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갈아끼웠다…'기리고'로 드러난 이효제의 진가 [인터뷰]

[스포츠투데이 정예원 기자] "'기리고' 앱이 실제로 있다면 80살까지 연기하게 해달라고 빌 것 같아요. 작품이 귀한 요즘이잖아요. 다양한 역할로 대중들에게 다르게 기억되고 싶습니다. '이렇게 보니 완전히 다르네?'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고 싶어요."
이미 절반은 성공했다. 소지섭부터 강동원, 박해일, 양세종, 류준열, 하정우까지. 배우 이효제는 앳된 얼굴로 수많은 명배우들의 어린 시절을 연기했다. 하지만 그가 '기리고' 속 최형욱과 동일인물이란 사실을 알아챈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얼굴을 갈아 끼운' 이효제의 질주는 이제 시작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기리고'는 소원을 이뤄주는 어플리케이션 '기리고'의 저주로 인해 갑작스러운 죽음을 예고받은 고등학생들이 그 저주를 피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 지난달 공개 후 글로벌 TOP 10 비영어 쇼 1위(2주차), 총 24개국 1위, 64개국 TOP 10 진입 등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이효제는 극 중 친구들과 놀기 좋아하는 장난꾸러기자 '기리고' 앱에 가장 먼저 소원을 빈 최형욱으로 열연을 펼치며 '신 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먼저 그는 "'기리고'를 통해 주변에서 많이들 알아봐 주셔서 신기하다. 아역 때부터 연기를 해오는 동안 주변에서 알아본다는 자각은 없었는데, 사진 찍어달라고 하시는 분들도 많고 폭발적으로 관심을 받는다는 느낌이 있다. 아역에서 성인으로 잘 넘어올 수 있도록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신 것 같다"는 소회를 전했다.
'기리고'에는 오디션을 통해 합류했다. "형욱 역만 배우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라 제가 가장 마지막에 들어왔다"며 "오디션 낙방을 엄청 하면서 '1년 정도만 더 발버둥치고 이 일을 그만두는 것도 고려해야겠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굉장히 침체된 시기에 만난 좋은 기회라 꼭 잡고 싶었다. 일부러 편하고 자신감 있게 오디션에 임했다"고 떠올렸다.
극 중 형욱의 모습과 배우 이효제의 모습엔 큰 차이가 있었다. 통통한 형욱의 몸은 푸근한 인상을 줬지만, 실제로 만난 이효제는 훤칠한 키와 샤프한 매력을 자랑했다. '이 배우가 형욱이라고?'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박윤서 감독의 주문으로 촬영 당시 증량을 했기 때문이었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속 제 이미지가 맘에 드셨다더라. 감독님께서 통통한 몸을 원하신다고 하셔서 '찌울 수 있다'고 말씀드렸다. 사실 10㎏ 정도 예상했는데 20㎏을 얘기하셨다"며 "오디션을 봤을 당시 58㎏으로 워낙 마른 상태였다. 한 달 반 만에 20㎏ 이상을 찌워 81~2㎏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살크업'을 위해 로제 음식을 애용한 그였다. "가장 살이 많이 찌면서도 질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는 게 급선무였다. 저한텐 로제떡볶이, 로제마라샹궈, 볶음면 등이 그랬다. 원래 떡볶이 한 통을 시키면 반 정도만 먹고 남기는데 억지로 한 통을 다 먹었다. 너무 배가 불러 힘들 땐 잠을 좀 잤다. 일어나서 '김밥 한 알 정도 들어갈 것 같은데?' 싶으면 마라샹궈를 꾸역꾸역 먹었다. 하루에 5~6끼를 먹은 셈이다. 그랬더니 점점 살이 찌는 체질로 바뀌더라."

