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짓고 보자?… 활성화 꿈꾸는 'K-AI의 심장', 앞날은 '시계 제로'

최현빈 2026. 5. 17.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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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데이터센터 특별법 국회 통과, 향후 과제는]
'AI 시대 핵심 인프라' 구축 촉진 위해 속도전 처리
"전력 확보 방안 빠져" "환경오염 막을 규제 없다"
정반대 시각에서 '법의 빈틈' 지적 목소리 잇따라
美는 효율성 중시, EU·獨은 지속 가능성에 방점
한국, 어떤 모델 택할까… "정확한 현황 파악부터"
미국 오리건주 힐즈버러에서 가동되고 있는 데이터센터 전경. 힐즈버러=AP 연합뉴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는 'AI의 심장'으로 불린다. 거대한 양의 학습 데이터를 쉴 새 없이 처리하는 수많은 서버와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이를 구동할 때 발생하는 열을 식히는 냉각 장비 등이 한데 모인 핵심 기반시설이라는 점에서 붙은 별명이다. 특히 전 세계적 열풍을 일으킨 챗GPT(오픈AI)나 제미나이(구글)처럼, 복잡다단한 연산과 추론을 요구하는 '생성형 AI'에 있어선 필수불가결한 인프라다.

국회가 7일 본회의에서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산업 진흥에 관한 특별법안'(이하 특별법)을 서둘러, 그리고 압도적 찬성(재석 의원 201명 중 176명 찬성)으로 가결한 건 이런 이유에서다. 법안이 소관 상임위원회에 상정(지난달 9일)된 지 한 달 만에 국회 본회의 문턱도 넘게 된 속도전의 배경에는, 치열한 글로벌 AI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만 뒤처지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있었다는 방증이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우리나라의 조속한 AI 인프라 확충을 이끌 AI 데이터센터 특별법 국회 통과를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며 환영했다.

이번 특별법은 AI 데이터센터 설립과 관련, '인허가 절차 간소화' '입지 규제 완화' 등 여러 특례를 제공하겠다는 게 골자다. 일정 기간 내 인허가가 이뤄지지 않으면 자동 승인으로 간주하는 '타임 아웃제'도 도입된다. 그러나 정작 핵심은 빠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AI 데이터센터 가동에 필요한 대량의 전력을 어떻게 확보할지, 환경 오염 부작용은 어떻게 방지할지 등 굵직한 쟁점은 제대로 다루지 않은 탓이다. '법의 공백'이 있다는 얘기다. 특별법 통과 후 한국의 AI 데이터센터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학계와 전문가 의견, 해외 사례 등을 중심으로 짚어봤다.

AI데이터센터의 정의와 주요 특징. 그래픽=김대훈 기자

국내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47만 명 사용량

'24시간 가동'이라는 속성상 전력이 상시 공급돼야만 하는 데이터센터의 또 다른 별명은 '전기 먹는 하마'다. 지난해 3월 당시 산업통상자원부(현 산업통상부)가 발표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 따르면, 2023년 국내 데이터센터의 총 전력소비량은 5TWh(테라와트시)를 기록했다. 같은 해 한국의 1인당 연간 전력소비량이 1만637㎾h(킬로와트시)였음을 감안하면, 국민 47만여 명이 쓰는 만큼의 전기를 데이터센터가 사용한 셈이다. 2038년엔 데이터센터 전력소비량이 30TWh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됐다.

문제는 특별법 시행에 따라 데이터센터도 늘어나게 됐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데이터센터가 아니라, 'AI용 데이터센터'의 구축·운영을 활성화하는 게 입법 목적이기 때문이다. 관건은 역시 전력 공급 문제다. 신설 AI 데이터센터에 투입될 전력을 어디에서 끌어오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당초 특별법은 AI 데이터센터 사업자가 발전 사업자와 직접구매계약(PPA)을 맺는 방식으로 액화천연가스(LNG)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해당 조항은 부처 간 협의 과정에서 기후에너지환경부의 반대로 삭제됐다. 화석연료인 LNG의 사용 가능성을 열어 놓는 건 탄소중립 정책에 역행한다는 이유였다.

한국동서발전이 운영하는 경기 고양시 일산열병합발전소 전경. 게티이미지뱅크

이와 관련, 학계에서는 '반쪽짜리 법안'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데이터센터를 만들려 해도 해당 지역의 전기가 모자라서 불가능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인허가를 빨리 내준다 한들 전기를 확보하지 못하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정말 AI 데이터센터 설립을 활성화하려는 의도였다면, LNG 직거래를 허용하는 내용이 포함돼야 했다"고 주장했다. 향후 시행령 등을 통해 전력 공급 방안이 구체화할 순 있겠지만, 현재로선 장담할 수 없는 상태다.

