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Cars] SUV 샀는데 세단이 따라왔다…르노 필랑트의 조용한 질주

임주희 2026. 5. 1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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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단 정숙성·SUV 공간성 결합
낮고 긴 차체에 유연한 승차감
도심 주행 최대 75% 전기모드
르노 로장주 로고를 중심으로 강한 인상이 드러나는 필랑트 정측면부. 임주희 기자


고속도로 진입로에서 가속 페달을 깊게 밟자 차체가 부드럽게 속도를 끌어올렸다. 엔진음은 멀리 깔리는 수준에 그쳤고 실내는 예상보다 훨씬 조용했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높은 시야와 공간 활용성은 유지했지만, 실제 주행 감각은 세단에 가까웠다.

르노코리아의 새로운 플래그십 크로스오버 '필랑트'는 SUV와 세단의 경계를 흐리는 데서 더 나아가 아예 새로운 장르를 만들겠다는 의도가 느껴지는 차였다.

최근 르노 필랑트를 3박 4일간 시승했다. 필랑트는 르노코리아가 추진 중인 '오로라 프로젝트'의 두 번째 모델이자 르노 브랜드의 글로벌 플래그십 크로스오버다. 르노가 내세운 '인터내셔널 게임 플랜 2027' 전략 아래 개발된 모델로 한국이 중대형(D·E세그먼트) 차량 개발·생산 허브 역할을 맡았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일반 SUV보다 낮고 긴 실루엣을 지닌 필랑트 측면부. 임주희 기자


차명부터 르노의 헤리티지를 담고 있다. 필랑트는 1956년 미국 보네빌 소금사막에서 당시 지상 최고속 기록을 세운 전설적인 르노 모델 에투알 필랑트(Etoile Filante)에서 따왔다. 르노가 이 차를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브랜드 혁신성과 디자인 철학을 보여주는 상징적 모델로 포지셔닝한 것이 느껴졌다.

실제로 차를 처음 마주했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지는 건 '비율'이었다. 일반 SUV보다 차체가 낮고 길었다. 길이 4915㎜, 높이 1635㎜의 실루엣은 왜건과 패스트백, SUV 요소가 동시에 섞인 듯한 느낌을 줬다. 루프라인은 뒤로 갈수록 매끄럽게 떨어지고, 플로팅 리어 스포일러가 이를 자연스럽게 마무리한다.

측면에서는 공기 흐름을 의식한 듯한 실루엣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긴 윈도우 라인과 뒤로 갈수록 날렵해지는 차체 형상이 정지 상태에서도 역동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SUV 특유의 투박함보다는 세단 특유의 우아함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디자인이다. 전면부는 르노 로장주 로고를 중심으로 강한 인상을 만들었다. 3차원 입체 구조의 '일루미네이티드 시그니처 로장주 로고'와 그릴 라이팅이 연결되며 미래적인 이미지를 강조했다.

상단부는 차체와 동일한 컬러, 하단은 유광 블랙으로 마감해 자연스러운 그라데이션 효과를 구현했다.

야간에는 존재감이 더 뚜렷했다. 시동을 켜고 끌 때 펼쳐지는 '웰컴·굿바이 라이팅 애니메이션'은 단순한 조명 연출을 넘어 일종의 감성 장치처럼 느껴졌다. 최근 자동차 업계가 디지털 경험을 강조하고 있지만 필랑트는 이런 부분에서 유럽 브랜드 특유의 감각을 잘 살렸다.

'프리미엄 테크 라운지' 콘셉트의 필랑트 1열 모습. 임주희 기자


실내로 들어가면 르노가 강조한 '프리미엄 테크 라운지' 콘셉트가 그대로 드러난다. 운전석과 센터, 동승석까지 이어지는 '오픈R 파노라마 스크린'은 단순히 화면이 큰 수준이 아닌 실제 사용 흐름을 고려한 구성이었다. 동승석 화면을 통해 장거리 이동 시 동승자가 영상을 보거나 음악, 웹브라우징 등을 활용할 수 있다. 음성 인식 성능도 눈에 띄었다.

거대언어모델(LLM) 기반 '에이닷 오토'가 적용되면서 기존 차량 음성 비서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반응했다. 단순 명령형이 아니라 대화형에 가까운 인터페이스라 목적지 검색이나 차량 기능 제어를 보다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퍼스트 클래스 라운지 시트'는 장시간 주행에도 몸을 안정적으로 지지해줬다. 지나치게 푹신하지 않으면서도 압박감은 적었다. 헤드레스트 일체형 구조 덕분에 몸을 감싸는 느낌도 강했다. 2열 공간도 기대 이상이었다. 휠베이스가 2820㎜에 달하는 만큼 무릎 공간이 넉넉했고 루프라인이 낮은 디자인임에도 헤드룸 부족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르노는 2열 무릎 공간이 320㎜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기본 적재 공간이 633ℓ, 2열 폴딩 시 최대 2050ℓ까지 확장되는 트렁크. 임주희 기자


트렁크 공간 역시 상당하다. 기본 적재 공간이 633리터(ℓ)에 달하고 2열 폴딩 시 최대 2050ℓ까지 확장된다. SUV의 실용성까지 놓치지 않은 것이다. 주행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정숙성이었다. 도심 저속 구간에서는 전기모드 비중이 높아 엔진 존재감 자체가 크지 않았다.

르노는 도심 주행의 최대 75%까지 전기모드 운행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필랑트에는 액티브 노이즈 캔슬레이션(ANC)과 이중접합 차음 유리가 적용됐다. 덕분에 고속 주행에서도 풍절음과 노면 소음 유입이 상당히 억제됐다. 고속도로에서 뒷자리 탑승자와 대화가 편하게 이어질 정도였다.

동승석 화면으로 유튜브, 네이버 등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임주희 기자


주파수 감응형 댐퍼(SFD)가 적용되면서 도심에서는 노면 충격을 유연하게 걸러주고, 고속에서는 차체 움직임을 안정적으로 제어했다. 과속방지턱이나 요철을 넘을 때도 충격을 한 번 걸러내는 느낌이었다.

고속 안정감도 기대 이상이었다. 차체가 낮고 무게중심이 안정적으로 잡혀 있어 SUV 특유의 롤링이 비교적 적었다. 차선을 빠르게 바꾸거나 코너를 돌아도 차체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파워트레인은 1.5ℓ 가솔린 터보 엔진과 듀얼 모터 시스템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E-테크 시스템이 도입됐다.

시스템 최고출력은 250마력이다. 연비 효율도 만족스러웠다. 공인 복합연비는 15.1㎞/ℓ 수준이지만 실제 시승에서는 18㎞/ℓ 안팎까지 어렵지 않게 나왔다. 정숙성과 승차감을 강조한 대형 크로스오버라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경쟁력 있는 수준이다.

필랑트는 단순히 'SUV와 세단의 중간' 정도로 설명하기엔 캐릭터가 확실한 차였다. SUV의 공간과 활용성은 유지하면서도 실제 운전 감각과 실내 분위기는 세단 감성에 훨씬 가까웠다.

가격은 개별소비세 인하에 친환경차 세제 혜택 적용 기준 테크노 4331만9000원, 아이코닉 4696만9000원, 에스프리 알핀 4971만9000원이다.

임주희 기자 ju2@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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