형욱은 극 초반 큰 임팩트를 남긴 뒤 사라지는 역이다. 어렵게 잡은 기회였지만 분량이 짧은 점이 아쉽진 않았을까. "1부 대본을 봤을 때 '뒤에 더 나오겠지'라고 생각했다. 정말로 조금씩 나오더라. 더 내용을 끌고 가는 인물이었으면 좋았겠으나 최대한 많이 넣어주신 것 같기도 하다. 초반에 강렬하게 치고 나와서 감사할 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형욱의 심리 상태를 그리려는 노력도 필요했다. "톤에 대한 얘기를 감독님과 정말 많이 나눴다. 여러 선택지를 준비해 갔다. 형욱에게 내재된 마인드가 무엇일지 고민도 많이 했다. 촬영장에서 즉흥적으로 바뀌는 부분도 여럿 있었다. 청소년기를 보내는 형욱에게 무엇이 가장 스트레스일까, 친구관계와 학업 문제 아닐까, 이게 발현됐을 때 어떤 공포로 다가올까 등을 생각했다."
연기를 위한 레퍼런스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아 애를 먹기도 했단다. "챗GPT한테까지 물어봤다. 그래도 명쾌한 답이 안 나오더라. 결국 스스로 해결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고등학교 때 가장 친했던 친구가 형욱이처럼 맑고 티 없는 친구였다. 그 친구를 많이 참고했다. 먹는 것도 좋아해서 저랑 맛있는 걸 많이 먹으러 다녔다. 저와 그 친구의 중간 지점을 찾아 색을 입으려 노력했다."
친구의 반응도 좋았다고. "'이거 약간 나랑 비슷한데? 진짜 잘 잡았다'고 하더라. 약간 오타쿠스러운 면모까지 네가 잘 만든 것 같다고 칭찬해줬다. 뭉클했다"고 웃어 보였다.
강미나가 연기한 임나리는 극 중 형욱에 대한 적대감을 가감 없이 드러내곤 한다. 그러나 강미나는 인터뷰에서 "나리는 형욱을 정말로 싫어한 게 아니라 친구에 대한 애정으로 못된 말이 튀어나온 것"이라는 생각을 밝힌 바 있다. 이효제 역시 이 의견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남들이 보기에 이상할 수 있으니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어'를 다소 격하게 표현한 게 아닐까 싶다. 형욱이도 나리의 그런 말들이 진심이 아니란 걸 알았을 거라고 본다. 하지만 문제의 전화를 받고나서부터 모든 게 다 바뀐 것 같다. 이전에는 '예상 못한 반격이다'라면서 장난치듯 받아쳤지 않나. 무시와 경멸이 아니다. 형욱이도 다 알았을 거다."

학교를 배경으로 한 작품인 만큼 또래 배우들과의 케미도 관전 포인트였다. '기리고'에는 이효제와 강미나를 비롯해 전소영(유세아 역), 백선호(김건우 역), 현우석(강하준 역)이 '서린고 5인방'으로 등장한다.
그는 "저희끼리 촬영 전에도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다들 굉장히 친하고 사이가 좋다"며 "전소영 배우는 진짜 누나 같은, 현장에서 리더 느낌이었다. 요즘도 저희에게 '언제 만날래?' 하고 먼저 물어본다"고 언급했다.
이어 "강미나 배우는 현장에서 집중을 무척 잘했고 배울 게 많았다. 절 되게 귀여워해줬다. 현우석 배우는 형처럼 친절하게 대해주고 현장에서 세세하게 잘 챙겨줬다"며 "네 사람과 다 친했지만 그중에서도 백선호 배우가 저와 한 살 차이라 좀 더 가까운 게 있었다. 연기에 대한 지향점도 비슷하더라. 현장에서 저희 다섯 명의 케미가 정말 좋았던 것 같다"고 우애를 자랑했다.
공포물 촬영인 만큼 등골이 서늘해진 일화도 있었다. "저주 공간 장면을 촬영할 때였다. 완전히 깜깜한 밤, 새벽에 폐교인 홍성여고에서 촬영을 했다. 학교 건물이 본관, 신관, 운동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전기는 무조건 본관에서만 쓸 수 있는 구조였다. 제가 조회대 쪽에서 운동장을 바라보며 쉬던 중 신관 쪽에서, 전기를 쓸 수 없는 곳에서 갑자기 밝은 빛이 나오더라"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딱 한 교실에만 불이 켜져 있었다. 처음엔 별 생각이 없다가 '신관에 불이 왜 켜졌지? 전기가 안 들어올 텐데?'라고 자각하는 순간, 그 교실의 커튼이 팍 닫히면서 불이 꺼지더라"라며 "너무 무서워 본관으로 달려가 사람들이 많은 곳에 앉아 있었다. 소름이 돋은 채로 촬영을 마쳤다. 입이 안 떨어져 아무에게도 말을 못 했다. 피곤해서 헛것을 봤나 싶기도 했다. 그 후 제일 먼저 소영 누나에게 얘기를 했다. 누나가 '그래서 작품이 잘된 것 같다'고 하더라"라고 긍정적인 해석을 덧붙였다.

