도 보았지만 먹지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야말로 무식해서 용감했다. 식물을 작게 나누려고 줄기를 칼로 자르면서 나온 알로카시아의 독한 식물액이 손바닥에 묻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손바닥 전체에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 몰려왔다. 부랴부랴 해결법을 찾아보니 ‘시간’뿐이란다. 허탈한 마음에 참고 기다리니 어느새 통증은 사라졌다. 어떤 식물이든 일단 맨손으로 만지는 것을 지양하고 조심해야 했는데 어리석었다. 그 덕분에 무시무시한 천남성과 식물의 독을 경험했다. 이를 통해 많은 천남성과 식물의 즙액이 살에 닿으면 자극을 일으킬 수 있다는 걸 배웠지만, 정작 한국에서 자라는 천남성의 생김새는 몰랐다. 사약의 재료로 쓰인다고 얼핏 들었을 뿐, 이름만 알았지 꽃의 모습은 처음 봤기에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한라산에서 만난 천남성에는 독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백수혜 제공

한라산 자락에서 만난 천남성은 같은 과인 알로카시아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꽃 모양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 매우 상이한데, 이를 육수화서라고 부른다. 물주머니처럼 늘어진 포엽 안쪽에 진짜 꽃이 모여 있는 꽃차례인 육수가 봉의 형태로 있다. 그리고 포엽의 윗부분이 살짝 이 육수를 덮고 있는 것이 식충식물 같기도 하고 귀엽다. 지금 생각해보니 포엽의 형태는 달랐지만 그 중앙에 있는 육수만은 우리 집 알로카시아의 꽃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천남성과 식물 중 우리가 흔히 아는 것을 하나 꼽자면 토란이다. 다양한 요리에 들어가는 토란 역시 천남성과에 속하는데, 여기에는 독이 없을까? 알고 보니 토란을 다듬을 때는 반드시 장갑을 끼고, 익혀서 요리하기 때문에 괜찮다고 한다. 토란이란 재료를 직접 다듬어 먹어본 적이 없으니 이렇게 지식이 부족하다. 토란은 오랫동안 식용으로 개량되어온 식물이기에 천남성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봄이 되니 천지에 먹을거리가 지천이다. 도시의 식물은 오염된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함부로 식용하지 않는 편이지만, 청정한 환경에서 자란 식물을 보면 아름다움도 잠시, ‘혹시 먹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이 앞선다. 어떤 독성을 가진 식물이든 삶고 데쳐서 독성을 빼고 먹거나, 그마저도 어려우면 갓 자란 새순만을 모아 요리해서 먹는 ‘나물의 민족’인 한국인이라 그런가 싶다. ‘우리는 못 먹는 식물이 없다’며 자신했는데, 이번에 또 호되게 배웠다.

어린 시절 산과 들을 누비기보다 학원과 학원 사이를 맴돌던 내게 식물은 식탁에서 더 자주 봐온 것들이다. 돌나물도 명이나물도, 시금치와 셀러리도, 밥상의 반찬으로만 생각했지, 살아서 자라는 모습은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돌나물과 명이나물이 그리 예쁜 꽃을 피우는 줄도 몰랐다. 잘 안다고 생각하는 식물이라도 독초일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을 자꾸 까먹는다. 이제부터라도 모르는 식물은, 아니, 아는 식물도 더 조심히 대하고 눈으로 예뻐하는 버릇을 들여야겠다.

백수혜 (‘공덕동 식물유치원’ 원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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