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구 완투패’ 전설… 인천 대표 투수 김홍집의 리틀야구 이야기 [구도(球都), 인천]

백효은 2026. 5. 17.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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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부평구 훈련장에서 만난 김홍집 감독과 부평구 리틀야구단. 2026.5.12/백효은기자100@kyeongin.com


‘야구의 도시’ 답게 인천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야구 선수들이 많습니다. 지금의 SSG 랜더스 이전에도 인천을 연고로 한 여러 프로구단이 있었는데요. 그만큼 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장면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중에서도 많은 인천 시민과 야구팬들은 ‘태평양 돌핀스 김홍집’의 1994년 한국시리즈 1차전을 꼽기도 합니다.

당시 선발로 등판한 김홍집은 11회말까지 혼자 마운드를 지키며 완투를 이어갔습니다. 투구 수는 141구. 1-1로 팽팽하게 맞선 상황에서 끝까지 버텼지만, 결국 끝내기 홈런을 허용하며 패전 투수가 됐습니다. 승패를 떠나, 그 경기는 지금까지도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명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인천 축현초, 상인천중, 인천고를 거친 ‘인천 토박이’ 김홍집은 단국대 야구부에서 활약한 뒤 1993년 태평양 돌핀스 1차 지명을 받고 프로에 입단했습니다. 이후 현대 유니콘스와 한화 이글스를 거쳐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그의 야구 인생은 또 다른 방향으로 이어졌습니다. 약 20년 가까이 리틀야구 감독으로 활동하며 인천의 야구 꿈나무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지난 12일 부평구 리틀야구장에서 김홍집 감독을 만났습니다. 그가 이끄는 인천 선발팀이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2026 리틀리그 월드시리즈 메이저(U-12) 아시아-태평양 지역 예선’에 출전하게된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지난 12일 부평구 훈련장에서 공을 주고 받고 있는 부평구 리틀야구단 선수들. 2026.5.12/백효은기자100@kyeongin.com


앞서 일정을 잡기 위한 통화에서 김 감독은 “인천진산과학고등학교 맞은편에 있다”며 훈련장 위치를 유독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직접 찾아가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눈에 띄는 건물이나 시설이 없다 보니 처음 오는 사람이라면 지나치기 쉬운 곳이었습니다.

아이들이 훈련하고 있는 곳은 뜨거운 햇볕을 피하고, 잠시 쉬며 물을 마실 공간도 마땅치 않은 공터에 가까웠습니다. 더위를 식힐 컨테이너 하나쯤 있을 법했지만 그마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른 구립 리틀야구단에 비해 열악한 환경일지라도 김 감독과 아이들은 공을 주고받는 훈련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훈련장 한쪽 나무 그늘 아래 선 채 김 감독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김홍집 감독은 2008년 부평구 리틀야구단을 창단해 현재까지 육성반과 취미반 등 여러 아이들과 함께하고 야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12일 인천 부평구 리틀야구단 훈련장에서 만난 김홍집 감독. 2026.5.12 /백효은기자 100@kyeongin.com


화려했던 프로 선수 생활 이후 리틀야구에 몸담게 된 이유가 궁금해졌습니다. 김 감독은 “아이들과 노는 게 너무 재밌어서”라며 웃었습니다.

“야구 은퇴식도 없이 조용히 사라졌어요. 먹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다른 일도 해봤지만, 결국 다시 야구로 돌아오게 되더라고요. 모교 인천고 코치도 하고, 사회인 야구 심판도 보다가 부평구에 정착하면서 리틀야구단을 만들게 됐죠. 아이들이랑 있는 게 너무 재밌더라고요. 그렇게 지낸 지 벌써 19년이 됐네요.”

부평구 리틀야구단은 아직 지역 대회에서 우승 경험은 없습니다. 리틀야구 월드시리즈 아시아-태평양 지역 예선에 나서는 인천 선발팀에도 이 팀 소속 선수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김 감독은 이에 대해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최고 성적이 4강이에요. 옛날 생각해서 못 가르친다는 말은 듣기 싫은데, 그렇다고 예전 방식대로 하면 요즘 아이들은 야구를 안 해요. 다른 팀들은 테스트도 까다롭고 조건도 많은데 우리는 안경을 써도 되고 체격이 조금 달라도 누구나 와서 야구를 즐길 수 있습니다.”

사실상 ‘봉사’에 가까운 인천 선발팀 감독과 지역 팀 운영을 병행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평일에는 부평구 리틀야구단을, 주말에는 대표팀을 맡아 쉴 틈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리틀야구 월드시리즈 지역 예선을 앞두고 각오를 다진 김 감독은 “아이들이 좋은 추억을 쌓고, 즐겁게 야구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프로 무대에서 강렬한 기억을 남긴 투수는 이제 지역 야구장에서 아이들의 꿈을 키우는 지도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적보다 야구의 즐거움을 먼저 가르치는 그의 두 번째 야구 인생은 여전히 인천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 편집자 주
인천은 개항 도시입니다. 축구, 야구 등 거의 모든 스포츠가 근대 문물의 관문 인천을 통해 보급됐지요. 이 도시가 ‘구도(球都) 인천’이라 불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프로축구 인천유나이티드, 프로야구 SSG 랜더스, 프로배구 남자부 대한항공 점보스와 여자부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여자프로농구 신한은행 에스버드 등 다양한 프로구단이 인천을 연고지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그 활약상을 현장에서 생생히 조명하는 코너 [구도(球都), 인천] 입니다.


/백효은 기자 100@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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