2014년 영화 '우리는 형제입니다' 속 아역배우로 업계에 발을 들인 이효제. 어엿한 성인 연기자가 된 그는 '기리고'에서 자신의 아역을 처음 마주했다. "고사장에서 아역 친구를 처음 봤다. 저와 너무 닮아 제 어릴 때가 떠오르더라. 그간 선배님들께서 절 보며 이런 느낌이셨을까 뭉클하기도 했다"며 "아역배우들 한 명 한 명 캐스팅에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 걸로 안다. 제 아역 친구와 얼굴에 있는 점 위치까지 맞추며 싱크로율을 높이고자 신경 썼다"는 비하인드를 전하기도 했다.
영화 '사도' '검은 사제들' '덕혜옹주' '가려진 시간',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낭만닥터 김사부' '인간실격' '수리남'까지. 이효제는 굵직한 작품에 다수 출연해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하지만 재능에 대한 의심은 끝없이 이어졌다. "작품이 끊기지 않고 쭉 공개되긴 했지만 실제론 공백이 길었다. 2년 동안 아무것도 못한 때도 있었다"며 "성인으로 넘어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아역을 맡기엔 나이가 너무 들었고, 성인 역을 맡기엔 좀 어리고. 이 간극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당시에 한 건 오로지 입시 준비뿐이었다. 그런데 선생님께 배운 게 현장에선 다르게 작용할 수 있겠더라. 오디션을 볼 때마다 '뮤지컬 하는 것 같다' '왜 이렇게 힘이 들어갔냐'고 지적을 받았다"며 "이 길이 맞지 않나 하면서도 오디션을 계속 보긴 했다. 백 개도 넘게 봤는데 한 번도 좋은 소식을 못 들었다. '기리고'에 합류하게 됐을 때도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 되더라. 정말 뼈를 갈아 넣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24학번 동기들도 응원을 아끼지 않았단다. "동기가 16명이 전부라 다들 친하다. 잘되면 무조건 서로 축하해준다. '기리고'를 하게 됐을 때도 가장 먼저 SNS에서 축하해줬다. '24학번 동기가 효제를 응원합니다' 이런 식으로(웃음). 제가 예전에 영화 '어린 왕자' 더빙을 했다는 이유로 '어린 왕자' 별명도 붙여줬다"며 훈훈한 분위기를 전했다.
2008년생 여동생과의 우애도 언급했다. "동생은 지금도 제게 DM(다이렉트 메시지)을 보내 '이 사진 별로니까 내려' '너 그 정도 아니야. 자만하지마' 이런다. 항상 저를 바로잡아주는 편이다. 댓글 때문에 마음 아파할 때는 '무시해. 중요하지 않아'라고 다독여준다. 가끔은 저보다 성숙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이가 좋은 편이라 의지를 많이 한다."

오랜 생활 연기를 해오며 가장 기억에 남은 선배는 박해일이었다. "선배님께서 큰 가르침을 주셨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본인이 직접 보여주시는 분이었다. '덕혜옹주' 제 첫 촬영 날, 선배님께선 촬영이 없으셨다. 그런데 현장에 일찍 오셔서 제가 연기하는 모습을 다 찍어가 모니터링하셨다. 제 연기를 토대로 '이렇게 나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걸 듣고 정말 이 일에 진심이시란 걸 느꼈다. 나도 아역이 생긴다면 저렇게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시간이었다."
배우로서 닮고 싶은 인물로는 킬리언 머피와 강하늘을 꼽았다. "강하늘 선배님께서 연기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제 롤모델이시다. 드라마 '엔젤아이즈'에 호빵 먹는 아이 역으로 참여했는데 선배님이 정말 선하시더라. 그런 분은 처음 봤다. 어머니께서도 제게 '저런 배우가 돼라'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존경하게 됐다"는 이유였다.
또한 "연기에 있어서도 가벼운 듯 진중한, 그 선을 오묘하게 타고 가면서 흐름을 만들어내는 게 정말 대단하시다. '어떻게 저렇게 신들린 것처럼 연기하시지?' 싶다"며 "만약 함께 작품을 하게 된다면 매일 질문하면서 귀찮게 해드릴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생각도 고민도 많던 이효제에게 '기리고'는 새로운 열정을 불어넣어줬다. "어떤 작품이던 연기할 의향이 있다"던 그는 "대본이 좋고 캐릭터성이 확실하다면 또 무서운 작품이라 해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멜로는 제안을 받는다면 감사하지만 해본 적이 없어 고민이 된다. 좋은 작품인데 매일 가위에 눌려야 한다면 어떡하겠냐고? 작품에 피해가 가지 않는다면 꾹 참고 임하겠다(웃음)."
끝으로 이효제는 '기리고'의 의미를 되짚으며 시청을 독려했다. "성인으로서의 스타트를 끊어준 정말 고마운 작품이다. 공포물이라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분들도 많으실 텐데, 공포뿐 아니라 심리 스릴러, 서스펜스, 멜로 등 여러 요소가 많다고 생각한다. 와우포인트도 많으니 점프 스케어만 조금 조심하시면 충분히 재밌게 보실 수 있을 거다."
[스포츠투데이 정예원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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