환경계는 정반대 시각에서 법의 빈틈을 지적한다. 강민영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은 "에너지 위기 상황에서 LNG PPA를 허용한다는 건 경제적·환경적으로도,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도 현실과 동떨어지는 조항이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국제적으로 볼 때 에너지 효율성이나 입지 관련 규제를 도입한 곳이 많은데, 우리나라는 오히려 진흥법부터 미리 통과시키고 규제는 만들지 않은 게 아이러니"라고 꼬집었다. 데이터센터가 환경에 미칠 악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단 짓고 보자'는 식의 입법이었다는 일침이다.

주요 국가의 AI데이터센터 정책. 그래픽=김대훈 기자

규제 푸는 미국 vs 더 조이는 유럽

운영 효율성을 중시할 것인가(규제 완화), 지속 가능성을 추구할 것인가(규제 강화). 주요국의 정책 방향은 확연히 갈린다. 미국은 전자 쪽이다. 지난해 9월 발간된 에너지경제연구원의 'AI 시대 데이터센터 증가의 국내 에너지 소비 시사점'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작년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와 'AI 액션 플랜'을 잇따라 발표하며 AI 인프라 규제 강도를 대폭 낮췄다. 데이터센터 건설 시 국가환경정책법(NEPA)에 명시된 심사 절차를 건너뛸 수 있도록 해 주고, 도로나 교량 같은 대규모 기반시설을 지을 때 적용되는 연방 인허가 가속화(FAST-41) 대상에 데이터센터도 포함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 것이다.

반면 유럽연합(EU)은 기존 에너지효율 관리지침(EED)을 개정해 여러 제한 사항을 두는 등 '규제' 쪽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전력수요 500㎾ 이상 규모의 모든 데이터센터 운영사는 총 에너지소비량, 물사용량 등 에너지 성능 관련 데이터를 각국 정부에 상세히 보고해야만 한다. 특히 EED를 토대로 더욱 강력한 규제(에너지효율법)를 국내에 도입한 독일의 경우, '데이터센터 전력은 2027년 1월부터 재생에너지로만 공급돼야 한다'는 규정마저 마련했다. 또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열 등을 재사용해야 하는 최소 비율도 △2026년 7월 이후 운영될 시 최소 10% △2028년 7월 이후엔 20% 이상 등으로 설정해 놨다.

배경훈(왼쪽)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1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인공지능 3대 강국 도약을 위한 AI-에너지 정책 협력 업무협약'을 맺은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본 데이터도 없는 한국… 선행 연구 시급"

한국의 AI 데이터센터가 미국·EU 중 어떤 모델을 택할지는 미지수다. 일단 지금의 특별법만 보면 미국 모델에 가까워 보이지만, 각계 의견이 상충하는 만큼 단정하긴 어렵다. 우선 시급한 건 국내 현황에 기초한 선행 연구다. 그러나 지금은 '제로 베이스'나 마찬가지다. 김철현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예를 들어 전력사용효율지수(PUE)를 계산하려면 데이터센터 전력사용량이 부문별로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야 한다"며 "(하지만) EU와 달리, 우리나라 법에는 보고 의무가 규정돼 있지 않아서 기본적 데이터조차 구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정부 부처마저 데이터를 허술하게 관리한 정황이 최근 드러났다. 지난해 3월 공개된 산업부의 11차 전기본에는 숱한 오류가 있었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당시 산업부는 국내 데이터센터 수를 148곳으로 집계했는데, 감사원의 재산정 결과 166곳이 누락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신·증축 예정인 데이터센터 14곳이 전력 공급을 요청한 925㎿를 전력수요 예측치에 포함시키지 않는 '사고'도 일어났다. 대형 원전 1기의 설비 용량(1,000㎿)에 달하는 전력수요를 통째로 빠트렸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특별법이 향후 정책의 주춧돌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과기부가 데이터센터 실태 조사를 거쳐 통계를 작성하고, 다른 부처나 지방자치단체 등 관계 기관과 협력 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기부와 기후부는 12일 '인공지능 3대 강국 도약을 위한 AI-에너지 정책 협력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기도 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조사를 통해 국내 데이터센터들이 쓰는 에너지에 관한 상세 정보를 확보한 뒤, 이를 바탕으로 PUE 등 관련 지표를 기준으로 삼은 정확한 방침을 세워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최현빈 기자 gonnal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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